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드롬 광장

2016.05.18 21:41

정근태 조회 수:5023







이스탄불 구시가의 중심에는 히포드롬 광장이 있습니다.
아직도 역사적인 유적들이 곳곳에 세워져있는 로마시대의 히포드롬 자리에는 현재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서기 3세기, 로마의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통치하던 시대에,
지방 도시인 비잔티움에 세워진 히포드롬은 전차 경주에 사용되던 경기장으로,
동로마 제국의 스포츠와 사교 생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A.D. 324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겼지요.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폴리스라는 새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이도시의 문화중심지인 히포드롬을 대대적으로 보수했습니다.
경기장은 450m×130m 넓이에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확장되었구요,
콘스탄티누스와 그의 후계자들은 제국 곳곳에서 가져온 작품들로 이곳의 꾸몄습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생겼었다고 하는데,
그 일부가 아직 남아 있는 셈이지요.
이곳이 전차 경기장이었으니,
경주장 남쪽에 청동으로 된 기마상이 있었으나,
제 4차 십자군 전쟁이후 십자군에 의해 약탈되어,
지금은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싼 마르코 성당 앞의 입구 지붕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의 명에 따라,
B.C. 479년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무찌르고 거둔 승리를 축하하는 의미를 지닌,
'플라타이아의 트라이포드'가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으로부터 이곳으로 옮겨져 왔습니다.
앞에 꽈배기같이 생긴 청동 기둥인데요,
셀펜타인 기둥이라고도 합니다.
거대한 8m의 원기둥이 세 개의 뱀 머리로 직경 3m의 황금으로 된 가마솥을 떠받들고 있는 형상이었다고 하는데,
이 황금 가마솥은 1204년 제4차 십자군 원정 때 약탈자들인 십자군들에 의해 사라져 버렸고,
기둥의 뱀 머리는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하나는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결국 지금은 짧은 '뱀 모양 기둥'만이 남아 있습니다.





서기 39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B.C. 1450년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 승리를 한 Tutmoses III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오벨리스크를,
룩소르의 카르낙 대신전으로부터 히포드롬으로 옮겨왔습니다.

<카르낙 대신전 관련 기사 1 : http://1stdream.com/index.php?mid=world_tour&page=1&listStyle=list&document_srl=2681>
<카르낙 대신전 관련 기사 2 : http://1stdream.com/index.php?mid=world_tour&page=1&listStyle=list&document_srl=2683>

아스완에서 나는 붉은 화강암으로 만든 오벨리스크는 원래 30m 높이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래 부분은 아마도 이동하는 동안 손상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랫부분의 훼손으로 지금은 25.6m 만 남아있습니다.
그 윗 부분이 아직도 세워져 있습니다.


2016139.JPG


"디킬리타스(Dikilitas)"라고 불리워지는 장대한 오벨리스크가 허리가 잘려 위부분만 세워져 있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비록 온전하지 않은 남아있는 부분이라도 보는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기단 부분은 아마도 로마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데,
많이 훼손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오벨리스크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오르메 수툰(Orme Sutun)"이라고 불리우는 이 기둥은 32m에 이르는데요
그런데 이는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와는 전혀 다르게 벽돌을 쌓아올린 듯이 세워져 있습니다.
훼손된 것을 콘스탄티누스 7세가 복구했다고 하기도 하고요,
실은 이 오벨리스크는 뼈대 부분이 남아 있는 것인데,
원래는 청동판들로로 덮여 있었다고 합니다.
석회석 표면을 청동으로 덮어씌우고,
그 위에 농부와 어부를 새겨 놓았으나,
청동판들은 지금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바실리카 꼭대기에 서 있는 네 마리의 청동 말과 함께,
제4차 십자군 원정 때 약탈당했다고 하네요.





히포드롬은 동로마제국을 넘어 비잔틴 제국 시대까지 내내 제국의 중심이었습니다.
전차 경주에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돈이 걸렸고,
정치와 종교 영역까지 아우르는 장소였지요.





오벨리스크 앞에서 인증 샷~
1204년, 십자군들에 의하여 콘스탄티노플이 약탈당한 후,
히포드롬은 사용되지 않고 버려진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후, 1451년 이 도시를 탈환해 수도로 삼은 오스만 튀르크인들은 전차 경주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이 지역은 종교적 정치적 의미만을 지닌 채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광장 한편에 세워진 모스크,
이런 거대하고, 역사적인 건축들과 기념물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독일 분수, 혹은 또는 빌헬름의 샘이라고 합니다.
엄청난 규모의 누각 스타일의 샘으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방문 2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되었습니다.
1901년 술탄 압둘 하미드 2세와 그의 국민에게 우정의 증표로 선물한 것으로,
석조물은 하미드 2세와 빌헬름 2세의 결합문자로 꾸며졌고,
1898년 독일에서 만들어진 후 조각조각으로 운반하고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습니다.
네오 비잔틴 양식의 분수의 팔각형 돔에는 여덟개의 대리석 기둥이 있고,
돔의 내부는 황금 모자이크로 덮여있습니다.





히포드롬 광장 옆에 조성되어있는 술탄 아흐멧 공원,
잘 정돈된 이 공원 주변에,
성 소피아 성당, 술탄 아흐멧 모스크, 히포드롬 광장등 역사적 건축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앉아만 있어도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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