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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스도...() 알려 하여” (3:10)

 

바울은 지금 자신의 수준과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점이 그럴까요? 그리스도를 알려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서신을 기록한 바울이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했던 경험이 있고,

이미 그는 교회의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빌립보서를 기록할 때는 이미 그의 인생 노년이었습니다.

이미 오래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른 그였는데,

그가 다시 오늘 본문에서 마치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그리스도를 알려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 입교한 자라면 이 말을 할 수 있겠지요.

이제 막 기독교에 입문한 사람이 나는 그리스도를 알려 합니다.”고 말한다면,

"그래, 그래야지"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니지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려 합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알려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그리스도를 몰랐다는 말입니까?

지금까지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일평생을 바쳤던 사람이 아직도 그리스도를 모르고 있다면,

도대체 누가 그리스도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까?

 

바울이 여기서 그리스도를 알려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는 것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는 것은 학습을 통해 생긴 지식이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경험을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 여기서 그리스도를 알고자 한다는 이야기는 그리스도를 경험하고자 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안다.”로 번역된, 히브리어의 야다나 헬라어의 기노스코는 둘 다 경험적 지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식은 잠시 공부함으로 습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머리 좋은 사람들은 더 빨리 습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험으로 아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단시일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머리가 좋다고 더 빨리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경험으로 아는 것은 평생에 걸친 씨름을 해야 합니다.

 

세상의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술에 관한 지식만 가득하고 경험이 없는 의사에게 여러분은 몸을 맡기겠습니까?

수영에 대해서 이론만 알고 수영은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에게 수상 구조대원의 일을 맡기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법 이론만 잔뜩 알고 전도는 안 해본 사람,

선교 경험은 없는 선교학 교수,

기도에 대한 이론만 잔뜩 알고 있는 성도,

경험이 없는 사람을 우리는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일평생 알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알려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지식적으로 아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경험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단지 자신이 지식적으로 주님을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매 순간 순간 섬세하게 주님을 경험하기를 원했습니다.

, 매일 매일의 삶에서 그분을 경험하기를 원했습니다.

정말 자신이 가르친 대로 그의 삶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그런 분임을 경험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경험하여 알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