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
앤드류스 대학교
2025.09.07 09:28
미시간 주 베리언 스프링스의 앤드류스 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넓은 아치형 구조물이 방문자를 품어 안듯 서 있고,
그 중앙에 자리한 지구 모양의 조형물이 햇살에 반짝입니다.
"ANDREWS UNIVERSITY"라는 글자 아래에는
"Seventh-day Adventist Higher Education"이라는 문구가
이 학교의 정체성을 말해줍니다.
지구 조형물은 이곳에서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정문을 지나 캠퍼스 안으로 들어서서 천천히 걷게 되면,
양쪽으로 펼쳐진 잔디밭은 마치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듯 부드럽고,
가로수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자연스러운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교회 앞에는 존 네빈스 앤드류스(John Nevins Andrews, 1829~1883)의 동상이 있습니다.
앤드류스는 두 자녀와 함께 서 있는데,
그의 손은 멀리 지평선 너머를 향해 힘차게 뻗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 앤드류스 대학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첫 공식 해외 선교사였고, 선교의 개척자였습니다.
앤드류스는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촉망받는 젊은 학자였습니다.
신학과 언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그는 교단 내에서 중요한 지위에 있었고,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874년, 그는 인생의 가장 어려운 결단을 내립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병으로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어린 두 자녀 메리와 찰스를 데리고 유럽으로 떠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당시 대서양 횡단은 지금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몇 주간의 험난한 항해,
낯선 땅에서의 새로운 시작,
그리고 무엇보다 홀아버지가 되어,
두 어린 자녀를 돌보며 선교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무거운 짐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더 큰 비전이 있었습니다.
유럽에 복음을 전하고, 재림의 소망을 널리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꺼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미지의 땅으로 향했습니다.
스위스 바젤에 정착한 앤드류스는 곧바로 선교 사역에 매진했습니다.
그는 출판소를 설립하고,
성경과 각종 교리서를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했습니다.
언어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선교지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문화적 차이,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건강 문제가 그를 괴롭혔습니다.
미국과는 다른 기후와 환경 때문에 결국 1878년, 가슴아픈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딸 메리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이미 아내를 잃은 아버지에게 딸마저 잃는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슬픔을 감내하며 계속해서 선교 사역을 이어나갔습니다.
아들 찰스와 함께 남은 세월을 보내며,
유럽 재림교회의 기초를 놓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헌신과 희생은 결국 그의 건강을 해쳤고,
1883년 10월 21일, 54세의 나이로 바젤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지금도 바젤의 묘지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제 다시 동상을 바라봅니다.
아버지의 손은 여전히 멀리 지평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지리적인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향해야 할 모든 곳,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모든 민족,
그리고 재림의 소망을 기다리는 모든 영혼들을 향한 방향입니다.
그의 곁에 서 있는 두 아이는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선교 사명이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희망의 상징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선교의 대가로 치러진 희생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특히 딸 메리의 경우,
그녀는 실제로 아버지의 선교 사역 중에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 동상은 단순한 기념비가 아니라 실제 희생에 대한 추모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교회 앞 광장에서 이어지는 길은,
양옆으로 국기 게양대들이 줄지어 서 있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이곳이 바로 Flag Mall입니다.
평소에는 빈 게양대들이 서 있지만,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면 전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들이 바람에 펄럭이며 장관을 이룹니다.
University Towers와 Damazo Hall입니다.
Damazo Hall은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교류와 공동체 생활의 중심이 되는 곳입니다.
넓은 유리창과 현대적인 건물 디자인이 교회의 고풍스러운 모습과 대비되며,
앤드류스 대학교의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캠퍼스를 둘러보다 보면 넓은 운동장과 체육 시설이 나옵니다.
이곳은 학생들이 축구, 육상,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즐기는 공간으로,
학업뿐 아니라 신체적으로 균형 잡힌 생활을 추구하는 학교의 가치를 반영합니다.
가로수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자연스러운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이곳을 걷고 있으면, 교육이란 단순히 지식을 머릿속에 쌓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 속에서, 그분의 지혜를 배우고,
그 것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배움의 모습이 아닐까요?
길을 따라가면 웅장한 석조 건물인 파이오니어 기념교회가 나타납니다.
여기는 특정한 민족이나 언어, 문화의 경계를 넘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는 거룩한 공간입니다.
이곳에서는 매주 다양한 언어로 예배가 드려지고,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이 함께 찬양하며 기도합니다.
교회의 전면입니다.
계단을 오르면 정문에 쓰여있는
"An House of Prayer For All People — 만민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는 문구를 보게 됩니다.
교회 앞에는 존 네빈스 앤드류스(John Nevins Andrews, 1829~1883)의 동상이 있습니다.
앤드류스는 두 자녀와 함께 서 있는데,
그의 손은 멀리 지평선 너머를 향해 힘차게 뻗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 앤드류스 대학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첫 공식 해외 선교사였고, 선교의 개척자였습니다.
앤드류스는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촉망받는 젊은 학자였습니다.
신학과 언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그는 교단 내에서 중요한 지위에 있었고,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874년, 그는 인생의 가장 어려운 결단을 내립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병으로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어린 두 자녀 메리와 찰스를 데리고 유럽으로 떠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당시 대서양 횡단은 지금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몇 주간의 험난한 항해,
낯선 땅에서의 새로운 시작,
그리고 무엇보다 홀아버지가 되어,
두 어린 자녀를 돌보며 선교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무거운 짐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더 큰 비전이 있었습니다.
유럽에 복음을 전하고, 재림의 소망을 널리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꺼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미지의 땅으로 향했습니다.
스위스 바젤에 정착한 앤드류스는 곧바로 선교 사역에 매진했습니다.
그는 출판소를 설립하고,
성경과 각종 교리서를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했습니다.
언어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선교지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문화적 차이,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건강 문제가 그를 괴롭혔습니다.
미국과는 다른 기후와 환경 때문에 결국 1878년, 가슴아픈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딸 메리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이미 아내를 잃은 아버지에게 딸마저 잃는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슬픔을 감내하며 계속해서 선교 사역을 이어나갔습니다.
아들 찰스와 함께 남은 세월을 보내며,
유럽 재림교회의 기초를 놓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헌신과 희생은 결국 그의 건강을 해쳤고,
1883년 10월 21일, 54세의 나이로 바젤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지금도 바젤의 묘지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제 다시 동상을 바라봅니다.
아버지의 손은 여전히 멀리 지평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지리적인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향해야 할 모든 곳,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모든 민족,
그리고 재림의 소망을 기다리는 모든 영혼들을 향한 방향입니다.
그의 곁에 서 있는 두 아이는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선교 사명이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희망의 상징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선교의 대가로 치러진 희생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특히 딸 메리의 경우,
그녀는 실제로 아버지의 선교 사역 중에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 동상은 단순한 기념비가 아니라 실제 희생에 대한 추모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교회 앞 광장에서 이어지는 길은,
양옆으로 국기 게양대들이 줄지어 서 있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이곳이 바로 Flag Mall입니다.
평소에는 빈 게양대들이 서 있지만,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면 전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들이 바람에 펄럭이며 장관을 이룹니다.
University Towers와 Damazo Hall입니다.
Damazo Hall은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교류와 공동체 생활의 중심이 되는 곳입니다.
넓은 유리창과 현대적인 건물 디자인이 교회의 고풍스러운 모습과 대비되며,
앤드류스 대학교의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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