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결정체 타지마할

2010.05.27 07:43

정근태 조회 수:5924 추천:36




타지마할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인도 최고의 건축물입니다.

아그라 남쪽, 자무나강가에 자리잡은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이 왕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여 건축한 무덤이지요.

198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지요.

타지마할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역시나 소 한 마리가 반겨주고 있습니다.



입장권을 내고 타지마할로 들어가는 회랑입니다.
역시 인도풍의 붉은 회랑이 인상적입니다.



샤 자한은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22년 동안이나 그 무덤을 지었습니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랑이지요.

붉은 사암으로 된 아치형 정문으로,
타지마할로 들어가는 두 번째 관문입니다.



정면 앵글,



가까이 가서 문을 올려다보며 촬영한 사진입니다.
역시 인도풍의 기하학적인 무늬가 인상적입니다.



위의 문을 들어서면 그림같은 타지마할의 모습이 시야를 채웁니다
정문으로부터 타지마할 까지는 수로가 있는 무굴양식의 정원이 펼쳐져 있지요.
길이가 약 300미터에 이르는 일직선의 수로 중앙에는 연꽃 모양의 수조가 있고, 분수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어디서 저렇게 순백의 대리석을 많이 가져왔는지, 정말로 아무리 쳐다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 아름다운 백색입니다.

인증샷



건물과 입구의 수로 및 정원은 완벽한 좌우대칭의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샤 자한황제는 이 건물을 짓기 위하여 무굴 제국은 물론 이탈리아, 이란,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의 건축가와 전문기술자들을 데려왔다고 합니다.
기능공도 2만 명이 동원되어 22년간 대공사를 했지요.



최고급 대리석과 인도 특산인 붉은 사암은 인도에서 조달되었지만,
궁전 내외부를 장식한 보석들은 터키, 티베트, 버마, 이집트,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수입되었다고 하네요.
그 결과 국가 재정이 매우 악화되었지요.



왕이 정성을 다해 아무것도 아끼지 않고 심혈을 기울인 타지마하은 그야말로 ‘찬란한 무덤’입니다.



기단 위로 올라가면 네 모퉁이에 미나레트(첨탑)와 보조 건물들이 역시 좌우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미나레트입니다.



외부의 벽면은 보석을 박아 넣어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대리석에 무늬를 박아 넣는 피에트라 듀라(Pietra-dura)라는 모자이크 기법으로 세겨놓았습니다.





아름다운 타지마할의 모습을 좀 더,,,







인증샷, 한번 더...



이제 내부입니다.
건물 내부 1층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왕과 왕비의 관이 있지만 유골이 없는 빈 관입니다.







샤자 한과 뭄타즈 마할의 육신은 지하 묘에 안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좌우에 있는 보조건물입니다.







오른쪽 건물 안에서 문을 통해 바라본 타지마할입니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공된 후 10년 뒤인 1658년, 막내아들 아우랑제브의 반란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아그라 요새의 무삼만 버즈탑에 갇혀 말년을 보냅니다.
듣기로는 샤 자한이 죽은 아내만을 그리워하여 정사를 돌보지 않고, 타지마할을 건축하느라 국고가 위기에 처해 보다 못한 왕자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아그라 요새에서는 2km 떨어진 타지마할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8년간의 말년을 보내고,
1666년 죽은 뒤에는 그토록 사랑하던 부인 옆에 묻혔습니다.

국력을 기울인 사랑이야기의 끝은 참 슬프게 끝납니다.

나오는 길,
아까 그녀석이 유유히 길을 막고 있습니다.




1stDream.com 로그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