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간의 즐거운 교제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즐겁고 유익합니다.

또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경험해야할 과정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복음 안에서 서로 교제하는 것은 삶에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순수한 사랑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진한 스킨십으로만 귀결된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3:5)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콤하고, 아름답고, 고상하고, 순수한 시간들을 스킨십에 열중함으로 우리가 무너뜨린다면,

하나님의 의도와는 관계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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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십은 불순한 욕망을 자극합니다.

이는 우리를 우리의 마음과는 다른 방향으로 유인하는 매개가 됩니다.

남녀 서로가 순결한 기대에 어긋남이 없어야 합니다.

 

현대의 성적 개방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미 다가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연애와 구혼을 하며, 약혼에 이르는 동안 사랑이 깊어지게 되지만,

육체적인 것은 결혼과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을 무시하고 육체적인 면이 쉽사리 균형을 잃게 되면 본질적으로 결혼의 신성성은 사라지게 됩니다.

특히, 아무하고나 스킨십, 더 심하게는 성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이라는 전제에 대한 서로의 신뢰가 쌓이면, 많은 젊은이들이 강한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결혼 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공식적인 부부가 되기 전에는 삼가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탄은 계속 이 약점을 이용하게 됩니다.

 

스킨심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요?

누군가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 결혼까지 가지 않아도, 다음 타자에게 당당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뜻 안에

이 모토가 젊은이들의 사랑에도 적용됨은 물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