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음

2016.11.12 07:37

정근태 조회 수:2039

 

...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3:10-11)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는다 함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 같이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가겠다고 하는 고백입니다.

십자가를 져야 할 자리에서,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는데, 왜 내가 또 다시 십자가를 여야 하는가?” 하면서 회피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고난을 감내하지 못하는 신앙,

십자가를 지지 않는 신앙이란 결국 알맹이 없는 쭉정이 같은 신앙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산상수훈 가운데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를 향하여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하고 말할 것이다. 그때 나는 그들에게 분명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7:21-23)

 

예수 앞에 많은 사람이 와서 주의 이름으로 예언도 하고 기적도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하였다는 말은 없습니다.

십자가를 졌다는 말은 없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셨는데,

아버지의 뜻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무엇이라고 기도하셨습니까?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는 그의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빼 놓은 모든 신앙의 행위는 위선이요, 거짓 신앙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양적으로는 성장하였을지라도 십자가를 지지 않은 교회는 거짓 교회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고 고백했을 때,

그는 영광의 그리스도, 왕 되신 그리스도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 고백을 들으시고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영광의 그리스도이기 전에 고난의 종이요,

십자가에 죽을 수밖에 없는 그리스도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할 일과 그리고 십자가를 지는 일이 아직 남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인가 되어 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제자들은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깊은 좌절을 맛보게 되었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뵈올 때 어리둥절한 채 있는 그들을 예수는 부르시어 사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오순절 다락방에서 그들은 화끈한 성령 체험을 한 후,

온전히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는 사도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의 고백대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자기들 몸으로 채웠다.

 

십자가의 고난을 이해함 없이, 또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는 신앙을 가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거치지 않고는 어떤 은혜도 축복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 없이 그의 부활을 이해할 수 없고,

그가 약속한 영생을 우리가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곧 십자가를 지겠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의 관문을 통과하기 전까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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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이제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향하여 스스로 한 걸음씩 다가 가셨듯이 우리고 스스로가 이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나에게 맡겨진 그리스도의 주신 사명을 위하여 헌신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언제나 우리에게 걸림돌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우리의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서도 바로 그 십자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많은 교회들이 설교에서 십자가를 생략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몸으로 감당해 가야 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일부러 설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돌아설 것인지를 결단하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8:17 )

이 말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부활의 그 영광스러움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고난은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죽음이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바울은 어떻게 하든지 자신도 주님께서 걸어가신 그 고난의 길을 걷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삶의 곳곳을 열어보면 그리스도와 함께한 고난의 흔적들이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떠할까요?

정말 우리들도 바울처럼 고난을 즐거워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이 주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을 기쁨으로 여기고 감사하고 있습니까?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문제점 중에 하나는,

부활의 영광은 얻기를 원하지만 십자가의 고난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축복을 기원하고 복을 비는 기도에 쉽게 아멘하지만,

말씀에의 순종과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을 강조할 때에도 쉽게 아멘!”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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