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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4:5)

 

바울은 다른 이들로 너희 관용을 알게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알게 하라는 말은 P.R. 즉 선전이나 광고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에 알게 하라는 말은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에 알게 하라는 말은 명령법 수동태로 쓰여 있습니다.

수동태로 쓰여졌다는 것은 나의 관용을 나타냄으로 광고함으로 알려지는 게 아니라,

내가 참된 관용의 삶을 삶으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그것도 지극히 자연스럽게 나타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관용의 모습들이 우리에게서 저절로 흘러 나와서 모든 이들에게 알려 져야 합니다.

양보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되는데 양보하고,

친절할 수 없는데 친절하고,

인내할 수 없는 힘든 일인데 인내하고,

용서 못할 사건인데 용서하는 것으로 우리의 관용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모든 사람에게알게 하라고 합니다.

몇몇 사람에게,

혹은 나에게 잘하는 사람에게 관대하고 친절하기란 그리 어려울 것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전부 관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떤 친한 사람 또는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관용하라는 게 아니고,

우리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관용을 알게 되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라면 그 모든 사람들 속에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나를 사사건건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나를 원수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 모두를 향하여 관대하라는 말입니다.

 

관용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바울이이기에 우리들이 관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우리의 본성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 관용이지만,

그러나 주께서 가깝다는 것을 느낀다면 우리는 관용 할 수 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8:18)

사도 바울에게는 왜 고난이 가볍게 여겨졌을까요?

그가 만난 환란은 대단히 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안에서의 영광이 너무도 컸기에 그는 고난을 작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성도가 모든 사람에게 관용할 수 있는 까닭은,

주께서 오시면 모든 일을 다 공의롭게 판단하시고 선악 간에 보응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차 온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주 예수께서 가까이 와 계십니다.

주의 재림이 심히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판단을 그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직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하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내가 가질 영원한 것은 너무도 크고 좋은 것인데

우리는 지금 작은 것에 얽매여 큰 것을 잃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이 마음에 큰 것을 품고 있으면 작은 것에 관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관용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향한 최고의 관용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형제간에, 또한 외인들을 향하여 관용하게 됩니다.

 

우리는 관용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왕께서는 우리의 모든 빚을 탕감해 주시고 이제 우리도 하나님의 품성을 따라 관용을 드러낼 것을 기대하시고 계십니다.

관용은 더 큰 관용을 받은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웠습니다.

이 땅에서 더 쥐고 있어야만 하는 것들은 많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관용을 다른 이들에게 보이십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진 관용을 알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