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 (4:3)

 

바울은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멍에를 같이했다고 말합니다.

멍에를 같이 했다는 것은, “같은 짐을 진 친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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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갈 때 소 두 마리가 같은 멍에를 끌고 갑니다.

당연히 두 마리는 보조가 맞아야 합니다.

한 마리가 다른 소보다 빨리 가거나 늦게 간다면 빙글 빙글 돌게 됩니다.

똑바로 이랑을 갈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이 앞서거나 뒤져도 안 되고,

가다가 한 마리가 숨을 돌리고 쉬어도 안 됩니다.

두 마리가 똑같이 발을 맞추어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멍에를 같이했다는 말의 뜻입니다.

 

그래서 멍에를 같이했다는 말은 본디 부부간을 이야기할 때에 쓰는 말입니다.

동업자간에도 이 말을 쓰지요.

동반자요 가까운 협력자라는 뜻입니다.

적당히 협력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똑같이 균형을 잡은 동반자이며.

책임도 똑같이 지는 것입니다.

이쪽이 무너지면 저쪽도 무너집니다.

이쪽이 갈 때에는 저쪽도 가야 합니다.

이것은 유기적이요 균형 잡힌 공존적 관계입니다.

같이 살고 같이 죽는 것입니다.

함께 멍에를 메었고 복음전파에 한마음으로 힘썼다는 각성과 인식을 가질 때에 자연히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이 하는 일이 자기 맘에 들 때는 박수를 보내고,

조금만 맘에 들지 않으면 뒤에서 온갖 불평을 쏟는 자는 함께 망에를 멘 자라고 볼 수 없었겠지요.

 

같이 짐을 진 친구라면 서로의 어려움을 걱정하고 짐을 져줍니다.

출세할 때는 같이 출세하고 어려울 때는 같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협력하지 않고는 두 사람이 함께 멍에를 메고 갈 수가 없습니다.

멍에를 같이 멘 두 마리의 소들이 각기 딴생각을 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하기 위해 각기 딴 곳으로 간다면,

결국 두 마리 모두 아무 곳으로도 못가고 싸움만 하게 될 것입니다.

 

운동회 때에 23각이라는 경주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한 다리씩을 서로 묶고 함께 힘을 합해 뛰어가지 아니하면 시합에 이길 수가 없습니다.

 

아모스 3:3은 이렇게 말합니다.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는가"

 

교회의 교인들과 직분을 맡은 이들은 교회의 멍에를 같이한 동역자들입니다.

서로 협력하지 않고는 교회를 한 길로 자라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주님께 배워서 주님의 마음을 닮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로 살기 위해서는 이해나 하고 생각만 하는 단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멍에를 같이 메는 희생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당신의 멍에를 메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9-30).

 

함께 멍에를 멥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