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팔레스타인 소녀

2008.12.29 16:24

정근태 조회 수:6306 추천:54




중동전 이후의 최대규모의 공방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니죠,
어찌보면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이 지속되지 못하고 깨어져버린 상황 속에서 누군가가 이들을 중재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사실, 이 휴전협정의 연장을 거부한 쪽은 하마스이지만,
그렇게 하도록 그들을 궁지로 몰아 넣은 것은 이스라엘이지요.
지난 수년간 이스라엘은 팔레스탄인 거주 주민들의 생존권을 짓눌러 왔습니다.

제가 겪은 경험입니다.
지난 2002년 여름,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인 베다니를 찾아 걸었습니다.
이스라엘 관리 지역과 팔레스타인 관리 지역의 경계에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습니다.
베다니에서 몇 곳을 둘러본 이후에 다시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오전 내내 걸어다녔고, 8월의 무더위에 이미 감람산 등성이를 완전히 돌아서 몇 km를 이미 걸어왔기에,
다시 예루살렘까지 혼자 걸어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제 팔레스타인 관리 지역을 벗어나서 이스라엘 관리 지역으로 들어 섰습니다.
여전히 그 이스라엘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에서 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수 있느냐고요.
그러자 군인들은 매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버스를 타기를 원하냐고 되묻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자, 이들은 잠시 기다리면 자기들이 태워주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10여분을 쉬고 있는데, 저쪽에서 고물 버스 한대가 힘겹게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잔뜩 태운 버스는 보기에도 힘들어 보였습니다.
이곳은 정류장도 아닌데, 군인들은 총을 버스를 향해 겨누고 모두 내리라고 했습니다.

얼핏 보기에도 남루해 보이는 팔레스타인 노인들, 남자들, 그리고 몇몇 여성들과 서너명의 소녀들이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서너명의 군인들이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군인들은 모든 남자들은 그 곳에 남게 하고,
십여명의 부인들과 소녀들만 다시 버스에 타게 하고는, 저에게도 얼른 버스에 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의 짐과 신체를 이잡듯이 수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이가 없어 벌어지는 상황을 보고있는 저에게 한 젊은 군인이 장난스럽게 윙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한없이 사나운 얼굴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수색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댔습니다.
참으로 황당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저 때문에 이들이 다 이 고초를 당하는 것이 아닌지 미안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진 그들은 아무 표정도 없이 힘없이 이스라엘 군인들의 횡포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에는 운전기사와 십여명의 여자들, 그리고 저 밖에 없었습니다.
군인들은 버스를 출발시켰습니다.
갑자기 텅 비어버린 버스, 서너명의 학생처럼 보이는 소녀 중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소녀(사진)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제가 외국인임을 금방 간파하고는(당연히 그랬겠지요?),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울분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들 정도는 늘 있는 일이고, 자신들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다고.
지금 저 뒤에 남은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오빠도 있는데,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풀려나서 다시 버스를 타고 오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지능적이고 야비하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억압하는지,
인권과 기본적인 생존권을 어떻게 박탈하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교전 소식을 접하면서,
이 소녀가 생각났습니다.
아직도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지?
아니, 살아는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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