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여행 계기는 지난해 5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우연히 본 '터키 문명전 : 이스탄불의 황제들'이다. 그 전시회는 '터키 고대문명과 히타이트 제국, 그리스-로마 문명, 동로마제국, 오스만 제국의 황제 술탄들'을 주제로 하여 4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어 부산시립박물관(2012.10.09~2013.01.27) 전시도 계획되어 있었다. 서울 전시회가 끝날 무렵 터키 여행을 결심했다. 그 여정의 시작과 끝을 이스탄불로 정했다. 이스탄불에서 시작하여 샤프란볼루, 앙카라, 카파도키아, 안탈리아, 파묵칼레, 쿠샤다스, 부르사를 거쳐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스탄불은 동서양의 갈등,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갈등을 아직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배타적인 종교 갈등과 더불어 가부장적 가족 관계는 샤프란볼루에서는 중세 전통 가옥으로, 앙카라에서는 동상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종교적 열광과 맹신은 이교도들에 대한 박해와 순교를 강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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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이스탄불 대학교 내에 있는 케말 퍄사의 동상.>

 

 

기독교인들이 로마와 이슬람의 탄압으로 피신한 카파도키아에는 산 전체를 깎아 만든 동굴, 지하 도시에 살면서 순교와 전도를 했던 처절한 생존 방식을 보여주었다. 그 처절한 생존 방식은 종교의 이름을 버리고 식민지 노예라는 이름을 빌려서 고대 팜필리아라고 불렸던 안탈리아에도 있었다. 그 원주민들은 그리스 이주민과의 갈등으로, 페르시아인,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의 후계자들 등 정복자들의 탄압으로 혹독한 시련을 당하고 결국 로마 시대에는 그리스인으로 동화되었다. 원주민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도시 이름이 개명된 안탈리아는 관광지와 휴양지로 살아나고 있었다. 도시는 사라지고 유적은 폐허로 남지만 자연은 사라지지 않는다.

파묵칼레는 눈처럼 하얀 석회층으로 목화(파묵) 같은 성(칼레)을 이룬 자연의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더불어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쿠샤다스이다. 초기 기독교 유적을 순례하기 위하여 머무는 쿠샤다스의 귀베르진 섬은, 로마제국 멸망 이후 지중해를 둘러 싼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 패권 분쟁의 역사, 현대 그리스와 터키 간 국경 분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제국의 식민도시로 번창한 에페소의 유적들은 신화를 중심으로 신분이 서열화되어 있는 로마와 그것을 전복하려는 초기 기독교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기독교 발생 이전, 그리스의 제한적 민주주의를 전파하기 위하여 재생되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계획 도시국가 밀레투스, 프리에네, 디디마는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 현대 그리스와 터키 간에 있었던 국경 분쟁의 역사를 보여준다. 종교 분쟁과 국경 분쟁은 국가들의 통일, 곧 제국의 성립으로 통합된다. 동로마제국의 영토였던 아나톨리아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성립으로 터키 이슬람 국가의 영토로 확정된다. 로마 기독교에서 터키 이슬람으로의 변화는 종교 분쟁을 일단락된다. 그 첫 수도 부르사에는 종교가 일반인들의 신앙이 아니라 국교라는 이름으로 작동하는 통치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신화의 세계로 들어간 술탄과 사원들의 유적지들이 남아 있다. 그 교외 주말르크즉 마을에는 낡고 허물어져 가는 오스만 시대의 전통 가옥처럼 오스만 이슬람의 전통이 이제 사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대학생들이 베야즛 광장 벼룩시장에 팔려고 내놓은 책들.

부르사에서 다시 이스탄불로 되돌아옴으로써 한 달 간의 여정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여행을 시작하고 끝맺는 이스탄불에서 이슬람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곳은 어딜까? 적어도 비잔티움에서 콘스탄티노플을 거쳐서 다다른 '제국의 도시 이스탄불'(존 프릴리 지음)의 유적지를 다시 찾아 나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유적지를 뒤로 하면 여행자들은 관광객들과 서로 뒤엉켜서 인파에 떠밀려 가는 곳을 벗어나서 베야즛 광장으로 나아간다. 베야즛 광장은 터키 최대 재래식 시장 그랜드 바자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이스탄불 대학교와 함께 있다. 여행자들은 베야즛 광장에서 낮에는 그랜드 바자르 등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밤에는 그 시장에 자리를 차지 못한 떠돌이 행상이나 가난한 대학생들이 벌이는 벼룩시장을 보기도 한다. 여행자들은 호기심에 끌려서 산 한 권의 값싼 책으로 간혹 횡재하기도 한다. '이슬람에 대한 미국 과학자의 23 물음들에 대한 상세한 대답들'을 부제로 하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미국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그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1957년 터키 국내에서 일어난 창조론자들과 진화론자들 간의 법정 다툼과 관련된다. 그 다툼은 1956년 수에즈 운하를 둘러 싼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중동 전쟁으로 이슬람교에서나 기독교에서 근본주의 분위기가 대세였던 때였다. 이에 동부지역 이슬람 근본주의 성직자들은 공립교육에서 금지하고 있는 창조론을 교육하고자 법정 소송을 내었지만 패배한다. 곧 근본주의자들은 진화론을 이슬람을 파멸시키기 위한 이교도(기독교와 유대교)의 음모라는 음모론을 편다.

국부 케말 퍄사는 정교분리와 종교 세속주의 원칙에 따라서 공립교육에서 진화론 교육을 명확히 선언했다. 그는 '모든 창녀는 히잡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라는 말로써 오히려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여 종교의 세속화를 강화한 인물이다. 이제 그는 터키 공화정의 술탄(황제)으로 신화의 세계 속에 있으면서 이스탄불 대학교의 정문 앞 동상으로 서 있다. 그렇지만 이슬람교와 기독교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현재에도 근본주의자들은 여전히 창조론 교육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여성들도 여전히 히잡을 착용하고 있다. 동상으로 서서 그는 진화론과 창조론으로 대신되는 근본주의와 세속주의 간의 갈등, 그 갈등을 이용한 종교적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더욱더 타 종교를 배척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동상을 바라보는 외국여행자들도 사실 그가 근대화의 아버지인지, 경제개발의 독재자인지 그의 실체가 무엇인지 혼란을 느낄 것 같다. 그 혼란으로 여행은 더욱더 미로 속으로 헤매게 된다.


# 터키를 떠나는 아쉬움…말레이시아로 향하는 설렘


여행의 스타일은 여행자들마다 다르다. 필자는 '터키문명전 - 이스탄불의 황제들' 전시회를 관람한 후 우리가 흔히 하는 이슬람에 대한 표현 방식이 편견임을 말레이시아에서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연구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그곳을 서 너 차례 다니면서 우리는 테러, 과격, 가부장제, 여성 차별 등등 편견에 이미 길들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슬람을 다시 보고 바로 알기 위하여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터키를 여행했으며 앞으로 중동 지역으로도 갈 것이다.

터키 여행을 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은 일정을 짜는 것이다. 여행 안내서에 의존하기보다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책은 몇 년 전의 정보를 담고 있지만 카페는 현재 진행 중인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여행의 테마를 설정하고 대략적인 여정의 순서만을 정하고 출발한다. 이번 터키 여행의 테마는 이스탄불을 출발지와 도착지로 하고 박물관을 중심으로 종교 유적지를 한 달이나 한 달 보름 정도 둘러보는 것이었다. 여정의 순서는 현지에서 얻는 정보나 현지 사정으로 언제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일정은 잡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이집트 사태를 중심으로 한 외교통상부의 여행경보로 인해 동부 지역을 갈 수 없었다.

유연한 여정은 여행자에게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서 더욱더 풍요로워진다. 터키 여행뿐 아니라 앞으로의 여행도 풍요로울 것이다. 터키를 떠나는 아쉬움은 이내 말레이시아에서 맛보게 될 풍요로움과 기쁨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오른다.

부산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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