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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도심 로하스 거리(Roxas Street)에는 리잘 공원(Rizal Park)이 있습니다.
필리핀 독립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호세 리잘(JOSE RIZAL ; 1861~1896)의 이름을 딴 공원입니다.
리잘 공원은 원래 초승달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루네타 공원(Luneta Park)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요,
후일 독립 영웅 호세 리잘을 기리기 위해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공원 조성이 잘 되어있는 곳이라, 마닐라 시민들이 즐겨찾는 쉼터이기도 합니다.






리잘을 기념하는 탑 앞에 섰습니다.
호세 리잘은 필리핀의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의사, 발명가, 번역가, 사업가, 교육가 그리고 작가였습니다.
리잘은 루손섬 칼람바에서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그 시절은 스페인의 300여 년에 걸친 식민통치가 진행되던 시절이었지요.
그는 아테네오 데 마닐라 대학과 산토 토마스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1882년 식민 국가였던 스페인의 마드리드대학에 유학하여 의학을 공부합니다.
이후 그는 필리핀 식민지의 개혁을 요구하는 언론활동에도 참여하였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글을 통한 소극적 저항을 시작하면서 필리핀 저항운동의 대변자로서의 위치를 굳힙니다.
필리핀 혁명(1896∼1902)과 필리핀 민족주의의 사상적인 기반이 그로 말미암았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본격적으로 저항운동에 돌입한 리잘은, 1892년 마닐라에서 필리핀민족동맹을 조직하여 사회 개혁 운동을 전개하였고,
결국 체포되어 다피탄 섬으로 유배되어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였습니다.
1896년 민족주의 비밀 결사 단체인 카티푸난이 일으킨 폭동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12월 마닐라에서 공개 처형되었습니다.






공원에서는 리잘의 일생을 이야기하는 부조들을 볼 수 있습니다.






현대 자동차의 엠블런이 선명한 커다란 꽃시계도 있습니다.






호세 리잘의 기념비 반대편입니다.
1896년 12월 30일 호세 리잘은 바로 이 곳에서 처형되었습니다.
혹자는 스페인 당국이 그의 시신을 아무도 모르게 처리해 버렸다고 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이 기념탑 아래에 그가 묻혀있다고도 합니다.
필리핀은 호세 리잘이 죽은 12월 30일을 필리핀의 국가 기념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 뒤 2년이 지나지 않은 1898년 스페인 식민지로서의 지위에 저항하는 필리핀 혁명이 이 곳에서 시작됩니다.
뒤편에는 독립을 기념하는 국기 게양대가 보이는데요,
이 곳에서 1946년 7월 4일, 미국으로부터의 독립 선언이 열렸습니다.
이 게양대 앞에서 미국 대통령이었던 해리 S. 트루먼에 의해 필리핀의 완전한 독립이 선포되었습니다.
2013년 8월 이 게양대는 보수, 재건되어 현재 46m인데요,
필리핀에서 가장 큰 국기 게양대입니다.






시원한 물이 뿜어져나오는 분수대는 더위에 지친 시민들과 여행자들에게 한줄기 시원함을 선사합니다.






리잘 공원에는 '자유의 파숫꾼 - 라푸라푸(Statue of the Sentinel of Freedom)'의 상이 있습니다.
한국의 자유총연맹이 6.25 전쟁시 필리핀의 파병에 감사하는 뜻을 담아 한국 국민의 이름으로 헌정한 동상입니다.
15세기 초 당시 필리핀 중부 세부섬에 상륙했던 마젤란이 세부섬 앞에 있는 현재의 막탄섬을 공격하자,
막탄섬의 추장이던 라푸라푸가 마젤란의 군대를 영웅적으로 격퇴합니다.
마젤란은 이 전투에서 사망했지요.
현재 세부공항이 위치하고 있고, 유명 리조트들이 있는 세계적인 휴양지인 막탄섬 일대가
바로 라루라푸 추장의 이름을 딴 라푸라푸시(Lapu Lapu City)이다.
리잘의 기념비와 라푸라푸의 기념비가 400피트(약120m) 거리에 세워진 것은,
두 인물이 활동했던 시대 차이인 400년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 라푸라푸 기념상 30피트 크기로 청동상인데요,
필리핀인 조각가 후안 사히드 이마오(Juan Sajid Imao)의 작품입니다.






푸른 잔디밭과 녹음이 우거진 이 공원은 시민들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리잘 공원옆의 길을 건너면 바로 아키노 대통령 부부의 동상(Corazon Cojuangco Aquino Monument)있습니다.
필리핀은 무려 330여년 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스페인이 물러간 다음에는 미국의 식민지가 되어 45년간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독립한 후에도 완전한 민주화를 이루지 못하고 독재 정치가 이어집니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장기집권과 독재에 저항하던 베니그노 아키노(Benigno Simeon Aquino Jr., 1932-1983)는,
17세엔 종군 기자로 한국전에 참여했고,
22세엔 시장에 당선됩니다.
27세엔 부지사, 29세엔 도지사, 34세엔 상원의원이 됩니다. 모두 최연소 기록이었지요.
1972년 마르코스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했고, 아키노를 제일 먼저 투옥합니다.
그리고 마르코스는 그를 미국으로 추방합니다.
1983년 8월 21일, 아키노가 3년간의 미국 망명 생활을 마치고 총선 출마를 위해 고국으로 돌아오던 날,
그는 기내에 동승한 기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물리적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암살이란 것이 공공 서비스의 하나인 나라니까요.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겠죠. 암살자의 총탄에 죽는 것이 내 운명이라면, 그렇게 되라죠.”
그가 고국에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암살자는 코앞에서 아키노의 얼굴을 쐈습니다.
그리고 범인은 현장에서 경찰과 군인들에게 사살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필리핀 민주화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아키노의 장례식에는 수백만 군중이 몰려들어 마르코스를 규탄했고,
3년 뒤 ‘피플 파워’라 불리는 민주화 운동이 폭발해 마르코스와 그의 부인 이멜다는 필리핀에서 쫓겨났습니다.
남편 사후에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건 베니그노 아키노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 ; 1933~2009)는
필리핀의 새 대통령(11대)이 되었습니다.
후일 이들 부부의 아들인 베니그노 아키노 3세(Benigno Aquino III)도 2010년 필리핀의 대통령(15대)에 당선됩니다.






아키노 부부의 동상 뒤편에는 하이메 신(Jaime Sin) 추기경의 동상(Jaime Cardinal Sin Monument)이 있습니다.
신 추기경은 필리핀 가톨릭교회의 큰 별이자 아시아의 대표적 종교지도자입니다.
특히 1986년 신 추기경은 독재자 마르코스 정권을 무너뜨리는 혁명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리잘공원에는 이렇게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여러 사람들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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