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 (1:13)

 

바울은 '에피메니데스'의 그레테인에 대한 평가에 동의합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디도가 그레데인, 특히 거짓 교사들을 꾸짖으라고 요구합니다.

 

아첨은 상대방의 영혼을 참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지만, 책망은 진정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성경은, 훈계를 듣는 것이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며 목의 금사슬이라고 말씀했고(1:8, 9), ‘면책(面責)은 숨은 사랑보다 낫다고 했다(27:5). 우리는 책망을 들을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김효성 신약 강해]

 

바울은 이어서 꾸짖음의 목표를 분명하게 합니다.

 

첫째, ‘믿음을 온전케 하기 위하여입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그레데인들을 징계하라고 하는 목적은 그레데인들의 믿음을 온전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디도에게는 어쩌면 의사가 환부를 도려내듯이 아픔이 있을지라도 이 일을 행하여야 할 직임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정죄가 그 목적이 아니라 치료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잘못된 것을 따르지 않게 하기 위하여입니다.

먼저, 유대인들은 허탄한 이야기를 가지고 교회를 어지럽혔습니다.

구약의 율법, 특히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15:1, 6:12)이 대표적이었지요.

엘렌 화잇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우리에게는 공허하고 어리석은 이야기에 몰두할 시간이 없다. 이 시대를 위한 엄숙하고 신성한 진리에 거하도록 하자.’(서신 82. 1901).

다음으로는,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어지럽혔습니다.

'배반하는'이라는 말은 '자의로 거역하는', '습관적으로 거부하는'이라는 원어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질책은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1: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25:12)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참된 진리의 길에 서도록 하기 위하여 필요한 꾸짖음은,

사람을 생명의 길에 굳게 서게 하는 것이 되겠지요?

 

 

 t43.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