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이삭 성당

2013.12.03 11:03

정근태 조회 수:6145

제정 러시아의 황금기인 표트르 대제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바실리예프스키 섬에 이삭 성당이 건립되었습니다.
그 뒤, 1717년에 원로원 광장(현재 데카브리스트 광장)으로 이전했지만 낙뢰로 소실되었습니다.

그 후 예카테리나 여제의 칙명에 따라 재건을 시작했지만, 완공을 보지 못했고,
파웰 1세가 다시 재건, 역시 완성을 못하고,
알렉산드르 1세 시대에 이르러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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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 완공은 프랑스 출신 건축가 오귀스트 드 몽페랑의 설계에 따른 것이었는데요,
몽페랑은 1818년부터 1858년까지 무려 40년에 걸쳐서,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인 이삭 성당을 세웁니다.
그의 설계 영향으로 지붕의 돔의 모양이 양파 머리를 닮은 러시아정교회식이 아니고 서유럽풍의 모양을 갖게 됩니다.

사면의 벽 앞의 박공(牔栱, 입구 기둥 위의 삼각형 부분)에는 각기 다른 모양들이 청동으로 부조되어 있고,
이를 붉은 화강암의 굵은 원주들이 받치고 있습니다.





성 이삭 성당의 입장권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서쪽 박공의 주제는 비잔티움 황제 테오도시우스에게 축복하는 성 이삭의 모습인데요,
바로 이 성당의 이름이 된 성 이삭의 모습이지요.
이 이삭은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 이삭은 ‘이삭 달마시안’이라고 불리우는 달마시아의 성인인 이삭을 말합니다.
그러면 왜 그 먼 곳의 성인의 이름을 이 성당에다가 가져다 붙였을까요?
그 이유는 성 이삭의 축일이 5월 30일인데,
바로 그 날이 표트르 대제의 생일이기 때문이랍니다.
표면적으로는 정교회의 성인을 위한 성당이지만,
사실은 최고의 황제로 여겨진 표트르 대제를 기념하기 위해서이지요.

그래서 성 이삭 성당의 정문 앞 넓은 광장에는 표트르대제의 기마상이 성당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성당 안쪽으로 들어가는 청동문도 부조로 화려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문을 덮고 있는 캐노피도 역시 러시아의 황금기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이후에도 황제들은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성 이삭 성당을 증축했구요,
현재의 성 이삭 성당은 이후 4번에 걸쳐 확장, 재건축되어 전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건축, 공학, 미술, 장식 등의 예술작품과 관련된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지요.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화려함의 극치를 볼 수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에는 내부 촬영을 통제하는 지라,,,
내려 받은 사진입니다.





돔까지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이런 소라 껍데기 같은 계단을 올라가서 돔 아래에 서면,
시원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성당의 전면,





그리고 사방의 모습입니다.





아래에서 보는 아름다운 건물도 위의 좀습은 좀 어수선해 보입니다.





네바강도 보이고,





지평선도 보입니다.





이삭 성당 위의 동상도 뒷모습이 보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다른 건물들은 다 폭격에 무너졌지만,
다행히 폭격은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 레닌그라드 포위전에서 황금 100톤이 사용된 성 이삭 성당의 황금 돔을 회색으로 덧칠해 놓았다고 합니다.
황금이 지나치게 눈에 띄어서 독일군 비행사들이 표적을 삼아 폭격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 큰 성당이 조종사의 눈에 띄이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지휘관이 예술적인 건물의 파괴를 피하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소비에트 혁명이 일어난 후에는 소련 정권 아래에서 박물관으로 이용되었다가,
공산 정권이 붕괴한 후에는 다시 성당으로서의 활동을 재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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