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의 상징, 파 탓 루앙

2019.05.30 11:08

정근태 조회 수:2231



빠뚜싸이에서 동북쪽으로 약 1.5km 에 위치한 탓 루앙 사원을 향하여 걸어갑니다.
사원이 가까워지면 화려한 불탑들이 줄지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예 담장이 불탑의 연속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불심(佛心)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습니다. 




저 멀리 황금빛 탓 루앙 사원이 보이는데,
왼쪽에는 붉은 지붕의 아름다운 건물이 있습니다.
바로 왓 루앙 느아(Wat Luang Neua)입니다. 




왓 루앙 느아는 라오스 최고 승려인 쌍크랏(Sangkharat)이 거주하는 곳이랍니다.
당연히 라오스 불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물이 높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주변과 잘 어울리는 건물의 형태,
붉은 색과 황금색의 조화,
그리고 지붕의 선은 미적 감각을 충분히 자극합니다. 




왓 루앙 느아를 지나 탓 루앙 사원을 향해 몇 걸음을 옮기면,
좌대위에 앉아있는 한 사람의 동상을 보게 됩니다.
바로 탓 루앙을 건설한 셋타티랏(Setthathilat) 왕의 동상입니다.
동상이라 하면 대부분 서있거나 멋진 옥좌에 앉아있는 모습을 생각하게 되는데,
작은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 친근감을 느끼게 합니다.
왕으로서의 위엄보다는 백성을 사랑하는 모습이랄까요?
라오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셋타티랏(1534~1571)왕은,
‘백만 마리의 코끼리 왕국’이라고 불리던 란샹 왕국을 정복하며 라오 왕국의 왕으로 등극했고,
라오스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루앙프라방까지 거느리며 왕국을 통일했습니다.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던 그는 1560년 당시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을 떠나,
비앙챤(Viangchan)을 수도로 정했습니다.
이 곳이 현재의 비엔티안입니다.
그는 강한 왕권과 군사력으로 오늘날 태국의 치앙마이까지 정복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당시 강력한 왕권을 지녔던 그는 불심이 매우 깊은 사람이었는데,
치앙마이를 정복하면서 그곳에서 가장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던 에메랄드 불상을 새로운 수도 비앙챤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소중한 불상을 잘 모시기 위해 그는 거대한 사원을 건축했고요,
또 그 사원을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해 그는 부처님 사리를 모셔놓을 스투파(유골을 매장한 인도식 화장묘)도 세웠습니다.
그렇지만 후에 태국에서 온 챠오프라야 챠크리(Chao Praya Chakri) 장군이 1779년 비앙챤을 공격하고 정복한 후,
사원에서 에메랄드 불상을 그의 나라인 시암 왕국(현재의 태국)으로 도로 가져가 버렸습니다. 




탓 루앙(‘위대한 불탑’이라는 의미)은 라오스 국민들이 가장 공양을 드리고 싶어 하는,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불교 유적입니다.
혹자는 라오스의 주권의 상징이라고도 하고요,
담장 너머로 보이는 황금색 사리탑이 이 사원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정식 이름은 파 쩨디 로까주라마니(Pha Chedi Lokajulamani)인데요,
'세계에서 가장 귀하고 신성한 탑'이라는 의미입니다. 




높이 45m의 웅장한 사리탑 주변에는 파란 잔디들이 자라 더 멋진 색감을 보여줍니다.
라오스 설화에 따르면 기원전 3세기,
인도의 아쇼카 왕은 라오스 비엔티안 지역에 부처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스님들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후 그곳에 부처님 사리를 보관하기 위한 스투파 하나가 세워졌는데,
오늘날 파 탓 루앙(Pha That Luang) 사원이 그것이지요.
다만 고고학자들은 당시 스투파와 함께 세워진 건물에 대한 기록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고 합니다.
이후 13세기에 크메르 형식의 불교 사원이 세워졌고요,
1563년 동상의 주인공인 셋타티랏 왕이 시엥통(루앙푸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왕도를 옮긴 후,
1566년 석가모니의 가슴뼈와 유물이 봉안하고 13세기에 지어진 건물을 바탕으로 해서 이 사원을 건립했습니다.
1828년에는 시암 왕국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 때 시암 왕국에서 온 병사들은 스투파에 입혀진 금들을 모두 벗겨갔고 스투파는 완전히 훼손돼 버렸습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에서 고고학자들은 이 스투파를 본래 상태로 복구하기로 했습니다.
프랑스 출신 건축가들과 고고학자들은 힘을 모아 1867년 보수 계획서를 만들고,
1930년대 와서 복원되었습니다.
그러나,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파 탓 루앙은 다시 심하게 손상됐고.
전쟁 후 1953년에 이르러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황금 사원으로도 불리는 탓 루앙은 정말 온통 황금빛으로 가득합니다.
콘크리트 건물에 도금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파 탓 루앙 라오스의 국장과 지폐 디자인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파 탓 루앙 사면으로는 그 가운데에 크메르, 인도, 라오스 양식이 혼합된 호 와이(Ho Vay)를 만들어서,
공양을 드리고 기도할 수 있 수 있도록 하였고
이런 모습의 기도실이 하나씩 마련되어 있습니다.
'호(Ho)'는 '사당'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면의 호 와이입니다. 



2019393.JPG

탓 루앙은 3단 구조로 되어 있는데요,
맨 앞 담처럼 보이는 것이 1층입니다.
1층의 면적은 68x69m 입니다.
1층에는 라오스와 태국 불교 사원에서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하는 물고기 모양의 돌인 '바이 세마'가 수백 개 세워져 있습니다.
2층에는 30개의 작은 스투파들이 있는데,
현생에서 30가지의 선행을 실천하라는 의미라고도 하고,
부처의 30가지의 완성된 모습들을 상징한다고도 합니다.
3층의 연꽃 봉오리를 형상화한 첨탑이 있는데,
이는 극락 혹은 깨달음의 경지에 달함을 의미합니다.
탑 안에는 아소카 왕의 유물이 있고,
84,000개의 작은 탑들 안에 석가모니의 제자들의 유골 재를 넣어 네 귀퉁이 둥근 탑에 분산해 놓았다고 합니다.
불탑의 지면은 지하세계,
기단부 위는 인간세계,
그 위는 천상계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벽에 난 구멍으로 밖을 내다봅니다.
사원 밖에 장이 선 모습이 보입니다. 




파 탓 루앙 바로 옆에는 또 하나의 사찰이 있습니다.
마치 팟 탓 루앙의 부속 건물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절입니다.
파 탓 루앙이 세워진 후에,
이 탑을 중심으로 사방에 절이 건설되었지만,
현존하는 절은 2곳 뿐입니다.
북쪽의 왓 루앙 느아(Wat That Luang Nua)와 남쪽의 왓 루앙 타이(Wat That Luang Tai)가 그것입니다.
이 곳은 '남쪽 탓 루앙 절'이라는 뜻을 가진 '왓 루앙 타이(Wat That Luang Tai)입니다. 




파 탓 루앙에는 인상적인 와불을 볼 수 있습니다.
왓 루앙 타이 옆에 있는 이 와불은,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누워 열반에 든 모습입니다.
황금으로 도금된 와불은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이 곳은 '북쪽 탓 루앙 절' 이라는 뜻을 가진 '왓 탓 루앙 느아'입니다.
황금색으로 입혀진 불화가 햇빛을 받으면 멋지게 반짝이는 곳입니다. 




왓 탓 루앙 느아 내부의 불화들입니다.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린 불화겠지요? 




본전의 불상들입니다.
멋지게 꾸며진 제단에 많은 불상들이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수행하신 보리수나무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탓 루앙 사원과 주변의 모습을 구경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납니다.
예쁜 담장 너머 천상세계를 상징하는 스투파를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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