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세기 투르크계 무슬림들의 이주

 이슬람은 신라와 고려, 조선 시대 때까지 한국과 문명을 교류하고 이슬람선교를 시도했다. 15세기 중엽 조선의 세종 이후 약 4세기의 공백기 후에 이슬람 선교는 19세기 말부터 다시 진행되었다. 1898년 러시아의 청조(淸朝)로부터 동청(東靑)철도 부설권을 획득한 계기로 러시아의 투르크계 무슬림들이 중국의 하얼빈(Harbin)을 중심으로 만주 일대에 러시아 전역으로 이주하여 움마를 이루게 되었다. 그 후 1915~1920년 사이에 제 1차 세계대전과 볼세비키 혁명을 계기로 투르크계 무슬림들이 국내에 이주하기 시작하였고, 1920~1940년 중반까지 200~250여명의 투르크인들이 한반도 전역으로 이주하여 이슬람공동체를 이루었다.

 국내에 거주했던 투르크계 무슬림들은 주로 의류 도·소매업을 중심으로 포목점과 양복점을 경영하였는데, 상업과 국제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면서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들은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목포, 대전, 평양, 신의주, 청진, 홍남 등 전국에 걸쳐 이슬람공동체를 이루면서 종교적·문화적 활동을 지속해 갔다. 이들은 서울, 부산, 대구 등지에 이슬람 마을(Mahall-i Islamiyeg)이라는 공동체를 형성하였으며, 서울 시내의 중심가에는 이슬람 학교(Mekteb-i Islam)을 통하여 무슬림 자녀들을 교육하기도 하였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투르크 무슬림들은 조선총독부와 일본 정계인들 및 고위 군부들과 밀접한 협력 관계를 추구하면서 무역과 상업 활동으로 인한 경제적인 부를 축적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일본의 패망 이후로 불안한 국내 정치상황으로 인하여 투르크 무슬림들은 1940~1950년간에 캐나다, 미국, 호주, 터키 등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에 일제 치하를 겪은 우리 민족은 나라의 아픔을 끌어안고 같이 해결하려고 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경제적인 부만을 얻고자 하였던 투르크인들에게 부정적인 시각을 갖기도 하였다. 결국 투르크 무슬림들은 한국에 이슬람을 적극적으로 포교하지 못했고, 한국의 공동체 형성에 특별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3. 6․25 전쟁 이후 

 1950년 한국전쟁 다시 유엔군 소속으로 터키의 군인들이 한국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참전한 병력의 규모는 미국 다음으로 여단 규모의 병력을 파병하였다. 당시 압둘가푸르 카라이스마일오울루(Adulgafur KaraismailogLu)라는 터키 제6여단 사령부의 군 이맘(Imam)은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선교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압둘라 ‘김유도’와 우마르 ‘김진규’ 등이 개종하였고, 이들은 1세대 한국인 무슬림들로 형성되었다. 이후 김유도와 김진규는 1955년 9월 15일 ‘한국이슬람협회’를 결성함으로서 적극적인 이슬람 선교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슬람 선교 활동은 교육에도 이르렀는데, 한국 전쟁 당시 후방에서는 ‘앙카라 학교’를 건립하여 전쟁고아의 양육과 교육활동을 하였고, 1956년 4월에는 ‘청진학원’을 설립함으로서 중등교육과 이슬람 교리교육을 무료로 실시하기도 하였다. 

 1956년 주베이르 코치(Zubeyr Koch)가 2대 이맘으로 부임하면서 입교자는 ‘208명’에 이르게 되었고, 1959년 이슬람협회 지도자였던 김진규는 서정길과 함께 이슬람 국가를 순방하면서 한국 이슬람의 실정을 알리고 후원을 요청하였으며 1960년에는 한국 무슬림으로는 최초의 성지 순례자들이 되기도 하였다. 그 이후 계속되는 지원을 통하여 1965년 4월 ‘한국 이슬람교 중앙연합회’가 조직되었고 1967년 3월 13일 ‘재단법인 한국 이슬람교(Korea Islamic Foundation, KIF)’로 종교법인 등록을 하게 되었으며 현재까지 한국 이슬람의 중추적인 의결기구로서 활동하고 있다.

 1970년 9월에 한국정부는 용산구 한남동의 1,500평의 땅을 이슬람 중앙성원 건립용 부지로 기증하였고, 이후 이슬람 국가들의 재정적 후원으로 1976년 5월 21일 이슬람 성원의 개원식이 있었다. 이때부터 한국 이슬람은 증가하기 시작하였는데, 1960~1970년대에는 한국 기업들의 중동 국가 진출을 계기로 3,700명이었던 이슬람 인구가 약 두 배로 증가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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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에는 한국에 이슬람 대학을 건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슬람 대학 건립 추진 위원회’가 결성되었고, 2차 석유파동을 계기로 1980년 5월에는 최규하 전 대통령이 칼리드(Khalid) 사우디아라비아의 왕과 한국 이슬람 대학 설립을 합의하였으며 경기도 용인 13만 평의 이슬람 대학 부지를 기증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이슬람 교육 및 연구 활동이 활발하였는데 1997년 ‘세계 무슬림연맹(Rabita)'과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주체로 무슬림 학자 20여명과 100여명의 국내외 이슬람 학자들이 모여 “동아시아의 이슬람 ― 역사와 문화적 조화의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렇듯 현대에 들어서 이슬람은 활발하게 선교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한국 내에 무슬림들은 조금씩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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