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캅차가이 이야기

2005.04.25 13:08

정근태 조회 수:949 추천:8



(아래 이야기에 나오는 고려인 아주머니와 함께한 집사람입니다.)

저는 카자흐스탄의 제일 큰 도시인 알마티 북쪽 약 50km지점에 있는 캅차가이라는 도시에 자리를 잡고, 선교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캅차가이는 작은 도시입니다. 그렇지만 이 도시에 들어서면 옛날에는 꽤나 잘 정돈되었던 도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지역 도시들이 다 그렇듯이, 소련에서부터 독립한 이후 15년동안, 길이나 기타 시설들을 정비하지 않아 많이 망가져 있지요.
인국 약 10,000명 정도로 보이는(정확하지 않고 추측입니다.) 이 소도시에 고려인들은 2,000명이 살고 있답니다. 고려인 교회(침례교)도 하나 조직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캅차가이는 캅차가이 호수(물이 짜지 않아서 호수이지, 수평선이 보이고, 파도가 칩니다. 거의 바다같이 느껴지지요...) 연안의 도시로, 여름에는 휴양객들이 많이 온다고 합니다. 이 호수는 물이 깨끗하고, 얕고, 수온이 높아서 여름에 수영하기에 아주 좋다고 합니다.

이 도시에 우리 재림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이 교회는 아파트 한 채를 개조해서 20~30명의 사람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한분 있었지만, 지난 4월 9일자로 사직하고 러시아로 이민을 갔습니다. 장로님이 한분 계시고, 70%가 50세 이상이며, 80%가 여자들인 전형적인 시골 교회이지요.

4월 9일, 캅차가이에 살 생각을 결정하지 않은 채, 이 교회를 방문해서 첫 안식일을 보냈는데, 그 날이 마침 목사님이 이임하는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이민을 하게 돼서 여러 성도들이 앞으로 이 교회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전날까지 걱정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임하는 목사님 말씀이 지난주에 걱정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이 교회를 위하여 선물을 준비하실 것이다”라고 설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금요일에 우리가 방문하겠다고 연락을 받고, 또 우리 가족과 통역하시는 김 라직, 제냐 집사님 가족이 이 도시에 살게 된 것이지요. 이러저러하게 되어 결국, 우리는 합회 발령도 없이 그냥 캅차가이 교회의 목사처럼 일하게 된 것이지요. 합회에서는 제가 이 도시에 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눈치입니다. 설교할 사람도 마땅치 않은 교회 옆에 목사가 와서 살게 되었으니까요. 어쨌든 캅차가이 교회는 저를 통한 하나님의 카자흐스탄 선교의 기지가 될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4월 22일) 저녁, 교회에 갔습니다.
아무 순서도 부탁받은 것이 없기에(아직 정식 결의를 거치지 않았으니, 당연히 이 교회의 행정적인 측면은 관여하고 있지 않지요, 대신 카자흐스탄 전체를 향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안식일을 맞으러 갔건만, 교회에는 집사님 한분만이 계셨습니다. 다른 때와는 달리 좀 허전한 감이 있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몇몇 성도들이 들어와서 니꼴라이 장로님(한분밖에 없는 장로님 성함입니다.)의 아들이 자살해 죽었다는 것입니다. 35세이고, 아내와 아직 어린 세 아이가 있는 젊은 친구입니다. 이 부부는 전에 교회를 다니다가, 요즘은 뜸한 상태라고 합니다.(당연히 저는 아직 한 번도 본적이 없지요.) 이날 설교는 장로님이었기에 당연히 교회에는 설교할 사람이 없었고, 당연히 저는 설교를 했지요. 다음 날, 저는 역시 설교하지 않는 안식일을 여유를 부리며 교회에 갔습니다. 알마티에 있는 합회에서 목사님이 와서 설교를 할 차례였답니다. 그런데, 연락도 없이 알마티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고, 안식일학교를 진행하다가 중간에 수석집사님이(장로님은 상중이기 때문에 오시지 못하고...) 설교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안식일 설교를 하게 되었지요. 식사후, 잠시 상가에 갔다가 저녁 일몰 예배로 모였습니다. (이곳은 화요일 저녁 예배가 없고, 안식일 일몰 예배로 모여서 약 한시간의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니까 예배가, 금요 저녁의 환영 예배, 안식일 예배, 안식일 저녁 일몰 예배로 집중되어 있지요..) 집사님이 설교를 맡았는데, 상가에서 도울 일이 있다고 가버렸습니다. 결국은 다들 또 저를 쳐다보았고, 안식일의 세 예배 설교를 다 즉석에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교회가 작고, 체제가 갖추어지지 않아 어려움이 많습니다.

지난 두 안식일에 교회에서 고려인(한인 동포)를 찾아볼 수 없었는데, 이 안식일(4월 23일)에는 한 고려인 아주머니가 뒷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반가와서 인사를 하니, 한국말을 꽤나 잘 하셨습니다. 이분 말씀이, 캅차가이 재림 교회에 한국에서 목사가 왔다는 소문이 나서 듣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고는, 자기가 고려인 친구들을 많이 모아서 초청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자기들은 꼭 한국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교제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통해서 어떤 일을 하실지 기대가 됩니다.

안식일 저녁에는 예배를 마치고 세르게이라는 젊은 부부의 초청을 받아 집에 갔습니다. 약 12평 남짓되는 작은 집에서 부부 단 둘이 살고 있는 단촐한 살림입니다. 약 10명의 객들이 가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부부는 약 1년 전부터 우리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안주인의 말이, 자신이 재림교회에 다니기를 결심하기가 매우 힘들었는데, 어렵게 결심하고 부부가 함께 침례를 받는 날 산에 무지개가 걸렸다고 합니다. 자신은 그 무지개를 하나님의 약속과 분명한 진리로 인도하셨다는 증거로 받아들인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일요일(4월 24일), 장례식에 갔습니다.
도시에서 약 3 km 떨어진 작은 언덕에 공동묘지가 있었습니다.
묫자리를 약 3m를 파 놓았는데, 이 언덕 전체가 모래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모래 위에 묘를 만들었습니다. 교인들이 아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관 예배를 집전했습니다. (이젠 완전히 소문이 났지요...) 몇 마디 권면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위로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캅차가이는 자살이 많은 도시랍니다. 하루에도 몇 명씩 자살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이 다 그렇듯이 마약을 복용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이들에게 복음이 생명의 빛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산업 시설이 적어서 실업자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공기와 기후는 좋지만, 여러 부정적인 면도 함께 가지고 있지요.
하나님께서 이런 부분들에 당신의 성령의 빛을 비추실 것입니다.

이렇게 저의 카자흐스탄에서의 사역은 시작되고 있습니다.

여러 공산주의 체제의 잔재들 때문에 어려움이 없지 않고,
아이들이 생소한 언어로 공부하는 일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이 카자흐스탄에서의 사역이 경제적으로는 개인 후원들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이 있지만,

카자흐스탄에서 저와 저의 가족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카자흐스탄에서 하실 놀라운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서는 선교사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특별히 카자흐스탄과 캅차가이에서의 선교 사역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또한 경제적인 지원을 요청합니다. 선교 사역을 위해서 소액이라도 후원해 주십시오. 선교사역을 계속하는 중요한 격려가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캅차가이에서 정근태

(선교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들과, 격려하실 수 있는 게시판이 www.1stdream.com 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선교후원을 위한 계좌도 홈페이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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