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10 15:18
사도 바울은 사는 것과 죽는 것, 어느 것이 더 좋을지를 고민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살아도 그리스도와 함께 살 것이고,
또 죽어도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사나 죽으나 그것은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제 생각하는 것은 이 늙은 내가 더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것이 너희에게 더 유익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 1:24)
저것이 더 좋지만,
즉, 이제는 짐을 내려놓고 쉬고 싶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두 번째 탄생 이후로 그의 삶은 자신을 위한 삶이 이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을 위한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하여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시지 않고,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아룄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더 사느냐 죽느냐 하는 시점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결정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에 의거해서 결정되기를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남’ 때문에 ‘나’를 포기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한 기회다.”
바울은 삶을 더 이어가겠다는 구차함으로 살아가겠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땅에 사는 것이 너희들에게 작은 유익이라도 줄 수 있다면,
나는 고통의 삶이지만 이 삶을 이어 가겠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선택의 기준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선택의 기준은 “어느 것이 하나님과 이웃에게 유익이 되는가?”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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