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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메이 부흥회 이야기

2005.05.18 01:19

정근태 조회 수:911 추천:6





E-mail : adventist@kuc.or.kr
Homepage : http://www.1stdream.com/

(사진은 세메이 교회와, 우리 나라의 당산 신목처럼 천 조각들을 매어놓은 샤만의 나무입니다. 우리 전래 신앙과 비슷하지요.)

5월 12일 목요일,
남카자흐스탄 합회장, 총무부장님과 통역 집사님과 함께 세메이라는 도시로 부흥회를 떠나기로 한 날입니다.
아침 7시에 캅차가이에서 만나서 떠나기로 하고, 이른 아침을 먹고 기다리고 있는데, 알마티에서 오기로 한 목사님들이 차량의 베어링이 망가져서 다시 알마티로 돌아갔으며, 기다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침 일곱시부터 기다린 이번 여행은 몇 시간 애를 태운 끝에 오후 2시 15분 드디어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5시 30분 경,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딸띄뚜르간이라는 도시에 들러서 딸띄뚜르간 교회 목사님의 사택에 들러 인사를 하려했으나, 집을 비운 관계로 만나지 못하고, 시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6시 30분 다시 출발하였습니다. 창밖에 펼쳐지는 풍경은 거의 똑같습니다. 해가 져서 사방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쪽은 작은 구릉, 다른 한쪽은 끝없는 지평선, 끝없는 초원에 말과 양들만이 있고, 집은 거의 없는(물론 도로변에 휴게소 같은 것은 있을 리가 없지요.) 풍경이 계속됩니다. 카자흐스탄이 끝없는 스텦 초원지역인 것을 실감하게 합니다. 도로는 우리 아이들이 전에 표현한대로 카트레이더(도로의 장애물들을 피해 운전하는 컴퓨터 게임) 게임을 하는 것 같습니다. 단 50m도 도로가 파이지 않고 평평하게 계속된 곳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계속해서 도로의 군데군데가 파이고 장애물을 피해가야 합니다. 두 목사님이 돌아가면서 쉬지 않고, 계속해서 운전을 했습니다.
5월 13일 금요일,
아침 7시 15분. 캅차가이로부터 세메이까지 무려 1250km의 장정을 마치고 세메이의 클리신 겐나지 뻬뜨로비치 목사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목사님 댁은 목사님 내외와 실명하신 목사님의 노모, 10대 후반의 두 아들 아르쫌과 지마, 4살짜리 아들 다니엘, 2살짜리 막내 딸 마리아 이렇게 일곱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한숨을 자고 일어나니 사모님은 집에서 나가시고 없었습니다. 통역 집사님 말로는, 목회자 월급으로는 일곱식구를 다 부양할 수가 없어서, 한나절에 350뗑게(약 3$)를 받으며 파출부를 매일 다니시는데 오후 세시쯤 돌아오신답니다. 지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을 공부하기를 원하는데, 모스크바 근교에 있는 자옥스키 대학 신학과의 1년 등록금이 1500$인데 이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케이크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답니다.
세메이는 구 소련 기간 동안 세미팔렌친스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도시인데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이후에 카자흐식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세메이로부터 약 100km 떨어진 곳에는 구 소련 시절 원폭 실험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도시는 기형아들이 많고, 환경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구 300,000의 도시인 세메이는 이제 새롭게 발전의 기틀을 놓고 “보스또치나야 카자흐스타나” 주의 수도로서 발전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도시 군데군데에 건축을 하고 있는 등, 활기가 넘치고 있는 도시입니다. 그렇지만, 북위 50도가 넘는 북쪽에 위치한 도시이기 때문에 쌀쌀한 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녁 6시 40분, 세메이 교회에 갔습니다. 아담한 교회에 약 40석의 의자가 놓여있었습니다. 남부카자흐스탄에서는 볼 수 없는 카자흐인들이 과반수가 넘는 교회입니다. 무슬림의 배경을 가진 이들이 많다고 하는 데에서 작지만 무슬림 전도의 희망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약 20여명이 모여서 예배를 시작하는데, 반주자가 없자, 합회장 김 알렉 목사님이 피아노 앞에 앉아 능숙한 솜씨로 반주를 합니다. 김목사님은 교회에 들어오기 전에 악단에서 악사로 일했기 때문에 여러 악기들에 능숙합니다. 예배를 마치고 친교를 나누는 것은 어느 교회에서나 익숙한 풍경입니다.
숙소는 한 아파트를 사흘간 임대해서 목사님들만 함께 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 들어가보니, 거의 흉가입니다. 벽지는 반이 뜯어져 있고, 화장실 변기의 앉는 부분은 당연히 없고, 타일도 벽 한 면은 다 떨어져서 흙과 세면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호랑이보다 약간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두고 갔는데, 이제 함께 살아야만 했습니다. 침대는 시트를 갈은지 1년쯤 되어 보이는 얼룩이 잔뜩 진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그냥 잘 수 없어서 수건을 한 장 깔고 그 위에서 웅크리고 자려했으나, 추워서 그냥 그 시트를 덮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북쪽이라 밤에는 추위를 참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5월 14일 안식일,
안식일 아침 10시에 시작되는 예배는 알마티에서의 예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역시 20여명이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어제와는 구성원이 좀 다름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물으니, 어제는 한국에서 목사가 왔다고 이웃에서 여러 사람이 왔고, 그들은 안식일 오전에는 일하러 가고, 좀 먼 곳에 사는 교인들이 왔다는 것입니다. 한시에 예배를 마치고, 교회에는 파틀락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제가 6년전부터 중앙아시아의 여러 교회들을 다녔지만, 한인 교회를 제외하고는 점심 식사를 함께하는 교회를 보기는 처음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동행한 3명과 세메이 교회의 겐나지 목사님과 함께 세메이 시내를 돌아보았습니다. 세메이에서 전도회를 계획하고 있으니 돌아보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이르뛰쉬 강이 가운데를 흐르는 세메이 시내는 구 소련의 다른 도시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강이 흐르기 때문에 느끼는 아름다움을 제외하고는 그렇습니다. 유라시아에서 가장 긴 강이라고 겐나지 목사님이 이야기했는데(중국에서 발원해서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를 거처 북빙해로 흘러들어간답니다.) 그 강에는 3개의 다리가 걸쳐져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만든 다리는 일본 기업에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약간 외곽으로 나가니 소나무 숲이 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소나무들이 쭉쭉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습니다. 나라에서 특별히 보호하는 자연 보호구역이라고 합니다. 넓이는 30~50 km이고 길이는 100여 km이상 떨어진 러시아와의 국경 너머의 시베리아 침엽수림으로 연결된다고 합니다.
저녁 예배는 어제 왔던 멤버들이 다시 자리를 채운 가운데 드려졌습니다. 여러 카자흐민족 사람들이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외국에서 목사가 왔다니까 몇몇 이웃까지 함께 데리고 와서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5월 15일 일요일,
특별한 일정이 없었으나, 목사님의 두 아들이 옷을 챙겨 입고 나가기에 어디에 가느냐고 물으니, 교회에 다니는 한 아가씨가 가라테 승단 시험을 보는데 그곳에 청년들이 함께 가기로 했답니다. 쿠미사이라는 카자흐족인 이 아가씨는 정말 열혈여장부였습니다. 모인 승단 응시자 가운데 단연 최고였습니다. 팔굽혀펴기를 주먹쥐고 40개를 거뜬히 하고, 윗몸일으키기를 다시 40개, 기본동작, 대련까지..... 단연 최고였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이 아가씨는 30세이고, 가족들은 무슬림인데, 혼자 교회에 다닌답니다. 세메이의 한 콜리지의 교수라고 하더군요. 승단시험을 마치고는 모든 청년들이 “서울”이라는 레스토랑으로 갔습니다. 이곳에서는 침묵 가운데 소연이 베풀어져 있었습니다. 사연인즉슨 쿠미사이의 여동생이 40일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이곳 풍습으로는 40일이 지나면(마치 한국의 49제처럼...) 이런 모임을 한답니다. 끝날 즈음에, 뮬라 (이슬람 성직자)가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카자흐어도 아니고, 러시아어도 아닙니다. 나중에 들으니 아랍어라고 합니다. 그러면 “누가 알아듣느냐?”고 하니까 아무도 못 알아듣는 답니다. 마치 중세에 가톨릭이 라틴어로 예배를 드리며,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설교와 기도를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저녁 예배, 어제의 멤버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함께 은혜를 나누며, 이제 마지막 시간을 아쉬워하며 다시 전도회로 모일 것을 기원했습니다. 살타나라는 카자흐 아가씨는 목사님 댁까지 쫒아와서 이런 저런 질문을 하는 열심을 보였는데, 우리 남자들(목사님들)이 밤 10시 임대한 아파트로 간 이후에도 새벽 2시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5월 16일 월요일,
아침 10시 13분 캅차가이행 기차를 탈 예정이었지만, 30분을 연착하여 45분에 출발합니다.
4인 침대칸에 승차했습니다. 나와 통역 제냐 집사님이 방에 들어가자, 이미 두 아주머니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러시아의 시베리아로부터 기차를 타고 왔는데 알마티로 간다고 합니다. 바깥은 끝없는 초원, 지평선입니다. 가끔 구릉이 보이고, 어쩌다 산이 보이고, 그리고는 또다시 같은 풍경입니다. 한 시간쯤 가면, 집을 셀 수 있는 마을이 있고, 두세번 도시가 있습니다. 계속 같은 풍경이 해 질 때까지 계속됩니다. 철로가 단선이라, 마주오는 기차가 있으면, 30분~1시간 쯤 서서 기다리는 것은 보통입니다. 인내를 배우는 기차입니다.
5월 17일 화요일,
5박 6일의 여행의 마무리 시간입니다. 아침 8시 30분, 캅차가이에 기차가 섰습니다. 부흥회를 무사히 다녀올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 세메이 교회는 전도회를 개최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의사 선생님들을 모시고 의료 봉사를 병행하면서, 도시에서 가장 큰 홀을 빌어서, 지역 텔레비전과 신문에 광고를 내고, 3주간 매일 저녁 2시간씩 전도회를 해서 이 교회가 새로운 사람들을 얻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전도자금 5,000US$과, 함께해 주실 의사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후원해 주실 분은 e-mail : adventist@kuc.or.kr, 혹은 제 홈페이지 www.1stdream.com 게시판을 통하여 연락 주시기를 바랍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정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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