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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스라엘의 북쪽에는 헤르몬산(헬몬산, Mount Hermon)이 있습니다.
그 산 기슭에는 가이사랴 빌립보(Caesarea Philippi)가 있습니다.
이 도시는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BC 20년 헤롯 대왕에게 선물한 도시입니다.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빌립이 이곳을 자신의 왕국의 수도로 정하면서,
로마 황제의 이름인 가이사랴와, 자신의 이름을 더하여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도시는 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풍부한 물이 있고요,
그 물들은 합쳐져서 요단강의 상류를 이룹니다.
당연히 풍광이 좋고, 산천초목이 울창한 아름다운 지역이었습니다.
4~5C까지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7C 아랍의 침공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이후 아랍인들은 이 도시를 바니아스(Banias)라 부르게 됩니다.





 
바니아스는 판(Pan)의 도시라는 의미인데요,
이 곳이 바로 판 신전이 있었던 동굴입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지역에서 고대 가나안인들이 신을 섬겼던 많은 흔적들을 찾아냈습니다.
이 동굴은 특별히 헬레니즘 시대에 판(Pan)신의 신당이 설치되어 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판(Pan)은 자연과 목축의 신입니다.
판(Pan)은 허리 위쪽은 머리에 뿔이 난 사람의 모습,
하반신은 염소의 다리로 묘사되어있는 신입니다.
춤과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또한 공포를 주기도 하여 “패닉’(panic)이라는 말의 어원이 되기도 합니다.





 
고고학자들이 이 지역을 발굴하면서 많은 신전 유적들을 발굴했는데,
판(Pan)의 사당을 위시하여 제우스 신전, 네메시스의 뜰, 판의 뜰, 거룩한 염소의 무덤 신전 등등,
다양한 신전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판(Pan) 신전이 있었지요.





 
함께한 일행들과 신전 유적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곳을 찾는 이유는 판 신전보다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일화 때문입니다.
예수님님은 제자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에,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신앙을 고백했지요.(마 16:13-20, 막 8:27-30).
이 베드로의 고백에 예수님은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마 16:18)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판 신전으로 아래쪽에는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 곳은 북 요단강 수원지입니다.
초당 20 ㎥(20 ㎥/s)의 풍부한 물이 솟아 나와 요단강을 이루고,
또 흘러내려 갈릴리 호수를 이룹니다.
이 지역은 고대로부터 물이 귀했기 때문에 물이 솟아나는 곳을 신성한 곳으로 여겼고,
그런 신성한 곳에 신전이 세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겠지요?





 
이제 가이사랴 빌립보를 떠나 4km정도 떨어진 텔 단(Tel Dan)으로 향합니다.
텔은 쉽게 말해 언덕이라는 의미이니,
텔 단(Tel Dan)은 단(Dan) 지파가 살던 언덕 지역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지요.
이 지역은 단 지파가 정복하기 전에는 라이스(삿 18:29)라고 불렸습니다.
사사기 17~18장에는 이 지역은 정복하는 단 지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지요.
또한 단은 분열 왕국 시대에 북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았던 곳이기도 합니다.(왕상 12:28~29)
이후 단은 우상숭배를 책망받을 때마다 언급되었던 대표 성읍이었습니다(암 8:14, 왕하 10:29).
성경에는 이스라엘의 영토를 언급할 때에,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라고 말하는 것을 10여차례나 볼 수 있습니다.(삼상 3:20 외)





 
텔 단 유적지에서는 지금도 여로보암과 관련된 유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여로보암이 세웠던 제단 자리에는 네 뿔이 달린 철 구조물로 제단을 묘사해 놓았습니다.
이 제단이 서 있는 자리가 바로 북방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우상을 숭배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고요,(왕상 12:25~33)
그 아래쪽에는 당시의 제사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발굴된 제단이 위치했던 장소와 주변 시설은 여호보암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텔 단의 외성문(外城門)입니다.
이 외성문 앞에서 왕은 백성들로부터 예물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왕은 이 곳에서 민간에서 벌어지는 분쟁들을 재판했다고 합니다.





 
하솔(Hazor)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하솔은 여호수아가 정복한 도시였으며(수 11:13),
후일, 가나안 왕 야빈에게 통치를 받다가 사사 드보라와 바락이 재정복하였고(삿 4장; 삼상 12:9),
솔로몬은 이곳에 요새를 쌓았습니다.(왕상 9:15)
후에 이곳은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 파괴되고 하솔 주민은 앗수르의 포로가 되었지요.(왕하 15:29)
하솔은 팔레스타인 남부와 북부를 잊는 해변길이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남쪽의 이집트와 북쪽, 동쪽의 다메섹과 바벨론까지 이어지는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풍부한 물과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솔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규모의 텔(Tel)로서 약 80헥타르에 이르며 상부도시와 하부도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텔 하솔에서 바라본 주변의 모습입니다.
현재는 레바논과 시리아와의 국경선이 가로지르고,
역사적으로도 수 많은 전쟁이 있었던 지역입니다.
 
고대 이스라엘과 예수님의 이야기와 역사들이 얽혀있는 지역을 돌아보면,
늘 신기함과 아쉬움이 함께합니다.
위대한 신앙 고백과 배도의 자리,
승리의 기록과 패배의 쓰라림의 자리.
이 모든 것들을 품고 여전히 샘솟고 있는 물을 보면서,
역사는 흐르고 있고,
기록된 역사와 흔적의 역사가 말하는 교훈들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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