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의 리마트 강변 뮌스터 다리의 동쪽에서는 그로스 뮌스터(Grossmünster) 대성당의 두 탑을 볼 수 있습니다.
취리히의 랜드마크지요.
아 사진으로는 앞에 있는 건물이 대성당 건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뒤쪽에 붉은 첨탑이 보이지요.
앞에 있는 건물은 바서 교회(Wasserkirche)입니다.





리마트 강변으로는 유럽의 정취를 보여주는 건물들이 늘어 서 있습니다.
취리히(Zürich)는 스위스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취리히 주의 주도입니다.
스위스의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입니다.
울리히 츠빙글리 종교 개혁 이후 종교적으로 개신교가 우세한 지역이 됩니다.





뮌스터 다리에서 바라본 그로스 뮌스터 대성당입니다.
성당 본체와 붉은 첨탑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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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반대편, 그러니까 서쪽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큰 시계탑은 성 피터 교회(St. Peter)입니다.
성 피터 교회는 취리히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라고 합니다.
이 시계는 10m의 크기로 유럽에서 제일 큰 시계라고 합니다.





뮌스터 다리의 서쪽에는 프라우뮌스터 교회(Fraumünster Church)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원래 여자 수도원이었는데,
나중에 교회로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강 동쪽에서 바라본 서쪽의 프라우뮌스터 교회와 성 피터 교회의 모습입니다.





다시 그로스 뮌스터 대성당으로 올라왔습니다.
성당 앞 광장에는 이곳이 종교개혁자 쯔빙글리의 사역지임을 말해주는 쯔빙글리 광장의 표지판이 있습니다.





그로스 뮌스터 대성당은 스위스의 대표적인 종교 개혁가 가운데 한 사람인 츠빙글리가,
1519년부터 목회와 설교를 했던 곳으로 유명하지요.
그래서 이 성당은 “종교개혁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이 청동문은 유명한 조각가 오토 뭉크의 브론즈 작품이랍니다.
청동 문의 조각은 성경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리마트 강변 바세르 교회 앞에는 츠빙글리 동상이 서 있습니다.
루터보다 7주 늦은 1484년 1월 1일 토겐부르크 자치주의 빌드하우스에서 태어난 츠빙글리는,
1498년에는 베른 대학에서 스위스 종교 개혁의 기수로 알려진 하인리히 뵐플린에게 수학했습니다.
1500년부터 2년 동안은 비엔나로 옮겨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보호 아래 학문 활동을 하였고,
1506년 로마 가톨릭 사제로 서품을 받았고, 이후 글라루스의 성직자가 되어 부임하였습니다.
이후 인문주의적 경향과 용병제도를 반대하는 그의 입장으로 교구민들로부터 배척을 받게 되고,
1516년 아인지델른으로 목회지를 옮겼고,
그곳에서 종교개혁을 시작하게 됩니다.
1518년 츠빙글리는 취리히로 옮겨 종교개혁을 계속하게 됩니다.
1531년 츠빙글리의 개혁 방향에 불만을 품은 산림 자치주는 전쟁을 선포했고,
츠빙글리가 이끄는 취리히 군대는 10월 11일 카펠에서 교전하였지만,
츠빙글리를 위시한 개신교 목사, 의회의원 등 다수가 전사하였습니다.
47세의 인생의 황금기에 접어든 츠빙글리는 개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끝내 숨지고 말았습니다.





주변에 이런 명소들이 있는 리마트 강,
뮌스터 다리에서 북쪽을 바라본 풍경입니다.
오른쪽인 동쪽이 구시가지,
서쪽이 신시가지입니다.
성 피터 교회의 시계탑이 보입니다.
강 오른쪽에 강쪽으로 쑥 들어와 지어진 건물이 시청(Town hall)입니다.
현지에서는 Rathaus 라고 불리지요.





강 동쪽에서 서쪽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프라우뮌스터 교회와 왼쪽으로 취리히 시청 별관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침 날씨가 흐려 아쉽습니다.
맑을 때 꼭 다시 가 보고 싶은 도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