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자 아흐메드 야사위 영묘 3

2018.04.18 14:16

정근태 조회 수:2632





정 후방에서 바라본 영묘입니다.
앞면의 장대함과는 다르게 그 규모는 작지만, 대신 화려한 타일로 장식한 영묘의 모습입니다.
한 신앙심 깊어 보이는 노인이 문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기도가 아니고 꾸란을 읽고 있습니다.
앞쪽에 벗어놓은 신발이 영묘에 대한 깊은 경외심을 대변합니다.
주변의 벽은 각양각색의 타일로 장식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앞으로 나와서 “라비아 술탄 베김 영묘”를 바라봅니다.
푸른 하늘을 닮은 푸른색 돔들은 언제 보아도 예술입니다.





“라비아 술탄 베김 영묘”도 워낙 큰 “코자 아흐메드 야사위 영묘” 옆에 서 있어서 비교가 돼서 그렇지 참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라비아 술탄 베김과 관련된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가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카자흐 족과 우즈베키스탄의 우즈벡 족은 원래 한 민족이었는데,
14세기 경 이 묘의 주인인 라비아 술탄 베김이 반대파에게 암살당하는 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를 지지하는 파와 반대하는 파가 갈라져서 한쪽은 카자흐 족이 되고,
다른 쪽은 우즈벡 족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있는 영묘중 하나인 팔각 영묘(Octagonal Mausoleum)입니다.
16~17세기의 것이죠.





“코자 아흐메드 야사위 영묘” 주위를 두르고 있는 성벽으로 올라갔습니다.
19세기에 코칸드 칸이 영묘를 요새화하면서 그 주위에 진흙 벽돌로 된 방어벽을 설치하였습니다.
지금은 흙벽돌로 쌓은 위를 시멘트로 마감한 부분이 있는데, 고풍스러운 맛은 영 떨어집니다.





그래도 퍽이나 긴 성벽입니다.





아마 이것이 성벽의 원형이겠지요?
흙벽돌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짚을 섞은 황토가 발라져 있습니다.
황토가 떨어져 나간 것은 세월의 흔적이겠지요.





성벽을 따라 걸으면 성벽 안에 있는 두 영묘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성벽 위에서 “코자 아흐메드 야사위 영묘”를 배경으로 인증 샷~



2018114.JPG

성벽과 함께 보이는 “코자 아흐메드 야사위 영묘”의 북동쪽 측면입니다.





성벽의 문 밖에서 문을 통해 바라본 영묘.





성의 외벽입니다.





참고로 “코자 아흐메드 야사위 영묘”의 옛날 모습입니다.
훼손된 복원전의 성벽너머로
뚜렷하게 “코자 아흐메드 야사위 영묘”와 그 앞의 “라비아 술탄 베김 영묘”가 보입니다.
정치적, 경제적 중요성이 도시를 번창시켰다면,
정치적 분란 및 해상 교역의 발달로 인한 육상 교역량의 감소는 도시를 쇠퇴시켰습니다.
1864년에 투르케스탄 시는 러시아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옛 도시는 파괴되어 버려졌고,
옛 도시에서 먼, 기차역이 세워진 새로운 지역이 새로운 발전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러시아가 투르키스탄 시를 점령한 1864년 이후 영묘는 수리가 필요한 상태가 되었고,
1872년에 시 당국은 영묘를 보존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938년부터 정기적인 보수가 실시되었으며,
1945년부터는 수차례의 복구 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복구 활동이 아직도 진행중인 것이지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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