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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4:11)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상당히 곤혹스럽게 됩니다.

그래서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흔들고 시험하기 위해서 양 극단을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두 양극의 상황에 처하게 될 때 피해야 할 두 가지의 위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역경 속에서 믿음을 부인할 수 있는 위험과, 번영의 때에 신앙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는 위험입니다.[남은 무리의 흔들림, Keaven Hayden]

 

바울이 예수님과 나누는 교제는 그에게 모든 세상의 환경을 초월하는 자족감을 주었습니다.

번영의 때에는 겸손하고,

역경의 때에는 강인하였으므로,

이와 같은 환경이 그에게서 화평과 경건한 만족을 빼앗아 가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바울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와 평강을 덧입고 있었으므로 외적 여건에 초연하여 자족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여러 다른 상황들은 각각 역할이 있습니다.

번영은 믿노라고 공언하는 무리들의 수를 증가시킨다. 역경은 교회에서 이러한 자들을 축출해내므로 교회를 정화시킨다.”(4T, 89)

고통과 역경이 슬픔을 가져 올 수 있으나, 영적 생애에 가장 위험한 것은 번영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아니하는 한, 그들이 진리로 성화되지 아니하는 한, 번영은 확실히 그들을 오만으로 기울어지게 할 것이다.”[PK, 60]

 

무엇이든지 자족하기를 배우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족하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원망하기를 배웁니다.

불평, 시기,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감사할 줄 모르고 만족할 줄 모릅니다.

바울의 자족의 비결은 그리스도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자족하는 생활신조를 간증합니다.

그것은 아마 그들의 물질적 후원에 대한 그의 기쁨이 그가 단지 물질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합니다.

성도들의 편에서는 전도자들을 생각하고 물질적으로 돕는 것이 합당하지만,

전도자들의 편에서는 물질에 속박을 받지 않고 물질을 초월하여 자족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주께서는 12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고 말씀하셨었습니다.(10:9-10)

 

자족하는 생활은 전도자들뿐만 아니라, 또한 모든 성도들이 배워야 할 생활입니다.

참된 믿음은 모든 세상적 염려를 버리고 자족하는 삶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는 부자가 되었든지, 가난하게 되었든지 항상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곧은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