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텐베르크성 교회

2016.07.17 10:22

정근태 조회 수:8590



2016206.JPG

15세기에 건립된 비텐베르크성(城) 교회는,
1517년, 마틴 루터가 그의 유명한 ‘95개조의 반박문’를 써 붙임으로
종교개혁을 시작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방문했을 때에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을 위해 대대적으로 수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망루는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1517년, 도미니쿠스회 탁발 수도사인 요한 테첼은 독일 전역을 돌며 자금 조달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황청은 성 베드로 대성당을 재건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테첼은 전에도 잘 써먹었던 면죄부 판매로 그 상납금을 모으려고 했지요.
면죄부란 이미 저지른 죄를 사하여 연옥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여 준다는 확인서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회 수도사이자 작센 비텐베르크 대학 신학부의 강사였던 마르틴 루터는 몹시 분개하여,
테첼의 상급자인 마인츠 대주교에게 조목조목 반박문을 적어 보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인 10월 31일 루터는 이 95개조 논제, 혹은 95개조 반박문을 모든 이가 읽을 수 있도록
비텐베르크 성곽 교회의 문에 게시했습니다.





이 문이 바로 그 반박문을 내붙였던 ‘테제의 문’입니다.
물론 당시에는 나무문이었지만,
후대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부조한 철문으로 바뀌었습니다.
루터가 특히 분노를 표했던 것은 '상자에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울리자마자 연옥에 있던 영혼은 솟아오른다'는 테첼의 주장이었습니다.





역사적인 자리에서 동행한 친구와 함께 인증~





교회의 측면 모습입니다.
중세의 성당치고는 아담하고 소박한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서 있는 교회입니다.







교회 후면에는 이러한 오래된 부조들이 붙어 있습니다.





교회 후면의 모습입니다.





안쪽 마당으로는 이렇게 큰 공사가 벌어져 있었습니다.
역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죠.





공사중인 마당 앞 철책에는 이러한 사진이 붙어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복원된다는 것이겠죠?





교회 내부로 들어갔습니다.
교회 내부도 역시 공사중.
들어가서 찬찬히 살펴볼 수가 없는게 아쉬웠습니다.
그렇지만, 오른쪽 아랫부분에 보이는 나무로 만든 강단이 바로 루터가 설교하던 강단이고,
그 아래에는 묘지를 교회 안에 만드는 중세의 관습에 따라 루터의 무덤이 있습니다.





못내 아쉬워서 95개조 반박문이 부조된 문을 붙잡고 한 컷 더~

‘각 시대의 대 쟁투’라는 책은 이 역사의 한 장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루터는 사람의 이론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욱 존중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두려움 없이 학자들의 사변적 무신론(思辨的 無神論)을 공격하고,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장악하여 지배해 온 철학과 신학에 반대하였다. 그는 이와 같은 연구에 몰두하는 것이 무가치할 뿐만 아니라 해가 되는 일이라고 말하고, 청중들의 마음을 철학자나 신학자의 궤변에서 돌이켜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말한 영원한 진리로 돌아오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그가 증거한 기별은 그의 말을 열심으로 듣는 무리에게 귀중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전에 이러한 가르침을 받은 일이 결코 없었다. 구주의 사랑에 관한 기쁜 소식, 그분의 구속의 피로 말미암아 사유와 평안을 얻게 된다는 보증은 그들의 마음에 기쁨을 안겨주고 불멸의 소망을 고무시켜 주었다. 온 세계를 두루 비추어 줄 광명한 빛이 비텐베르크에서 밝혀졌으며 이 빛은 말세가 될수록 더욱 밝게 빛날 것이었다. ...
비텐베르크 성 교회에는 여러 가지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었으며, 특정한 축제일들에는 그것들을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그리고 그날에 교회에 와서 참회하는 자는 죄의 용서를 완전히 받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 축일에는 수많은 사람이 그 곳으로 모여들었다. 때마침 그 축제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제성제(諸聖祭)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전날에 루터는 회당으로 모여드는 군중들과 함께 가서 면죄부의 교리에 항의하는 95개조의 논제를 기록한 종이를 그 성전의 출입문에 붙여 놓았다. 그리고 그는 그 논제에 대하여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튿날 대학에서 거기에 대한 답변을 하겠노라고 발표하였다.
그의 논제는 일반의 주의를 끌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읽고 또 읽은 다음에 그것을 사방에 전하였다. 대학 안에와 온 성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 이 논제로 말미암아 죄를 사유해 주고 죄의 형벌을 면하게 해주는 권세가 교황이나 어떤 다른 사람에게도 위임된 적이 결코 없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러한 계획은 미신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하여 금전을 사취하려는 사기적 술책, 곧 사단이 그 거짓된 일을 의뢰하는 모든 자들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취한 수단에 불과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교회 안에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보배이며, 그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총은 믿음과 회개로써 그것을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어진다는 것이 또한 분명히 밝혀졌다.
루터의 논제는 토론을 요구하였으나 아무도 거기에 응하는 자가 없었다. 그가 제시한 문제들은 수일내에 온 독일에 퍼지고, 몇 주일 안에 각 그리스도교국들에 전파되었다. 교회 안에서 퍼져가고 있는 무서운 죄악을 보고 탄식하면서도 그 기세를 꺾을 방법을 알지 못하던 많은 경건한 가톨릭교도들은 큰 기쁨으로 이 논제들을 읽고 하나님의 음성이 그 속에 있음을 인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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