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
오다와라 성
2026.07.09 19:42
하코네를 다녀오는 길에 오다와라성에 들렀습니다.
오다와라성(小田原城, Odawara Castle)은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대표하는 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후조 가문(北条氏)의 본거지였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오다와라 전투(1590)'의 무대로 유명합니다.
오다와라성 성내 안내도(小田原城案内図)가 성을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성곽의 전체적인 구조와 해자, 주요 성문들의 위치가 일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로 상세히 표기되어 있습니다.
성 중앙 광장에 올라서니 드디어 하얀 자태의 천수각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해 질 녘의 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그 사이로 비치는 은은한 빛이 성벽에 닿아 마치 과거의 시간을 투영하는 듯합니다.
성곽 주변의 울창한 나무들이 고성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이 성은 15세기 중반 오모리 가문이 처음 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495년경 호조 소운(이세 소즈이)이 성을 차지한 이후, 약 100년 동안 후조 가문 5대가 관동 지방 대부분을 지배하는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성은 대대적으로 확장되어 일본 최대 규모의 중세 성곽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오다와라성(小田原城, Odawara Castle)은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대표하는 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후조 가문(北条氏)의 본거지였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오다와라 전투(1590)'의 무대로 유명합니다.
오다와라성 성내 안내도(小田原城案内図)가 성을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성곽의 전체적인 구조와 해자, 주요 성문들의 위치가 일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로 상세히 표기되어 있습니다.
성 중앙 광장에 올라서니 드디어 하얀 자태의 천수각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해 질 녘의 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그 사이로 비치는 은은한 빛이 성벽에 닿아 마치 과거의 시간을 투영하는 듯합니다.
성곽 주변의 울창한 나무들이 고성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이 성은 15세기 중반 오모리 가문이 처음 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495년경 호조 소운(이세 소즈이)이 성을 차지한 이후, 약 100년 동안 후조 가문 5대가 관동 지방 대부분을 지배하는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성은 대대적으로 확장되어 일본 최대 규모의 중세 성곽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천수각 바로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았습니다.
견고하게 쌓아 올린 거친 석축(이시가키)과 그 위에 수직으로 솟은 성벽의 대비가 강조되어,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오다와라성의 위용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약 20만 명에 달하는 대군으로 오다와라성을 포위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히데요시는 성을 무리하게 공격하기보다 장기 포위전을 펼치며 주변에 연회와 다도회를 열어 심리전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무력보다 심리전을 택했던 그 시대의 긴장감이 지금의 고요함과 대비되어 더욱 묘한 기분을 선사합니다.
결국 후조 가문은 항복했고, 이는 일본 전국시대를 사실상 끝내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성곽을 둘러싼 해자(Moat)와 성벽의 옆모습입니다.
잔잔한 수면 위로 성벽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며, 물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 석축은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던 역사의 방어선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적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을 이 물길은 이제 평화로운 수면이 되어 주변의 나무와 성벽을 비추고 있습니다.
전투 이후 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지배 아래 들어갔고, 오쿠보 가문과 이나바 가문이 차례로 성주가 되면서 근세 일본 성곽의 모습으로 개축되었습니다.
오다와라는 에도(현재의 도쿄)와 하코네를 연결하는 도카이도(東海道)의 중요한 방어 거점이었습니다.
성곽 내부의 망루와 담장이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후 1870년 폐성령에 따라 대부분의 건물이 철거되었고,
1923년에는 간토 대지진으로 남아 있던 석축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현재의 천수각은 1960년에 에도 시대 모습을 참고하여 복원한 것입니다.
이후 성문과 망루도 차례로 복원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견고하게 쌓아 올린 거친 석축(이시가키)과 그 위에 수직으로 솟은 성벽의 대비가 강조되어,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오다와라성의 위용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약 20만 명에 달하는 대군으로 오다와라성을 포위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히데요시는 성을 무리하게 공격하기보다 장기 포위전을 펼치며 주변에 연회와 다도회를 열어 심리전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무력보다 심리전을 택했던 그 시대의 긴장감이 지금의 고요함과 대비되어 더욱 묘한 기분을 선사합니다.
결국 후조 가문은 항복했고, 이는 일본 전국시대를 사실상 끝내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성곽을 둘러싼 해자(Moat)와 성벽의 옆모습입니다.
잔잔한 수면 위로 성벽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며, 물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 석축은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던 역사의 방어선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적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을 이 물길은 이제 평화로운 수면이 되어 주변의 나무와 성벽을 비추고 있습니다.
전투 이후 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지배 아래 들어갔고, 오쿠보 가문과 이나바 가문이 차례로 성주가 되면서 근세 일본 성곽의 모습으로 개축되었습니다.
오다와라는 에도(현재의 도쿄)와 하코네를 연결하는 도카이도(東海道)의 중요한 방어 거점이었습니다.
성곽 내부의 망루와 담장이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후 1870년 폐성령에 따라 대부분의 건물이 철거되었고,
1923년에는 간토 대지진으로 남아 있던 석축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현재의 천수각은 1960년에 에도 시대 모습을 참고하여 복원한 것입니다.
이후 성문과 망루도 차례로 복원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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