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6 21:44
...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빌 3:9)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248개의 해야하는 조항과,
365개의 하지 말아야 하는 조항,
합 613개 조항을 지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을 몽학 선생에 비유하였습니다.
몽학 선생이란 안내자입니다.
이는 안내를 올바로 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계명을 지키는 공로를 쌓아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음을 분명히 압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율법의 모든 것, 율법의 의, 율법의 의도와 율법의 정신을 모두 다 준행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조금만 모자라도 그것은 모자란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지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약 2:10-11)
바울이 “내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말할 때, 그는 율법의 조항들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율법의 정신들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확실히 깨닫지 못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는 말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예수께 올 필요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복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자랑하게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발견 가운데 최고의 발견입니다.
바울은 율법에서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의를 발견할 수가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진정한 의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악한 행위가 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자랑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해가 될 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이라는 바울의 말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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