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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2:12)

 

우리는 하나님께 복종하되 두렵고 떨림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두려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심판자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큰 구원을 받았지만,

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움을 이깁니다.

인생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삶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가난도 두렵지 않고,

실패도 두렵지 않고,

원수도 두렵지 않고,

병도 두렵지 않고,

죽음도 두렵지 않다.

다만 범죄 할까봐 두려워합니다.

 

그 예가 바로 요셉이지요.

그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내가 어찌 하나님께 득죄하오리까?”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범죄할까 봐 제일 두려워하고 사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두려워한다고 표현했을까요?

두려움이란 사실 부정적 어감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은 두려워한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한다고 하면서 말을 함부로 한다고 하면,

그는 사랑의 의미를 바로 모르는 사람이겠지요.

정말 사랑하는 자일수록 말을 함부로 할 수 없고,

행동을 함부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녀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결혼식을 올리기 전까지 서로가 두렵게 교제를 합니다.

말로써 상처를 줄까봐,

행동으로써 상처를 줄까봐,

두려움으로 서로 교제를 하는 것,

이것이 진짜 사랑하는 태도입니다.

 

정말 사랑하지 아니하는 남녀의 관계 교제에는 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말하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나중에는 마음대로 버립니다.

 

평생을 살면서도 정말 사랑하는 부부는 서로 존중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부부가 서로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이라면,

어찌 내가 상하게 하겠습니까?

무시하고 멸시하는 말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상처 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랑의 두려움은 공포가 아닙니다.

이 사랑은 경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 4: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6:13)

 

오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지?

그래서 말에도 두려움이 있고,

행동도 조심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영적으로 근신하게 됩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

예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에도 이런 사랑의 두려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