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
전주 경기전, 역사가 머무는 고즈넉함
2026.08.02 10:55
경기전(慶基殿)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태조 어진(태조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에 어용전(御容殿)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건립되었습니다.
이후 세종 24년(1442년)에 '조선왕조가 일어나 신령스러운 기운이 서린 곳'이라는 뜻을 담아 '경기전'으로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태조 어진과 실록을 지키기 위해 내장산 용굴암으로 피난시키는 등 수난을 겪으며 건물이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6년(1614년)에 중건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경기전의 외삼문 문틀을 프레임 삼아 경내 깊은 곳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화려한 단청이 깔끔하게 칠해진 외삼문 기둥 사이로 붉은 홍살문과 그 뒤편의 내삼문, 그리고 나뭇가지와 푸른 기와지붕이 일직선상의 축을 이루며 차례로 들어옵니다.
외삼문 문턱 근처 바닥에는 단단한 마룻돌과 석재 보도가 깔려 있어 유교적 예법에 따른 축선 배치의 정갈함을 한눈에 보여줍니다.
홍살문은 신성한 구역임을 알리는 붉은 문으로, 상단의 화살살과 태극 문양이 악귀를 쫓고 경건함을 유지하게 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붉은 단풍과 은행나무 낙엽이 바닥에 수북하게 깔린 경기전 내삼문 앞 홍살문을 정면에서 수평으로 바라본 풍경입니다.
바닥에는 박석으로 정성스럽게 깔린 참도(參道)가 길게 늘어서 있고, 양옆으로는 황금빛과 갈색으로 물든 거목들이 우거져 따스한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습니다.
홍살문 상단 중심에는 붉고 푸른 태극 문양과 삼지창 모형이 또렷하게 솟아 있어 신성함과 위엄을 더합니다.
홍살문 뒤의 내삼문과 정전 일대는 광해군 6년(1614년) 중건 당시의 기본 배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국왕의 초상화를 모신 진전(眞殿)은 전국 여러 곳(개성, 영흥, 평양, 경주, 전주 등)에 있었으나,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전주 이씨 본향(本鄕)으로서 가장 신성시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경기전 참도를 지날 때에는 왕이나 제관이라 할지라도 벼슬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깊은 경의를 표하며 발걸음을 조심해야 한다는 전통이 전해집니다.
내삼문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붉은 단청 기둥과 묵직한 기와지붕이 돋보이며, 문 오른쪽에는 길게 뻗은 앙상하면서도 기품 있는 거목이 문을 호위하듯 서 있습니다.
문 양옆으로는 나지막한 돌담장이 단정하게 이어져 있으며, 가울 햇살이 기와 지붕과 담장에 비스듬히 내리쬐어 그윽한 고풍스러움을 자아냅니다.
내삼문은 정전을 둘러싼 내재석(內齋石) 구역으로 들어가는 최종 관문으로, 광해군 6년(1614년) 중건 당시 재건되었습니다.
가운데 문은 오직 신령(태조 어진)과 국왕만이 통행할 수 있는 신문(神門)이며, 신하들은 양옆의 문을 이용했습니다.
내삼문 바로 앞 바닥에 서서 문 안쪽 정전 영역을 정면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전면에 나일목(홍살) 울타리와 작은 석조물(향로석 또는 답도)이 보이고, 그 뒤로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돌길이 내삼문을 지나 정전으로 이어집니다.
문의 어두운 그늘 프레임을 거쳐 저 멀리 햇빛을 받는 정전의 모습이 겹겹이 뚫려 보여 유교 건축의 깊은 공간감과 엄숙함을 극대화합니다.
가운데 통로인 신도(神道)는 사람이 밟지 않는 영혼의 길로, 제례 시 어진으로 향하는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입니다.
전주 경기전 정전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사당을 넘어 왕조의 뿌리를 모시는 최고 등급의 신성 공간입니다.
경기전 정전의 차양 칸(정전 전면 돌출부)과 정전 본전의 측면 기와지붕입니다.
돌로 쌓은 나지막한 기단(월대) 위에 붉은 기둥과 화려한 단청이 얹혀 있고, 기와 지붕 끝자락의 팔작지붕 곡선이 단아하면서도 웅장한 미를 드러냅니다.
오후의 붉은 노을빛이 목조 기둥과 문살에 비치며 그윽하고 깊은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1614년(광해군 6년) 중건된 경기전 정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본전에 정면 1칸, 측면 2칸의 겹처마 정각(차양)이 앞으로 튀어나온 특이한 정자형(丁字形) 지붕 구조를 가집니다.
이는 어진을 모신 가마가 비를 맞지 않고 정전 안으로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한 조선 왕실 건축의 고유한 특징입니다.
정전 지붕 위에는 화재를 예방하고 악귀를 막기 위한 거북이 모양의 석조물이나 암기와의 짠돌이(드무 역할) 장식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실제로 조선시대 화재로부터 어진을 지키고자 했던 정성이 건물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경기전 안쪽 외곽은 둘러싼 정갈한 가공석 돌담장과 고목들이 어우러진 운치가 있습니다.
경기전 담장은 1410년 최초 건립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치며 조선 후기 양반가 및 궁궐 담장의 전통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담장 너머와 안쪽 바닥에는 황금빛 붉은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 있고, 곧게 뻗은 대나무 숲과 수령 수백 년의 고목들이 깊은 그늘과 햇살을 동시에 머금고 있습니다.
돌담의 직선과 나무 줄기의 곡선이 조화를 이루어 한적하고 우아한 산책로를 형성합니다.
이 길은 과거 참봉(參奉) 등 경기전을 지키던 관리들이 매일 걸으며 정전을 순찰하던 길로,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잎소리와 낙엽 소리가 어우러져 '왕조의 숨소리가 들리는 길'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경기전 내부 측문(협문)과 그 옆에 우뚝 솟은 거대한 은행나무입니다.
맞배지붕을 얹은 붉은 측문 뒤로 푸른 하늘과 앙상한 나뭇가지, 붉게 물든 숲이 펼쳐지며, 바닥에는 노란 은행잎과 단풍 낙엽이 카펫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경기전 경내의 수목들은 경기전 재건(1614년) 이후 조성되거나 자연적으로 자라난 것으로, 일부 고목은 200~300년 이상의 수령을 자랑합니다.
경기전 부속 건물 구역에 위치한 담백한 맞배지붕 한옥 건물입니다.
정전의 화려한 단청과 달리 단청을 칠하지 않은 민도리 양식의 담백한 나무 기둥과 흰 창호지문, 그리고 잘 정돈된 돌기단이 눈에 띕니다.
담장 넘어 인접한 한옥의 지붕선들이 겹겹이 연결되어 조용한 전통 한옥 마을의 멋을 풍깁니다.
이 공간은 경기전을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던 하급 관리나 수복(守僕)들이 거주하던 수복청(守僕廳) 및 제사 도구를 보관하던 제기고(祭器庫) 건물군입니다.
조선 시대 경기전 제향은 국가적인 중요 행사였기에 제기와 제물을 엄격하게 관리했습니다.
수복청 정갈한 마루에 앉아 있으면 제사 전날 밤 제관들이 정성을 다해 목욕재계하고 오직 왕실의 안녕만을 기원하던 숙연한 옛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2층 구조로 지어진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전주사고(全州史庫) 목조 실록보관각 건물입니다.
전주사고는 세종 21년(1439년)경에 설치되어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록을 안전하게 보관하던 국가 기록보관소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한양, 충주, 성주 등 전국의 다른 사고들이 모두 불타 없어졌을 때, 전주 참봉 오희길과 유생 안의, 손홍록 등이 실록을 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겨 유일하게 지켜냈습니다.
덕분에 조선 전기의 유일한 역사 기록이 오늘날까지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는 위대한 역사의 기적을 만든 주인공입니다.
나무 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짙은 갈색 목재 벽체와 귀틀 구조, 통풍을 위해 높게 띄운 마루 기단이 인상적입니다.
기와지붕 아래 지상의 습기를 막기 위해 공중에 띄워 만든 조선시대 전통 창고 건축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긴 행랑채 건물의 툇마루와 기둥들이 길게 이어지는 전통 한옥의 측면 풍경입니다.
단청이 없는 소박한 목재 기둥과 흰 벽면, 마루의 정갈한 결이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이루며 아늑함을 줍니다.
이 행랑채들은 제사를 돕는 수복들이 머물거나 제사 음식을 준비하던 용도로 사용되던 공간으로, 최근 전통 방식에 맞춰 복원되었습니다.
화려함보다는 절제된 실용성을 강조한 조선 후기 관아 및 사당 부속 건축의 정갈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경기전 부속 건물 구역에 위치한 아담한 디딜방아간 건물입니다.
뒤편과 옆으로는 회백색 석축 담장과 다른 한옥 행랑채들이 둘러싸고 있어 조선 시대 관아 및 사당 부속 생활 공간의 구조를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공간은 경기전 내에서 진행되는 제향(제사) 시 왕실에 올릴 제수용 곡식을 직접 찧고 정성스럽게 준비하던 디딜방아간입니다.
조선시대 왕실 진전(眞殿)의 제례는 매우 엄격하여, 제사에 쓰이는 쌀과 곡식은 정결함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 방앗간을 쓰지 않고 경내에서 직접 빻았습니다.
이 우물은 경기전 정전의 태조 어진과 왕실 제향에 사용하는 맑은 물을 긷던 '어정(御井)'으로, 경기전 건립 당시부터 존재해 온 중요한 유적입니다.
임금의 초상화를 모신 진전의 우물인 만큼 오염을 막기 위해 담장을 두르고 평소에는 문을 잠가 엄격히 관리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이 어정의 물은 결코 마르지 않았으며, 제사 전날 이 물로 목욕재계하고 음식을 준비하면 액운이 물러가고 복이 온다고 믿었습니다.
한옥의 굴뚝은 단순히 연기를 배출하는 기능적인 구조물을 넘어 온돌 문화와 조형 예술이 결합된 결정체입니다.
경기전 부속 건물들의 굴뚝은 불을 다루는 공간인 만큼 화재 예방을 기원하는 음양오행적 의미를 담아 정성스럽게 쌓아 올렸습니다.
기와를 재활용하여 겹겹이 쌓아 만든 아름다운 패턴은 조선시대 민가와 관아 건축에서 자주 나타나며,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온기와 생명력을 상징하여 경내에 따스한 온기를 더해줍니다.
나지막한 돌담을 프레임 삼아 경내 너머 정전 권역의 붉은 단청 건물과 앙상하지만 기품 있는 겨울 고목들이 보입니다.
경기전은 정전을 중심으로 수복청, 제기고, 어정, 전주사고 등이 엄격한 유교적 격식에 맞춰 담장으로 구획되어 있습니다.
1614년 광해군 때 중건된 이후 경기전은 단순한 사당을 넘어 전주 한옥마을 전체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습니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오래된 나뭇가지들은 수백 년 동안 경기전을 거쳐 간 수많은 왕과 제관, 그리고 백성들의 기원과 역사를 가만히 감싸 안고 있는 듯합니다.
제사 도구를 보관하는 제기고 입니다.
제기고는 태조 어진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정교하고 신성한 놋그릇과 제기(祭器)들을 보관하던 전용 창고입니다.
제기는 일반 그릇과 달리 신령에게 음식을 바치는 도구이므로 습기가 차지 않고 통풍이 잘되는 목조 건물에 엄격히 보관되었습니다.
해질녘 맑은 하늘에 떠오른 초승달과 제기고의 고요한 자태는 왕조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던 조선시대 신성 공간의 정결함을 그대로 전해줍니다.
이 서편 부속 건물들은 제사를 담당하던 제관들이 머물며 의례를 준비하던 서재(西齋) 및 관리들의 업무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조선 시대 경기전 제향은 성대하게 치러졌으며, 전라감사를 비롯한 지역의 유생과 관리들이 모여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했습니다.
낮게 이어진 담장과 대문들은 권위적인 위압감보다는 친근하고 정갈한 질서를 보여주며 한국 전통 건축 특유의 편안함을 선사합니다.
각 건물들의 기와지붕선이 겹겹이 이어져 율동감을 주며, 단청이 없는 단정한 목조 한옥의 미학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경기전 뒤편에 조성된 수목들은 태조 이성계의 기운을 보존하고 사당의 신성함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된 풍수지리적 비보림(裨補林)의 역할을 겸했습니다.
검은 기와 담장 뒤로 단정하게 들어선 한옥 건물들과 붉은 단풍나무 숲이 웅장한 배경을 형성합니다.
기와 담장 위로 바라본 수복청과 기와 굴뚝입니다.
건물의 정갈한 문살과 흙벽, 그리고 바닥에 고요히 놓인 기와 굴뚝이 조화를 이루어 한옥의 다정한 공간감을 선사합니다.
수복청은 경기전을 지키는 파수꾼인 '수복(守僕)'들이 상주하던 곳으로, 경기전 내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친근한 생활 공간입니다.
수복들은 밤낮으로 불침번을 서며 태조 어진과 실록을 지키고 경내 청결을 유지했습니다.
경기전 내 부속 건물들은 1614년 광해군 때 중건된 이후 조선 후기 내내 왕실의 관리 아래 정교하게 유지되었습니다.
이곳은 제사에 필요한 물품과 제수를 보관하던 공간으로, 제사가 없는 평소에도 완벽한 통풍과 건조 상태를 유지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맞배지붕 한옥 두 채를 나란히 볼 수 있습니다.
전면에 위치한 짙은 갈색 나무 벽체의 소박한 창고 건물과 그 뒤로 이어진 제기고, 그리고 나지막한 석축 담장이 조화를 이룹니다.
전주 경기전에서의 소중한 여정을 마무리하며 울창한 고목 숲과 부속 건물들이 한데 어우러진 넓은 마당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경기전 경내는 수령 100년에서 수백 년에 이르는 은행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등 고목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나무들은 숱한 외세의 침략과 일제강점기의 수난 속에서도 경기전을 묵묵히 지켜온 역사적 증인들입니다.
좌측의 붉은 단청 건물과 우측의 단청 없는 소박한 한옥들이 숲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윽한 산수화를 연상시킵니다.
수백 년 세월을 견뎌낸 나무 줄기 사이로 스며드는 마지막 노을빛이 경기전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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