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이란은 어떤 면에서 낯설지 않은 나라다. 과거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이란을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해 버렸기 때문. 이란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슬람 문화, 산유국, 핵보유국, 아시아의 축구 강국…. 두 권으로 이어지는 이 책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는 단편적인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을 우리의 시선을 격동하는 이란의 역사 앞으로 안내한다.

'페르세폴리스'는 20세기까지만 해도 이란의 원래 국명이었던 페르시아의 고대 수도 이름이다. 책은 바로 그 고대 페르시아 문명이 꽃피었던 이란에서 태어난 한 소녀의 특별한 성장기이자,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있다, 1978년부터 16년간 이란에 휘몰아친 정치적 격변을 담고 있으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가 그러했던 것처럼 충분히 우울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다양한 에피소드와 함께 유머를 잃지 않고, 서술하고 있다.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나온 원작의 만화책이라 손쉽게 책장을 펼쳤는데 만화치고는 글이 많아 소설처럼 읽힌다. 위키피디에서는 '그림 소설 (graphic novel)'로 분류하고 있다. 두터운 펜으로 그린 약간은 투박한 듯한 흑백의 그림 속에 '이란'이 있다.

만화로 처음 만나는 페르시아의 현재, 이란

이 오래되고 거대한 문명은 광신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와 테러 등에 관련지어서만 이야기되어 왔다. 인생의 반 이상을 이란에서 보냈던 한명의 이란인으로서, 나는 이란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가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중략) 이란인들이 그들의 자유를 지키려다가 감옥 속에서 죽지 않기를, 이라크와 전쟁으로 목숨을 잃지 않기를, 온갖 억압 속에서 고통 받지 않기를 소망한다. 용서는 해도, 잊어서는 안된다 - 책 서문 저자의 말 가운데

이 책을 읽기 전 나 역시 이란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중동지역 대부분의 나라들처럼 석유는 풍부하지만 모래 바람이 날리고, 분쟁이 끊이지 않으며 특히 여성들에게 베일(Veil)을 강제로 씌우는 보수적인 종교의 나라들 중 하나를 연상했을 뿐이다. 그러다 책장을 넘기면서 이란이란 나라가 1935년 이전까지는 수 천년 동안 '페르시아'라고 불렸으며, 이슬람 국가가 된 것도 80년대부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갑자기 모래바람 사이로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생의 집에 놀러 갔다가 조카의 책꽂이에서 발견한 두 권의 이 책 표지에 차도르를 둘러 쓴 어린 소녀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어린이용 만화책이라 여기고 간단히 책을 펼쳤다가 다 큰 어른이 웬 만화책이냐는 핀잔을 들으며 빌려 읽게 되었다. 이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올리브 나무 사이로> 등도 보았지만 이 책만큼 이란의 현실과 낯선 풍경, 생경한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주진 못했다.

책 표지의 검은 두건을 쓴 어린 소녀의 모습은 매우 상징적인 것으로, 열 살이 되자 갑자기 학교에서 검은 두건인 차도르를 쓰라고 했고, 그걸 쓴다는 게 너무 싫었던 한 소녀가 바로 주인공인 마르잔이다. 초등학생들도 머리에 차도르를 두르지 않으면 감옥에 가두는 억압이 일상인 나라. 차도르는 우리의 오랜 전통이며 문화라고 차도르를 두른 여성들이 자신들의 차도르를 쓸 권리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결국 소녀는 세상의 모든 차도르는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임을 알게 된다.

여성을 윤기 흐르는 머리로 뱀처럼 남자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사악한 존재로 취급하는 데서 유래된 이 검은 두건은 차도르, 히잡, 부르카 등으로 불리며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이슬람 국가에 사는 여성들의 상징이 돼버렸다. 이 두건을 생각하면 '문화적 차이'를 넘어 차도르를 찬성하는 여자들마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선동에 속아 넘어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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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을 윤기있는 머리카락으로 뱀처럼 남자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사악한 존재로 취급하는 데서 유래된 검은 두건, 차도르.



시민 혁명의 과실을 훔쳐간 엉뚱한 인간

억압은, 일단 그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점점 그 강도를 더해간다. 결혼하지 않은 성인 남녀가 거리를 함께 거니는 것만으로 풍기문란으로 잡혀가고, 동성애자는 물어볼 것도 없이 사형. 모든 종류의 파티는 금지. 관공서에 드나들 땐 화장도 금지! 게다가 이것이 수많은 시민들이 피 흘려 얻은 혁명을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엉뚱한 인간이 나타나 가로챈 결과라면··· - 본문 가운데

<페르세폴리스>엔 우리의 현대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많다. 1979년 부패한 카다피 왕조에 반기를 든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켰으나, 혁명가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하나 둘 암살되어가고, 1980년 마침내 호메이니를 대표로 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권력을 차지한다. 마치, 부정선거로 촉발된 시민, 학생들의 분노가 이승만 정권을 몰락시켰으나 1년 뒤, 한 군인이 일으킨 쿠데타로 새 시대의 정권을 찬탈했던 것처럼. 혹은 이란 혁명이 벌어지던 것과 같은 시기, 박정희가 사라지고 나니 난데없이 나타난, 권력에 굶주린 또 다른 군인이 정권을 차지한 것처럼.

그리곤 서로 죽이고 결국 함께 황폐해져버리고 말았던 이라크(사담 후세인 정권)와의 전쟁이 9년간이나 이어졌다. 세상의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 조국을 위해 죽은 순교자는 천국의 별 다섯 개짜리 특실로 가는 열쇠를 받는다고 선전하며 소년들을 끌어들였던 어리석은 정권 아래서, 100만 명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마르잔의 부모는 결국 14살의 딸을 오스트리아 빈으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전쟁과 이슬람 광신도 사이에서 그들의 귀여운 아이가 제대로 커갈 수 없으리란 판단에서였다. 전장에 남겨진 사람들을 대신하여, 홀로 평화로운 빈에 떨어져 행복을 누려야 하는 마르잔. 과연 소녀는 행복할 수 있었을까. 어린 소녀가 억압과 박해를 피해 이란에서 나오기까지의 이야기가 1권의 내용이고, 2권은 유럽의 생활과 다시 이란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란 소녀의 성장사를 담은 <페르세폴리스>가 전 세계에 번역, 출간되면서 커다란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이 검은 베일 속에 갇혀 있던 소녀의 살아 꿈틀거리는 목소리가, 잊혀진 한 세계를 완전히 재생시켜놓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안에서 펼쳐지는 소녀와 가족의 고통과 갈등, 좌절, 그것을 유쾌하게 떨치고 일어서려는 삶의 역동이 끈끈한 감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만화의 힘을 보여주는 이 책을 읽다보니, 한국 사회에서 매우 골치 아프고도 민감한 미군 문제나 북한과의 관계 등도 이렇게 객관적 시각의 만화로 그려내어 미국이나 유럽에서 읽혀진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란 소녀 마르잔 같은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무수히 많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