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2008.10.12 17:16

정근태 조회 수:6894 추천:56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인 서기 79년 8월 27일,
로마 남쪽의 휴양지인 폼페이는 그 옆의 베스비우스화산이 2일간에 걸쳐 폭발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화산재에 묻히게 됩니다.

폼페이는 지금은 내륙(內陸)이 되었으나, 당시에는 베수비우스 화산의 남동쪽, 사르누스강 하구에 있는 항구도시였습니다.



당시 폼페이는 농업과 상업이 발달했고, 그리 멀지 않은 로마의 귀족들이 피서, 피한지로 삼아 휴양을 즐기던 도시였습니다.
매몰 당시 폼페이의 인구는 2~5만으로 추정되며, 그 중 약2000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폭발이 갑자기 일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갑작스러운 화산 폭발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8월 중순부터, 규모가 작은 지진이 계속하여 일어났는데, 지중해 연안은 워낙 지진이 많은 곳이라 이정도의 작은 지진들에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은 거죠.

8월 27일, 뜨거운 화산이 불을 뿜고, 화산재가 하늘을 덮으면서 이 번성한 도시는 화산재에 그대로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2∼3m 두께의 화산력(火山礫)과 화산재가 이 도시를 전부 덮은 것이지요.

뒤에 보이는 산이 바로 베수비우스 산입니다.

        

원래는 산의 형태가 봉긋했는데,
이 날의 폭발로 산에 굴곡이 생겼다고 하더군요.

징조들을 보고 재빨리 피신한 사람들은 살아남았지만, 탐욕 때문에 빨리 도망하지 못한 이들은 전부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현재는 이들이 발굴이 되어 뼈를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도시는 1700여년이 지나서 다시 고고학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고,
1748년부터 발굴로 시작되었습니다.
현재는 약 3/5정도를 발굴했다고 합니다.





19세기 중반, 이탈리아의 고고학자인 주세페 피오렐리가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발굴 기법을 도입하여 발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집집마다 번호를 매겼고, 지붕에서부터 조심스레 아래쪽으로 흙더미를 파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화산재가 딱딱하게 굳어 비어 있는 공간에 석고나 시멘트를 부어 주검이나 가구, 집기 등을 복원했지요. 위의 사람들도 이러한 방법을 통해 회복되었지요.

갑자기 한 도시가 화산재로 덮여버렸으니 당연히 그 시대의 생활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도로입니다.

        

이것은 특히 마차의 통행이 많았던 도로입니다.



바퀴 자국이 선명하지요.

도시의 전성기에 갑자기 멸망하였으므로, 당시 로마 도시의 일상생활을 자세히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들이 많이 발굴되었습니다.

당시의 수도관입니다.
현대의 수도관과 너무도 흡사하지요.



커다란 맷돌이 있는 이곳은 당연히 빵을 굽던 곳이고,



이곳은 수세식 화장실

        

이곳은 사우나입니다.
지금의 사우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 도시는 또한 상당히 쾌락적이고 현세적이고, 향락적인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발굴된 지역 가운데 하나는 홍등가인데,
이것은 그 가운데 한 집에 그려져 있는 벽화입니다.



이곳은 아폴로 신전입니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도시,
다가오는 멸망의 징조들,
그 가운데서도 일상 생활의 늪에 빠져 경고를 무시하는 사람들,
화산의 폭발 - 멸망의 시간이 다가왔음에도,
탐욕 때문에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들....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대로,
지구의 지금 모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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