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산성

2016.04.10 16:34

정근태 조회 수:4070



양평에서 여주로 넘어가는 이포나루 동쪽에는 해발 230m에 불과한 나지막한 야산이 있습니다.
바로 남한강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천서리(川西里) 파사산입니다.
파사산(婆娑山)이라는 명칭이 붙여진 데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요,
혹은 먼 옛날 파사국(婆裟國)의 자리였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5대왕인 파사왕(재위 80∼111) 때 성을 쌓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성이 시작되는 곳은 아직 발굴과 보수가 덜 끝나 있었습니다.





조금만 올라가면 보수가 잘 되어있는 성곽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다른 성들이나 서양의 성곽과는 달리 돌을 쌓아 놓기만 한 성벽입니다.
성 위의 병사들을 보호하는 벽이 없어,
그냥 성 위에서 아래의 적들을 공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축성법은 향후 남한산성을 쌓는데 기본으로 모방되었다고 합니다.





성곽 저 너머 아래쪽에는 이포보와 그 너머의 여주 금사면이 보입니다.





조금 가다보면 또 옛 성곽,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바라보면 성곽의 여러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제일 아래쪽의 발굴, 복원이 않된 부분,
깔끔하게 복원, 개축이 어 평평한 성곽을 이루고 있는 부분,
계단으로 이루어진 부분,
그리고 다시 복원이 않된 옛 성곽 부분,
저 멀리 안개 너머로 남한강과 이포보가 보입니다.





옆에서 바라보면 성곽이 꽤나 높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적군이 이 정도 높이를 넘어오기는 힘들었겠지요?





성벽위에 소나무가 있습니다.
옛날 성에는 없었을 테지만,
복원하면서 나무는 남겨 놓았습니다.





능선을 따라 둘레 1,800m, 높이 6.25m의 퇴뫼형 성곽을 이루고 있는 파사산성은,
제법 걷기 좋은 곳입니다.





일찍이 신라의 진흥왕(재위 540∼576)은 553년에 경기도 지역을 점령하고,
지방 군사행정조직인 10정의 하나로 골내근정(骨乃斤亭)을 이곳에 두었으며, 대규모의 석성을 쌓았습니다.
다시 그로부터 약 천 년 후,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성룡의 건의에 따라 승병장 의암(義巖)이 승군을 동원하여 3년에 걸쳐 옹성과 장대, 군기소까지 갖춘 성으로 수축하였습니다.
지금은 산성 곳곳이 무너져 내렸지만 이 산성이 여러 시대에 걸쳐 쌓은 성임을 확인하기에는 어렵지 않습니다.





석축이 꽤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바닥은 고르게 보수해 놓기는 했지만,
화강암들이 거칠게 놓여있으니,
반드시 등산화나, 편안한 운동화를 신으시길~



2016059.JPG

이제 정상까지 거의 다 왔습니다.





정상에는 동문터와 서문터가 남아 있긴 하지만,
석축 몇 군데를 제외하곤 그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정에서 내려다보면 이 성의 입지조건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가 있습니다.
여주·이천·양평이 한눈에 들어오고 남한강이 그림처럼 펼쳐지지요.
수자원이 풍부한데다 여주 하면 곡창 지대인 만큼 군량미의 축적도 손쉬웠을 것입니다.
상류 쪽으로는 여주와 충주·탄금대로 이어져 문경새재에 닿고,
하류 쪽으로는 양평·양수리·한양으로 이어지니 서해로 빠질 수 있는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정상을 돌아서 내려오는 길,
역시 새로 쌓은 성 위로 걸을 수 있습니다.





옛 성곽이 보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빨리 잘 정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변 경관과 입지, 그 중요성에 비해 너무 복원이 미비한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잘 복원이 된다면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여주목 고적조」에는
"옛 산성이 주(州)의 북쪽 53리에 있는데 석축이며 둘레는 3만 8,825척(尺)이다"라는 짧은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현재 파사 산성은 사적(제251호)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곳곳이 퇴락한 것이 쇠망한 왕국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 곳은 남한강이 바로 내려다보는 곳으로,
신라, 백제, 고구려가 번갈아 가며 점령했었지요.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거점이었기 때문이지요.





산에서 내려오면 이포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조선시대까지 중부지방에서 마포나루까지 문물이 오가던 수운교통의 요충지이자,
충청. 강원의 뗏목이나 농산물이 이포나루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새벽 떠나면 저녁에 마포나루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때의 나룻배를 형상화한 전망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조 2년(1456)에 폐위된 단종이 강원도 영월로 유배길에 오를 때에,
한양의 광진 나루에서 뱃길을 따라 이곳 이포나루에서도 잠시 내렸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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