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12:20)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하여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의 용서를 받기에 너무나 크다고 할 만한 죄들이 어떤 것입니까? 주님께서는 자비로우시며, 무한하신 주님의 자비는 정죄하는 것보다도 용서하기를 더욱 서두르시고 더욱 기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은혜로우셔서 우리들의 그릇된 점만을 바라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구조를 알고 계시며 우리들이 진흙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무한하신 동정심과 자비를 가지시고 우리들의 모든 타락한 상태를 고쳐주시며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값없이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당신의 빛을 거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 빛을 우리들에게 비추어 주고 계십니다. [2기별, 231]

 

하나님은 모든 자비의 근원이시다. 그분의 이름은 "자비롭고 은혜"(34:6)로우시다. 그분은 우리를 우리의 가치에 의해 취급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 묻지 않으시고, 우리를 가치 있게 해주기 위하여 당신의 풍성한 사랑을 부어 주신다. 그분께서는 원한을 품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벌을 주려하지 않으시고 구속하려 하신다. 당신의 섭리를 따라 나타내시는 엄격함도 실은 완악한 자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의 고통을 씻어 주고 그들의 상처에 향유를 발라 주고자 심히 갈망하신다. [보훈, 22]

 

양떼를 돌보시는 그분의 노력은 지치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연약한 자에게 힘을 주고, 고통당하는 자를 구하며 어린양들을 당신의 팔로 모아 당신의 품에 안으신다. 그분의 양들은 그분을 사랑한다. [부조, 190]

 

어떤 사람의 생애에 위기가 닥쳐 그대가 조언이나 권면을 주고자 할 때, 그대의 말은 선을 위한 감화를 끼치되 평소에 그대 자신의 모본과 정신이 그대를 위해 확보해 놓은 정도만큼만 끼치게 될 것이다. 그대는 선을 행하기 전에 먼저 선하게 되어야 한다. 그대 자신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겸허하고 순수하고 부드러워지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킬 감화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대에게 이런 변화가 이루어지면,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생애하는 것이 마치 장미 덩굴이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포도나무가 자색 포도송이를 맺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대 안에서 영광의 소망이 되시면, 그대는 다른 사람들을 살피며 그들의 잘못을 폭로하는 길을 걷지 않을 것이다. 비난하고 정죄하는 대신에, 도와주고 축복하고 구원하는 것이 그대의 목적이 될 것이다. 그대는 그대 역시 여러 번 잘못을 범했다는 것과, 한번 바른 길에서 떠나게 되면 다시 그 길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상기할 것이다. 형제를 더욱 어두운 곳으로 밀어 넣지 않고 대신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그의 위험을 알려 주게 될 것이다. 갈바리의 십자가를 자주 쳐다보는 사람은 자기의 죄 때문에 구주께서 그 곳에 달리셨음을 생각하고 그의 죄악의 정도를 다른 사람들의 것과 비교해서 헤아려 보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위하여 재판석에 앉지 않을 것이다. 갈바리의 십자가의 그늘 아래서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비판이나 자만의 정신이 있을 수 없다. 잘못을 범한 형제를 구원하기 위하여 체면은 물론 생명이라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비로소, 그대는 눈에서 들보를 빼고 형제를 도와 줄 준비를 갖추게 된다. 그제서야, 형제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를 감동시킬 수 있다. 어떤 사람도 책망과 비난 때문에 그릇된 처지에서 돌이킨 적은 없다. 도리어,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떠나고, 마음을 걸어 잠근 채 회개하지 아니하였다. 유순한 정신과 친절하고 마음을 끄는 행동이 실수한 사람을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가리워 줄 수 있다. 그대의 품성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그대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게 변화시키는 능력을 주게 될 것이다. 매일 그리스도께서 그대 안에 나타나시게 하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그대를 통해 당신의 말씀이 가진 창조의 능력, 곧 우리 주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다른 영혼들을 재창조해 줄, 온유하고 설득력 있으면서도 강력한 감화력을 나타내실 것이다. [MB,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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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고전 16:14)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할일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 기도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진리에서 벗어난 것을 볼 때, 우리는 마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하여 우신 것처럼 그를 위하여 울어야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실수한 자들에 관하여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지 알아보자.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6:1).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여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5:19-20). 이것은 얼마나 큰 선교 사업인가! 이것은 가련하고 실수하기 쉬운 인간들이 그들의 마음에 꼭 맞지 않는 자들을 언제나 비난받고 정죄받을 대상으로 여겨 오는 것보다 얼마나 그리스도와 같아지는 길인가.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개인적으로 아시며, 우리의 연약함에 공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분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의 필요를 아시며,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숨겨진 채 표현되지 않은 슬픔을 읽으신다. 그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작은 자들 중 하나가 손해를 입으면, 그분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추궁하신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다. 그분은 연약하고 병들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들을 돌보신다. 그분은 그들을 모두 이름까지 아신다. 그분의 양 무리에 속한 모든 양들과 어린 양들의 고통은 그분의 자비로운 사랑의 마음에 전달되며, 도움을 요청하는 부르짖음은 그분의 귀에 들려진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범한 가장 큰 죄들 중 하나가 선지자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되어 있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뫼뿌리에마다 유리하였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34:4-6). [5T, 345]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진 마음은 사랑에 의해 지배된다. 사랑은 우리의 성품을 바꾸고 우리의 감정을 지배하고 우리의 욕망을 제어해 준다. 사랑은 증오를 몰아내고 우리를 온순하고 친절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생애를 즐겁게 해주고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감화를 끼치게 해 준다. [정로,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