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시대의 선지자인 하박국이 잠들어 있는 곳은 하메단에서 남쪽으로 약 90km 지점에 있는 투이세르칸이라는 도시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에도 하박국의 묘가 있다고 하니,
진위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고,
물론 이스라엘에 있는 것도 모르기는 마찬가지겠지만요.... 




주변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곳이 하박국의 묘라고 주장되고 있는 걸까요?
하박국 선지자가 살았던 시대는 신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무척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당시의 국제적인 상황은 엄청난 격동기였습니다.
한때의 패자였던 앗수르 제국은 쇠퇴해 가고,
이집트도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 이후 느부갓네살이 바벨론 제국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었지요.
하박국의 글인 “하박국”서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후 20여년간 바벨론은 유다를 순차적으로 침공하고 결국 유다는 멸망하지요.
그리고 유대인들은 포로로 바벨론으로 잡혀갑니다.
이상은 팩트고,
이제부터는 전설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침략으로 유다 사람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갑니다.
바벨론에서 오랫동안 포로 생활(거의 노예 생활이었겠지요?)을 하다가,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이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유다의 포로들을 해방시키자,
추종자들과 함께 페르시아로 와서 하메단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했고,
그리 멀지 않은 투이세르칸에 묻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묘의 전면입니다.
그냥 보시면 건물의 입구만 보이지만,
자세히 보시면 검은색 차도르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쓰고 문으로 들어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란의 여인들은 이렇게 얼굴과 손을 제외한 전신에 검은색 차도르를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악이 선보다 더 힘을 발휘하던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악이 득세한 세상의 모순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의 이름 ‘하박국’은 이런 의미에서 붙여진 별명인지도 모릅니다.
‘하박국’이라는 이름의 히브리어의 어원이 ‘붙잡고 씨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건물 내부에는 매장한 자리를 알리는 이런 구조물이 있는데요,
화려한 장식이 그들이 하박국 선지자를 얼마나 존경하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선지자가 이 지역에서 삶을 마친 것에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가 이곳에 머문 것이 주전 610~590년 경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이란에는 지금도 유대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박국의 고민은 ‘하나님께서 이 악한 세상을 왜 그냥 두고 보시는지?’에서,
‘아무리 유다가 악해도 그렇지, 더 악한 바벨론으로 유다를 심판하시려 하시는지?’로 이어집니다. 




구조물의 작은 반투명창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면,
작은 석관이 있고(물론 매장한 위치를 나타내는 돌이지요. 내부에 유골 등이 들어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변에는 지폐들이 흩날려 있습니다.
미신적인 의미가 있겠지요. 




함께 간 친구와 함께 인증 샷~
묘지 옆에는 위대한 선지자 하박국이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가 위대한 점이 무었일까요?
그는 결국 하나님의 응답을 듣습니다.
응답을 들을 때까지 기다리는 그의 모습이 진정 위대한 선지자의 모습 아닐까요?
그리고 하박국의 믿음의 노래가 곳곳에서 이어집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2:14)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2:20)
“...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3:2) 




뒤쪽으로 돌아가니 두 노부부가 자리를 펴고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즐기는 이슬람의 인정이 그냥 지나가게 두지를 않습니다.
굳이 앉아서 차 한 잔 마시고 가기를 청합니다.
뒤에 있는 젊은 친구는 부모님을 모시고 산책을 나왔다고 하면서 직접 차 한 잔을 따라 주었습니다. 




묘의 측면 모습입니다. 




떠나려고 하는데 ‘아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슬람의 기도시간이지요.
한 신앙심 깊은 친구가 그 자리에 자리를 깔고 메카를 향하여 엎드려 기도하고 있습니다. 



2018574.JPG

그리고, 하박국의 믿음의 노래의 하이라이트가 머리를 스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
‘하나님을 인하여’하는 감사!
하박국의 이 기쁨의 노래는 가장 아름답고 원숙한 신앙의 경지를 보여줍니다.
이 감사의 찬양이야 말로 성숙한 신앙인의 입에서 넘쳐흐르는 감사요,
우리의 감사 신앙의 본질적인 원형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신앙인들은 풍성한 열매와 농작 축산의 풍요로움과 번성함과 축복받음을 위해서 모든 일에 찬송하며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비록 그렇지 아니하다 하더라도,
하박국은 기뻐하고 감사하리라는 믿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소산이 없다 하더라도,
포도나무의 실과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감람나무의 기름을 소유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양이 없고 소가 없고 식물이 없다 하더라도,
나는 기뻐하고 감사하리라는 것입니다.
비교 우위적 감사가 아닌 절대적 감사입니다.
농사가 잘 되었기 때문에,
남들처럼 실패하지 않고 성공했기 때문에,
아무개처럼 병들지 않고 건강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재물을 많이 쌓았기 때문에,
아무개처럼 사고 나지 않았기 때문에 감사를 한다면 그 감사는 비교 우위적 감사입니다.
감사의 진열장을 통하여 자기를 자랑하려는 심보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우리의 감사는 순수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박국과 같은 절대적 감사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깊은 감동을 가지고 떠납니다.
머릿속에 하박국이 외쳤던 믿음의 구절들이 맴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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