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12)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 그 일의 좋고 나쁨을 판단합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당한 일의 좋고 나쁨의 기준을, 자신에게 얼마나 즐거운가, 혹은 이익이 되는가로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 일이 복음에 진보를 가져왔는가? 그렇지 않으가?’로 판단하는 것이 바울의 관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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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도 바울은 주를 전하는 일 때문에 붙잡혀서 로마로 압송되어 감옥에 있습니다.

누가 옥에 갇히기를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옥에 갇힌 것을 기뻐한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바울은 자신이 옥에 갇힌 것 때문이 아니라, 그 일로 말미암아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되었음을 인해 기뻐합니다.

여기서 복음의 진보라고 할 때에 진보는 나무를 찍어가면서 전진한다는 뜻입니다.

로마 군인들은 항상 길을 만들었습니다.

진보는 바로 나무들을 제거하고 길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을 연상케합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옛날부터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로 갈수 있는 길이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를 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15:22)

 

그런데 어느 날 바울의 기도는 신기한 방법으로 응답되었습니다.

그가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별로 부자가 아니었던 바울이 로마에까지 가는데 교통비 한 푼 들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로마에 가기까지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죄수의 몸으로 호송되었기 때문이지요.

그 당시 수많은 유대인들이 기회만 있으면 바울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간수, 죄인들, 시위대 사람, 재판관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여기서부터 세계 복음화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통해서 행복이 오는 것으로 생각지 말고,

내가 처한 상황이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에 어떻게 관련이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주변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어떠한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까요?

그리스도인들이,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많은 사람들이 증거하고,

  교회가 잘되고,

  또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여지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면 좋겠다.”고 그의 판단 기준을 고백할 때,

그는 바울과 같은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