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제네바에는 제네바 대학교(Université de Genève)가 있습니다.
1559년 종교개혁자 장 칼뱅(Jean Calvin)이 설립한 이 학교는,
신학, 법학, 인문 교육 기관으로 창설된 후,
1873년에 이르러 종합대학교가 되었습니다.
사진은 제네바 대학교 정문입니다.





정문 앞에는 독특한 모양의 화단이 있습니다.
뒤로 보이는 건물들도 수 백년은 됨직한 건물입니다.
1581년부터는 소위 세속적인 학과들이 설치되었고,
1873년 의학부가 창설되면서 대학교(université)의 명칭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네바 대학교는 스위스에서 두 번째로 큰 대학교입니다.
특히 국제기구가 많은 제네바의 특성상,
국제 관계나 법률, 과학적인 연구 성과로 유명한 행성과학, 유전학, 신학 등과 관련한 프로그램으로 유명합니다.





모시고 간 두 분이 잔디 의자(?)에 앉아서 인증 샷입니다.
이 대학의 졸업생 또는 교수들은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들이 많은데요,
1957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 다니엘 보베(Daniel Bovet),
1978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 베르너 아르버(Werner Arber),
1992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 에드먼드 피셔(Edmond H. Fischer) 등이 그들입니다.





교문 앞에서는 오페라와 발레의 공연이 열리는 제네바 대극장(Grand Théâtre de Genève)을 볼 수 있습니다.





정문을 통과하면 바스티옹 공원이 있습니다.
이 공원에는 동네사람들과 학생들이 모여서 훈수도 두고, 시간을 보내는 커다란 체스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네바 대학 혹은 바스티옹 공원을 이야기할 때,
‘체스 두는 곳’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말을 옮기려면 근육이 좀 있어야 할 듯 합니다.
커다란 체스판 너머에 있는 건물은 레스토랑입니다.
이 곳을 찾은 이들에게 음료와 음식을 제공합니다.





건물만 빼곡한 대학 캠퍼스가 아니고,
이런 넒은 공원이 만들어져 시민들에게 제공되고 있는 것이 낭만적입니다.
이 바스티옹 공원은,
1817년 제네바 시가 시민들에게 산책할 공간을 주기 위해 조성한 것인데요,
그 이전에는 나무, 샘, 기념비, 성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이었는데요,
제네바 성채의 일부분을 이루었던 보루(堡壘:bastion)에서 바스티옹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1만㎡ 정도의 크기로 조성되었지만,
현재는 6만 4968㎡로 확장되었습니다.
공원 곳곳에 성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일찍부터 시민들을 생각했던 스위스의 민주적 전통이 부러운 곳입니다.




2020006.JPG

<사진을 Click 하시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드디어 오늘의 주 목적지인 종교개혁기념벽(Monument de la Reformation)에 도착했습니다.
우선 기념벽을 파노라마로 한 번 찍고,
이 기념벽은 부패한 로마 가톨릭에 항의하여 자신들의 믿음을 쟁취한 프로테스탄트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입니다.
칼뱅 탄생 400주년인 1909년부터 1917년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원래 이 벽은 19세기 중반까지 적으로부터 제네바를 방어해온 성벽이었다고 합니다.
길이 100m, 높이 10m의 이 거대한 종교개혁기념벽에는,
여러 종교개혁의 기수들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한 가운데에는 주인공 네 사람이 있는데요,
왼쪽부터 파렐, 칼뱅, 베제, 낙스의 모습입니다.
기욤 파렐(Farel, 1489-1565)은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처음으로 부르짖은 사람이고요,
쟝 칼뱅(Calvin, 1509-1564)은 제네바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종교개혁의 수장,
테오도르 드 베즈(Beze, 1513-1605)는 칼뱅의 후계자이자 제네바대학을 설립한 사람이고,
죤 녹스(Knox, 1513-1572)는 스코틀랜드에 장로교를 뿌리내리게 한 사람입니다.
네 명의 조상 옆에 보이는 ‘E’와 ‘B’는,
이 벽에 커다랗게 쓰여있는(너무 크게 쓰여서 한 앵글로 다 잡을 수 없는),
종교개혁의 슬로건이자 제네바의 표어이기도 한 'Post Tenebras Lux'의 일부입니다.
이 말은 “어두움 뒤에 빛이 있으라.”는 의미의 라틴어입니다.





중앙의 4명 개혁자상 옆에는 신학자는 아니지만,
정치가로 개신교의 확실한 정착을 위해 싸운 이들,
무엇보다 독립과 자유를 위해 싸웠던 인물들의 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4명의 왼쪽에 세겨진 사람은,
오른쪽 존 낙스 석상 다음에 있는 것은 로저 윌리암스의 석상입니다.
성공회 사제 출신으로 스스로 청교도가 되어 신대륙의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엄격한 정교분리를 주장한 사람입니다.





그 옆으로는 영국 청교도 운동의 지도자로 의회를 이끈 인물인 크롬웰,
그리고 제일 끝에는 헝가리의 복스케이의 석상이 있습니다.
그는 헝가리개혁교회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4명의 오른쪽에는 가운데로부터,
프랑스 종교 개혁을 위해 일하다가 1572년 성 바돌로매 축일의 대학살 대 살해된 꼴리니 제독(l’amiral Coligny),
스페인의 루돌프2세와 싸워 독립을 이끌어 네덜란드의 근대화를 이룬 국부 기욤 르 따시튠 (Guillaume le Taciturne),
그리고 제일 끝 쪽에는 독일로 망명한 위그노들을 숨겨 보호했던,
브란덴부르그의 선제후 프레데릭 기욤(Frederic-Guillaume de Brandebourg)의 석상이 있습니다.





캠퍼스 곳곳에는 이렇게 여러 사람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는데,
앙리 뒤낭과 피아제 등 이 곳을 근거로 활동 했던 사람들의 흉상입니다.





제네바 대학교 캠퍼스는 이렇게 역사와 낭만, 그리고 한가로움까지,
그리고 그 너머에는 치열함과 성찰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곳곳에 있는 샘에서는 갈증을 풀 수 있습니다.
이 종교개혁의 근거지가 되었던 대학에서도,
타는 목마름을 풀 수 있는 진리에의 탐구와,
도전하는 용기가 용솟음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칼뱅의 개혁에 대한 열정은
지금도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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