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르가대 - 고레스 대왕의 무덤

2018.12.02 12:22

정근태 조회 수:1929

이스파한에서 페르세폴리스를 향해 가는 길,
거의 페르세폴리스에 도착할 즈음에 파사르가대가 있습니다. 




입구에는 이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안내 동판이 여러 언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곳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이 세운 아케메네스 왕조의 첫 수도 터라고 합니다.
쉬라즈에서 동북방향 직선거리로 90km, 페르세폴리스로부터 직선거리 40km 떨어져 있습니다. 




넓고 황량한 벌판 앞에 페르시어와 영어로 된 유적의 개요를 설명하는 유리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왼쪽 윗부분은 전체 지역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래쪽 사각형은 이 유적의 대표격인 고레스 대왕의 무덤을 설명하는 그림입니다.
고레스 대왕은 그가 B.C. 550년에 메디아 사람 아스티아게스에게 승리를 거둔 현장과 가까웠기 때문에 이곳에 도읍을 정했다고 합니다.
이 도시의 이름은 페르시아의 주요 부족인 파사르가다에족에서 유래했다고도 합니다. 




고레스 대왕의 무덤입니다.
정문을 통해 들어가서 동남쪽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황량한 폐허에 그나마 제대로 된 원형을 보여주고 있는 고레스의 무덤입니다.
고레스 대왕은 이란에서는 '아버지'로 호칭될 만큼 존경받는 페르시아의 왕입니다.
고레스(Cyrus) 대왕은 페르시아 제국의 초대 왕이며(B.C. 558-529),
당시 최강국인 바벨론을 정복한 사람입니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그는 유대인의 해방과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내렸습니다.(대하 36:22-23, 스 1장, 스 3:7, 스 4:3, 스 5:13-14, 스 6:3).
또 유명한 다니엘 선지자가 고레스 치하에서 총리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단 6:1-2, 단 6:28). 




인증 샷은 빼놓을 수 없겠지요?
돌을 쌓아 만든 석묘인 이 무덤은 흰색 석회암으로,
제일 밑바닥 높이가 5.5m인 모두 6층의 사각 계단으로 쌓여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높이 석관이 놓여있는 형태지요.
고레스 대왕은 지금의 터키 지역의 리디아 왕국,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바벨론 등을 점령하고,
그의 영토를 더 넓혀 지금의 인도변경으로부터 우즈베키스탄, 이집트, 마케도니아까지 점령하고 대 제국을 세웠습니다.
그야말로 페르시아를 세계 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2018545.JPG

이번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인 곳에서 동행한 세 사람이 함께 인증샷~
사실 이란인들뿐 아니라 지금은 이란과 앙숙인 이스라엘의 전통 유대인들도 고레스 대왕에 대해서는 존경해 마지않습니다.
성경은 고레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의 이름을 부르며 메시야(기름부음을 받은 자, 그리스어로 번역하면 그리스도)라고 예언하지요.
B.C. 700년경에 활동했던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고레스는 B.C. 550년에 즉위했으니, 약 150년 전에 기록한 셈이지요.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자 이스라엘 곧 너를 위하여 네 이름을 불러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이사야 44:28~45:6)
이후 유대인들은 고레스를 '해방자'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고레스가 바벨론을 점령하고,
70년간 잡혀있던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고 조서를 내렸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고레스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은 페르시아제국의 왕이지만 유대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해외 원정 중 그 위대한 생애를 마치게 되었는데,
페르시아인들은 커다란 석묘를 만들어 파사르가대에 안치하였습니다. 




약간 측면의 모습입니다. 남쪽에서 바라본 모습이지요.
이 무덤이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을 받고도 무너지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고레스 대왕이 권력의 무상함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고레스가 그저 정복자가 아니었음을 알렉산더 대왕과의 일화가 잘 이야기해 줍니다.
B.C. 330년경, 알렉산더는 페르시아를 점령하고,
그리스를 위협했던 페르시아 왕조의 자취들을 부수었는데,
다리오 왕이 세운 페르시아를 상징하는 거대한 왕궁인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우고는,
그는 바로 이곳에 와서 이미 많이 허물어져가는 고레스 대왕의 묘도 완전히 부숴버리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는 무덤 앞에 있는 한 비문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뭐라고 쓰여 있는지 물었겠지요?
통역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이런 내용입니다.
"나 고레스는 한때 세계를 지배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땅이 다른 왕에 의해서 점령될 것을 나는 안다.
그러니 점령자여,
그대도 언젠가는 누구에겐가 점령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 묘를 건드리지 말아 주시오."
무덤을 부수러 이 곳에 왔던 알렉산더는 말에서 내려,
오히려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고레스의 묘에 덮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묘를 원형대로 복구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지요. 




측면의 모습입니다. 서남쪽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석묘의 길이를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두 대왕의 그릇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권력의 무상함을 깨달은 고레스도 훌륭하고,
그 말을 가슴으로 받아들인 알렉산더도 대단한 인물입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지요.
권력은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권력의 무상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권력을 쥔 사람만 모르는 이야기지요.
권력을 쥐면 그것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하지요.
그래서 고레스는 대왕입니다.
최고의 권력의 쥐고 있으면서도 권력이 계속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서쪽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고레스는 그 어려운 걸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요?
성경 다니엘서는 유대의 다니엘이 기록했는데,
그는 페르시아 이전에 세계를 제패했던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에 의해 유대에서 바벨론으로 잡혀갔던 선지자입니다.
다니엘서 2장은 여러 종류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한 신상의 모습을 통해 세상의 제국이 흥망을 예언하는데,
다니엘서 3장은 이 예언에 대한 느브갓네살왕의 딴죽을 기록합니다.
전체가 금으로 된 신상을 세우며,
금으로 표상된 자신의 나라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계시에 도전하지요.
그리고 5장은 그 나라의 결말,
즉 고레스 대왕에 의하여 바벨론이 망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고레스 대왕의 시절에도 여전히 궁중에서 활약합니다.
그렇다면 쉽게 추론해 볼 수 있지요.
2장의 계시와 3장의 사건을 다니엘을 통해서 고레스가 들었겠지요.
그리고 그는 자신의 나라도 일정한 시간까지만 유효하고,
시간이 지나면 역시 무너질 것임을 알았으리라고요... 




하늘과 석묘가 기가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무덤에 사용되어진 돌들은 70km떨어진 곳에서 운반해 온 것이라 합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로 된 문헌들도 그를 '온 세상의 왕, 지구 네 축의 왕' 이라고 떠받들고 있는데,
막상 그는 겸손할 줄 알았던 진짜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뒤쪽을 보니,
이런, 이쪽이 뒤쪽이 아니라 전면입니다.
북서쪽에서 바라본 모습이지요.
석실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보입니다. 




입구를 찾았으니 다시 인증 샷~
저 입구로 들어가면, 무덤 내부에는 2제곱미터의 매장실이 있다고 합니다.
사실 대왕의 무덤치고는 소박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검소한 무덤으로 인해 후대의 정치가들은 그를 큰 존경의 대상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동쪽의 모습입니다.
이 무덤의 건축양식은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줍니다.
당시 동양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동방 즉,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돌이 귀하기 때문에 진흙 벽돌로 건물을 지었습니다.
벽돌을 굽듯이 진흙을 다져 견고성과 내구성을 높였고,
역청을 이용해 계단식으로 건물을 지었습니다.
이러한 건축 양식을 '지구라트'라고 하지요.
그러나 이 지역은 석재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3천년간 내려온 메소포타미아 신전 건축 양식이 그대로 등장합니다.
6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지구라트인 셈이죠,
밑받침이 동양의 건축양식이라면,
석회암 석실은 서양의 건축양식입니다.
BC 547년 리디아와 이오니아 정벌 후 그 곳으로부터 석공들을 데려왔고,
그들이 이 석실을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동양과 서양이 각기 수천년 동안 발전해온 이질의 양식이,
기원전 6세기 고레스 무덤에서 만났다고나 할까요?
이러한 여러 문화의 혼합과 조화가 당시 페르시아 제국을 동서에 걸친 제국으로 만들어냈고,
새로운 문화로 피어난 것은 아닐까요? 




고레스 묘에서 동북쪽으로 약 1km정도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유적이 있습니다.
100,000리알(약 1,000원)을 내면 이 버스를 타고 다녀올 수 있습니다.
물론 왕복요금입니다. 




그 곳에는 프리베이트 팔라스(The Private Palace)가 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의 최초의 왕궁 터입니다.
고레스 대왕이 살던 궁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다리우스 1세 대왕이 즉위한 뒤(BC 522),
파사르가대 대신 페르세폴리스가 아케메네스 왕조의 본거지가 될 때까지 수도의 역할을 했지요.
폐허가 된 뒤 진흙 벽돌로 만들어졌던 벽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오늘날에는 건물의 석조 구조물의 일부분만 남아있습니다.
황량한 들판에 서 있는 부러진 몇 개의 돌기둥.
물론 고레스의 후손들이 페르세폴리스를 세우고 옮겨가기는 했지만,
이곳이 당대 최고의 제국 페르시아의 궁전이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나마도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으로 궁이 파괴된 후 2500년 동안 방치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리스 역사학자 아리안이 쓴 '아나바시스'의 기록에 따르면,
알렉산더는 이미 도굴된 곳임에도 불구하고 무덤 근처에 있던 고레스의 궁궐에서 6만t의 금괴를 가져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 눈에 보이는 것들 외에 엄청난 규모의 왕궁이 있었겠지요?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스러지지요.
천하를 호령한 이들이 남긴 황량한 들판의 부러진 돌기둥 몇 개는 이 모든 것을 웅변합니다. 




입구에는 큰 돌기둥이 그 때의 영광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서 있습니다. 




파사르가대의 중심인 고레스 대왕묘를 중심으로 주변을 파노라마로 찍었습니다.
화려했을 왕도의 모습은 없어지고,
이제는 황량한 사막과 다르지 않습니다.
고레스가 깨달았던 권력무상을 말해 주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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