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섬서성(陝西省, 산시성)의 고도인 시안에는 대자은사(大慈恩寺)가 있습니다.
서유기로 유명한 삼장법사 현장(三藏法師 玄奘, 602년 4월 6일 ~ 664년 3월 7일)과,
신라의 승려 원측과 관련이 있는 사찰입니다.
삼장(三藏)이란 명칭은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에 능하다 하여 얻게 된 별칭입니다.
대자은사의 한 가운데에는 대안탑(大雁塔)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대자은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경전을 가지러 인도에 다녀온 삼장법사의 상이 서 있습니다.
삼장은 단순히 개인적 신앙을 위해 불교 성지를 방문한 것은 아니었구요,
불경의 수집과 번역을 통해 중국의 불교 수준을 높이고자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불교를 서로 교류할 수 있게 했지요.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내부지향적인데,
삼장은 그런 중국에서 희귀한 외부를 향한 세계화된 인물이었습니다.
삼장은 불법을 구하기 위해 인도에 갈 계획을 세웠지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나라에서도 서역으로 모든 가는 것을 금지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 태종 때인 629년 몰래 장안(長安, 지금의 서안)을 출발하여,
란주(蘭州)와 양주(凉州), 옥문관을 넘어 사막 속으로 들어갑니다.
혜립(慧立)과 언종(彦悰)이 지은 <대자은사 삼장법사전>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인적은 물론 하늘을 나는 날짐승도 없는 망망한 천지가 펼쳐지고 있을 뿐이다.
밤에는 귀신불이 별처럼 휘황하고 낮에는 모래바람이 소나기처럼 퍼부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 두려운 줄 몰랐다.
물이 없어 심한 갈증이 나고 걸을 수조차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5일 동안 물을 한 방울도 먹지 못해 입과 배가 말라붙고 당장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었다.
법사는 마침내 모래 위에 엎드려 수 없이 관세음보살을 외웠다."
그리고 17년째인 645년 1월,
그는 불경과 불상을 가득 싣고 장안으로 금의환향했습니다.
서역으로의 출입을 금했던 태종도 그를 기쁘게 맞이했습니다. 




경내로 들어서면 좌우에 똑 같이 생긴 종루와 고루가 있습니다. 




종루에는 철제 범종 한 구가 걸려 있는데,
명나라 때인 가정(嘉靖) 27년(1548년)에 만든 무게 3만 근(15t)의 범종입니다.
종에는 안탑신종(雁塔晨鐘)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관중팔경(關中八景)’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서안과 함양을 중심으로 한 관중지방의 팔경이라는 말인데요,
대안탑에서 울려 퍼지는 새벽 종소리가 바로 관중팔경중 하나라고 합니다. 




맞은편에 있는 고루에는 법고(法鼓)가 걸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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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있는 철제 등대에는 대자은사라는 글이 쓰여져 있습니다.
자은(慈恩)은 물론 이 절의 유래와 관련이 있지만,
이후에는 자은종(慈恩宗)이라는 종단이 세워집니다.
자은종은 현장법사가 인도로부터 가지고 들어와서 성립된 중국 불교의 종단인데요,
공(空)사상과 미륵신앙이 특징입니다.
즉, '인연으로부터 생겨나는 모든 법은 공하다'는 공사상이 그 핵심입니다.
물론 미륵신앙은,
우리나라에도 많이 퍼져 있듯이,
도솔천에 있는 미륵보살이 때가 되면 이 세상으로 내려와,
널리 불법을 펴고 중생을 제도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삼장법사의 좌상 앞에서 인증 샷~
좌상과 정문, 그리고 대안탑이 흡사 하나로 연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보리수와 연꽃 등 여러 불교 상징물들이 있습니다.
손목과 손만 있는 것이 조금 어색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대웅전 앞의 향초를 바치는 곳입니다.
액을 쫒는다는 붉은 색의 초들이 계속 타고 있습니다. 




입장료를 따로 내면 탑 내부에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1954년 설치한 내부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최상층인 7층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내부의 각 층에는 사리탑과의 각종 불구(佛具)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사방의 창을 통해 서안 시내의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올라가서 남쪽을 내려다보면 대자은사의 경내와,
삼장법사의 동상이 있는 광장,
그리고 서안 시내의 모습이 넓게 펼쳐집니다. 




반대쪽인 북쪽의 모습입니다.
분수가 있는 광장이 있고요,
분수 광장 좌우에는 2003년에 지은 현장법사 기념관도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넓은 서안 시내가 펼쳐져 있습니다. 




제일 윗 층의 지붕에는 연꼿과 같은 모양에 싯구가 쓰여 있습니다.
어디가 시작인지도 모르겠고,(그래서 첫글자를 어디서부터 해석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겠구요)
여기저기 찾아봐도 해석해 놓은 것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수유서천배불전(須游西天拜佛前)
인찬당승취경환(人贊唐僧取經還)
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역으로 가서 부처님 앞에 절하기를 바랬고,
사람들은 당나라 스님이 경전을 가지고 돌아온 것을 칭찬했다.”쯤이겠는데,
혹시 정확한 번역을 아시는 분은 알려 주십시오. 




이 곳은 반야당(般若堂)입니다.
대자은사는 당 태종의 태자인 이치(李治)가,
정관(貞觀) 22년(648년),
무루사(無漏寺)의 폐사지에 어머니인 문덕황후(文德皇后) 장손씨의 명복을 위해 절을 세웠습니다.
그 해는 문덕황후 사후 1주기가 되는 해였지요.
자은(慈恩)이라는 이름도 「자애로우신 어머님의 은혜」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이후, 각지에서 인재가 모여들며 절의 규모는 더욱 커졌구요,
건축물은 총 1,897칸,
승려만 300명이 넘게 있었던 큰 절이 되었습니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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