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풍패지관(全州 豊沛之館)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고을에 설치했던 객관입니다.
주로 출장을 나온 관원이나 외국 사신의 숙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본관에 전패를 안치하고 국왕에게 배례를 올렸고,
국가 경조시에는 민관이 합동으로 의식을 거행하기도 했고,
외부의 객을 접대할 때는 연회장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직접 본 첫 느낌은 특히 단청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는 주관(主館)과 그 좌우에 동익헌(東翼軒)·서익헌(西翼軒)·맹청(盲聽)·무신사(武神祠)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1914년에 북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도로 확장공사로 좌측의 동익헌은 철거되었다가 1999년에 복원되었습니다.
현재는 주관과 서익헌, 동익헌, 수직사(守直舍)만 남아 있습니다.
현재의 규모는 도로 확장으로 인해 경역이 축소되어 있는 상태이지요.





이 고색창연한 건물의 단청은 정말 일품입니다.
수십 년간 전주객사(全州客舍)로 불리우던 명칭이 고유 이름인 풍패지관(豊沛之館)으로 바뀌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근·현대를 거치며 명칭이 왜곡돼,
각 고을에 다 있는 객사라는 명칭으로 불리던 것이 고유 이름인 '풍패지관'으로 복원된 것이지요.





풍패(豊沛) 또는 풍패지향(豊沛之鄕)이란 말은 제왕의 고향을 의미합니다.
한나라의 유방(劉邦)이 고향인 지금의 강소성 패현 풍읍에서 기병(起兵)하여 천하를 통일했고,
제위(帝位)에 오르자 고향 사람들에게 세금과 부역을 면해 주었습니다.
그 뒤부터 국가의 창업자의 고향은 모두 풍패라고 대칭(代稱)하게 됩니다.
전주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전주 이씨)이란 의미로 '풍패지향'이라 했으며,
전주의 객사는 태조 이성계의 본향에 경영된 객사라 해서 ‘풍패지관’이라고 편액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므로 본관인 풍패지관(豊沛之館)은 조선 왕조의 국권을 상징합니다.





풍패지관은 1975년 3월 31일에 보물 제58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전주객사는 1473년(성종 4)에 전주서고를 짓고 남은 재료로 개축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뿐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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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의 보물 제583호로 지정되어 있는 풍패지관 주관 앞면에는 ‘豊沛之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풍패지관의 현판은 조선에 온 중국 사신 주지번이 익산의 선비 송영구를 찾아가던 중 이곳에 들렀다가 쓴 글씨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풍패지관의 단청입니다.
단청과 기와의 선이 아름답게 조화되어 있습니다.
연꽃을 기반으로 한 무늬는 기본색인 녹색과 붉은 기둥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연속무늬의 단청이 아름답습니다.











단청만 바라봐도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