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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치타프에 주말 부흥회를 다녀왔습니다.
아이들 방학도 하고 아이들도 오랜만에 여행을 하기를 원하고 해서,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다녀오기로 하고, 우리 네 식구와 박지범 선교사, 제냐와 라직 두 집사님,
일곱이서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말이 주말부흥회이지, 오고 가고 4박 5일의 여정입니다.

아침 6시에 출발했지만 하루에 갈 수 없는 길이라, 1,200km 정도 떨어진 아스타나에서 일박하고,(마침 아스타나에는 북 카자흐스탄 합회가 있고 게스트룸이 있습니다.) 그 다음날에 다시 400 km를 달려서 꼭치타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합계 1,600 km의 여정입니다. 물론 편도지요....
모두들 파김치가 되어서 꼭치타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캅차가이에서는 한달전부터 반팔 셔츠를 입고 다녔는데, 모든 사람들이 긴 팔 옷에 점퍼까지 차려입고 다니는 것입니다. 기온은 10~13도 내외, 게다가 비바람까지 부는 것입니다..... 반팔 옷만 가져간 저희 식구들은 오금을 펴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틀전 까지만해도 따뜻했는데, 우리가 도착하는 날부터 비바람이 불고 기온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꼭치타프는 주도(州都)이긴 한데, 도시의 분위기는 매우 음산했습니다.
도로는 다 패여 있고, 산뜻한 건물은 하나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제 기억속의 가장 어린 시절인 1975년 즈음의 원주의 분위기와 시설보다 나아보이지 않았습니다.
인구도 13만 정도니까 그 시절의 원주와 비슷한 규모로 보여집니다.

꼭치타프교회의 갈리슬라모프 안드레이 목사님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4살박이 딸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사진 오른쪽에서 3,4,5번째).
젊고 열심있는 목사님 가족입니다.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하고, 며칠 지낼 짐을 풀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수도가 없는 것입니다. 부엌에서도 욕실에서도 물을 퍼서 쓰는 것입니다.
어찌된 것인가를 물었더니, 원래 이 마을에는 수도가 없답니다.
그래서 물차에서 물을 사서 큰 통에 담아놓고, 그 물을 조금 조금 퍼서 쓴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뜨악~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집에 물이 나오는 시설이 없다니요....
손님으로간 우리 모두는 최선을 다해서 물을 아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바가지의 물도 귀한 상황이니까요.
밤에 집사람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불평했던 것이 쑥스러워졌습니다.
캅차가이의 우리가 사는 집에 온수 공급이 않되고, 부엌에도 수도는 있지만 물이 쫄쫄거리며 나오거든요. 우리 식구들은 이것이 굉장히 불편해서 불평을 했었습니다.
꼭치타프 목사님 집을 보니, 그래도 작은 물줄기나마 물이 나오고, 목욕탕에 찬물이지만 물이 나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감사하지 않을 일이 없습니다.

금요일 저녁, 예배드리러 가는 시간에 우박이 내리고 번개까지 치기 시작했습니다.
번개가 치는 것을 보면서 걱정이 앞섰습니다. 저녁 예배를 PPT로 준비했는데, 이 지역은 번개가 치면 정전이 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도착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정전이었습니다. 전기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는 일,,
급히 다른 설교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아직도 밖은 훤히 해가 떠있어서 어두운 가운데 드리는 예배는 아니었습니다.
아, 저녁 예배시간이 왜 환하냐구요?
꼭치타프는 북위 55도 즈음에 있는 카자흐스탄 북부의 도시입니다.
지금 6월이니까, 러시아 정도는 아니지만 백야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밤 11시에 밖에 나갔는데, 조명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어두워지는 것은 보지 못하고, 밖은 아직 훤한데 커튼을 치고 잘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교회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약 50여명이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물론 노인들이 많고요, 어린이들도 몇몇 눈에 띄었습니다.

안식일 아침,
전기부터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마음놓고, 장치들을 준비해 놓고, 설교 시간이 되어 등단을 했습니다.
설교를 시작하려고 인사를 하고 첫 마디를 말하는데, 또 정전!
또 다시 설교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뭐가 이리 힘이 드는지~~~

예배를 마치고 안식일 오후,
한 환자를 방문하자고 목사님이 제안을 하셨습니다.
김 발렌티나 뾰뜨로브나 할머니랍니다.
“음~~ 성이 김인 걸 보니 아마도 꼭치타프 교회에 다니는 고려인 동포 할머니인가보다” 라고 생각하고, 함께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실에 들어섰는데, 웬걸, 금발의 서양 할머니가 누워계셨습니다.
이름을 확인하니, “김 발렌티나 뾰뜨로브나”가 틀림없습니다.
꼭치타프 교회에 다니시는 할머니인데, 척추에 문제가 생겨서 보름전에 수술을 받고 누워계시다고 합니다.
할마니는 한국말로 이렇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나 짐해 김가~”
내용인즉슨 이렇습니다.
할머니는 젊어서 김해 김가 고려인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하셨답니다.
그러니 할머니 성이 남편을 따라 김해 김가로 바뀌었지요.
그래서 딸 둘 아들 하나를 낳으셨답니다.
그러나 남편은 37세때에 죽고, 홀로되어 지금까지 자식들을 키우며 수절을 하셨답니다.
보통 한두번씩 이혼하고 재혼하는 이곳 사람들에 비해보면 아주 특별한 경우이지요.
그 아이들이 다 커서 이제는 증손자를 보셨답니다.(이 나라는 보통 20세 전후에 결혼을 해서, 60대 중반이면, 증손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사님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원래 폴란드인이지만, 보통 고려인들보다 더 한국적이랍니다.
고려인이 교회를 방문하게 되면 꼭 초청해서 대접하면서 자신의 남편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온 목사가 온다니까, 그렇게 반가워하면서 몇 달전부터 자신의 집에서 살게 하고,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이야기했는데,
뜻하지 않게 수술을 하게 되어 대접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할머니는 함께 방문한 집사람 손을 꼭 붙잡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다음에 오면 꼭 내가 내 손을 키운 콩나물과 손두부로 대접을 할테니 꼭 다시 오세요..”
할머니는 젊어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한국 요리들을 다 배워서 만드실 줄 아신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처음에 “마오자이(서양인들을 비하하는 고려인들 사이의 말로 ‘파란 눈깔’ 정도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며느리”라면서 구박을 하셨다지만,
그 시어머니가 80이 넘어 돌아가실 때까지 정성으로 수발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우리 아기는 고려인보다 더 고려인이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안식일 저녁,
저녁 예배시간입니다.
이번에는 전기가 온전하게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법에 대해서 함께 눈물을 흘리며 말씀을 나누고 세 번의 예배를 마무리했습니다.

돌아오는 길,
또다시 아스타나의 합회에서 일박하고, 6월 5일 저녁이 되어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왕복 3,000 km가 넘는 길을 오가는 중에 돌보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성도들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이러한 귀중한 경험들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과,
이러한 선교사로서의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후원해 주시는 모든 후원회원 여러분,
그리고 기도로 성원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카자흐스탄 선교사 정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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