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 해안과 예수상

2017.07.23 11:11

정근태 조회 수:3967







크리스토 레이(CRISTO REI)는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의 랜드마크입니다.
그 주변의 해안의 해안 자체도 예쁘지만,
뭐 별로 꾸며놓은 것이 없는 나라인 동티모르에서 얼마 없는 꾸며놓은 곳입니다.
아기자기한, 그러나 별 볼 것 없는 것이 매력이랄까요?
오히려 그 너머에 펼쳐져있는 동티모르의 해안이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부릅니다.





저 언덕 위에 크리스토 레이가 보입니다.
1976년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27번째 주로 편입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높이 27m의 대형 예수상인데요,
딜리 동쪽 해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동티모르인들의 종교는 가톨릭,
인도네시아의 종교는 이슬람이지요.
그러니까, 이슬람을 믿는 국가가 가톨릭을 믿는 지역을 복속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예수상인 셈이죠.





예수상을 보러 간 것이기는 한데,
무더운 날씨에 저 위까지 걸어 올라가기는 싫고,
자꾸 옆의 해변에 눈이 갑니다.





담장을 지나 해변으로 들어갔습니다.
에머랄드색의 바다와 하늘,
그리고 푸른 산,
그 위의 예수상이 잘 어울리는 풍경을 연출합니다.





해변에서의 인증 샷~
그런데 저 위까지는 절대로 가고 싶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증샷에 동참하는 수아.





이렇게 깨끗한 바다가 무한대로 펼쳐진 곳,
역시 동티모르의 매력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2017292.JPG

올라가기는 싫고,
좀 당겨서 찍어봤습니다.
동티모르의 역사는 침략의 역사입니다.
1515년 포르투갈 선교사가 발견(?)해 외부에서 알게된 티모르섬은,
1520년쯤에 포르투갈인이 정착하기 시작했으나,
인도네시아를 침략한 네덜란드인이 이곳까지 와서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1661년쯤 티모르 섬의 서쪽은 네덜란드령, 동쪽은 포르투갈령으로 분할됐습니다.
서티모르는 인도네시아가 독립하면서 1947년 인도네시아 영토로 편입됐고,
동티모르는 1975년까지 포르투갈 식민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사이 동티모르는 1942년부터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본군의 지배를 받기도 했는데,
일본군은 동티모르 주민 6만여 명을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어디가나~





1974년 포르투갈 정부가 독립을 약속하고,
1975년 11월 독립을 선언했지만,
독립 선언 9일 만에 티모르 해에 매장된 유전을 노린 인도네시아군의 침략을 받았고,
1976년 인도네시아의 27번째 주로 합병됐습니다.
이 예수상은 바로 그 때,
27번째 주로 편입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27m의 높이로 세우게 되지요.





그 후, 동티모르인의 독립운동과 인도네시아군에 의한 유혈탄압이 끊이지 않았는데,
1991년에는 딜리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주민집회에 인도네시아군이 무차별 발포해 508명이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지속적인 독립운동의 결과 1999년에 독립을 결정하는 주민투표를 실시해 주민의 78.5%가 독립을 찬성했지만,
투표결과에 반대하는 인도네시아군과 민병대가 동티모르 전역에서 주민들을 납치하고 살해해 인구의 3분의 1이 학살되었습니다.
이러한 학살에 국제사회가 개입하게되고,
그 해 9월, UN평화유지군 7천500명이 파견되게 되지요.
2002년 4월 대통령 선거에서 구스마오가 당선되면서 5월 20일 완전 독립하게 됩니다.





함께한 이나시오 다 코스타 목사와 두 딸들,
이 아이들이 바로 동티모르의 희망일 것입니다.





결국 올라가지는 않고,
함께 예수상을 찾은 친구들과 함께,,,,
사실 별로 갈 곳이 없는 딜리시내입니다.
그나마, 탁 트인 바다,
해안 능선 위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예수상이 그나마 볼만한 곳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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