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전주로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남 장성을 지나던 중 특이한 팻말을 보게 되었습니다.
“박수량 백비”하고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백비가 뭔가 하는 호기심에 가 보았습니다.

화살표의 끝에는 “청백리 시 정혜공 박수량 선생 백비 입구”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금호리 백비[金狐里白碑]로도 불리우는 이 비는 2001년 12월 13일 전라남도기념물 제198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박수량의 본관은 태인, 자는 군수입니다.
김개의 문인으로 장성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주목사, 좌찬성, 호조판서, 중추부사 등의 관직을 지낸 뒤 64세에 병으로 죽었습니다.

벼슬길에 있었던 38년 동안 가는 곳마다 치적을 쌓았으며, 주세붕과 깊이 교류하는 등 유림들 사이에서도 학자로 존경을 받았지만, 그러나 두어칸 집 한 채 없이 지냈고, 죽은 뒤에도 남은 양식이 없어 초상마저 치를 수 없었다고 하네요.

그때 대사헌 윤춘년은 ‘박수량은 청백한 사람이라 멀리 서울에 와서 벼슬을 하면서도 남의 집을 빌려 살고 있었으므로 그 고향인 장성으로 돌려보내 장사지내고자 하오나 도저히 그 자력으로써 할 수 없사오니, 만일 이런 사람을 국가에서 표창하여 주면 모든 청백한 관리들에게 크게 장려될까 하옵나이다’라고 정부에 즉시 요청하여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명종은 그의 죽음을 듣고 슬퍼하면서, ‘수량의 청백한 이름은 이미 세상에 알려진 지 오래이다’ 하고 서해 바다의 돌을 골라 비를 내리라고 명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그 비에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하게 하고 다만 그 맑은 덕을 표시하기 위하여 이름을 백비라고 부르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사연이 적혀있는 팻말입니다.



정말 우리는 세상이 다 알만한 성실한 사람인지, 정직한 사람인지 되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