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18 22:15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대상 4:10)
우리는 누구나 야베스가 기도한 것처럼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실상은 어떠한가?
재난은 왜 일어나는가?
많은 사람들은 자연적 현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자연적으로 그러한 고통을 당하도록 창조하시고 설계하신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행복하기를 바라셨고, 이 땅의 재난을 기뻐하시지 아니하신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33)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눅 13:4-5)
예수님은 ‘왜?’에 주목하지 않으시고, 그 사건을 바라보는 유대인들의 시선을 바라보셨다.
예수님께서는 특정한 사람이나 민족이나 국가나 사회의 죄가 그들에게 특별한 재난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이 구절에서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재난과 고통과 슬픔의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의 문제이고, 이는 죄, 즉 인류의 죄의 결과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모두가 언젠가는 죽음의 시간 앞에 서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합리적이지 않은 죽음의 시간에 갈등한다. 각가지 재앙과 사건 사고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이들은 왜 이런 일들이 생길까를 고민한다. 그런데 그 고민의 끝이 고통당하는 이들과 함께 흘리는 눈물이 아니고, 그들을 심판하는 경우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롬 12:15)
가난한 사람을 도와 주고, 병든 자들을 돌보며, 슬픔당한 자를 위로하며, 무지한 자를 가르치며, 경험이 없는 자들을 권고하여야 한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 주고,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일에 권유의 힘과 기도의 힘, 또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 동반할 때에, 이 일은 결과가 없지 않을 것이며 또 그렇게 될 수도 없을 것이다. ― MH, 143, 144.
천성적으로 우리는 고집스럽고 자기 중심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시는 교훈을 배우게 될 때에, 우리는 주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되고 이후로 그리스도의 생애를 살게 된다. 그리스도의 놀라우신 모본과,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들과 함께 웃음으로써 타인의 감정에 참여하신 비할 데 없으신 그 사랑은 진심으로 그를 좇는 모든 사람들의 성품에 반드시 깊은 영향을 주게 된다. 그리하여, 저들은 친절한 말과 행동으로써 피곤한 자의 발걸음을 평탄케 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 MH, 157, 158.
우리는 이 땅에서 재난이 종식되기를 원한다. 어려움이 없기를 원한다.
우리는 이 땅에 재난이 닥칠 때마다 안타까워한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 앞에서 우리는 왜 그들이 그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특히 자연 재해들과 사고들 이 때문에 무고한 이들이 생명을 잃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생각하게 된다. 이 땅의 모든 재난들이 이 땅에서 멈추기를 원한다.
이 땅의 재난들이 종식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있어야 할까? 그 원인이 제거되어야 한다.
재난이 최종적으로 종식되는 날
우리는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1-3)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재난이 일어날 것에 대해서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온전한 세상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우리는 더 이상 재난이 없는 그 곳, 그 시간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 7:15-17)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4)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리라.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경내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칭할 것이라.”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의 건축한 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사 32:18, 60:18, 65:21, 22)라.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 하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사 35:1, 55:13, 11:6, 9)다. 하늘의 분위기 속에는 고통이 존재할 수 없다. 그 곳에는 눈물이 없고, 장례 행렬이 없고, 슬픔의 흔적이 없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계 21:4; 사 33:24).[GC. 675]
대쟁투는 끝났다. 죄와 죄인들은 없어졌다. 온 우주는 깨끗해졌다. 오직 조화와 기쁨의 맥박만이 온 우주의 만물을 통하여 고동(鼓動)한다. 생명과 빛과 환희가 만물을 창조하신 분에게서 끝없이 넓은 우주로 퍼져나간다. 가장 작은 원자(原子)로부터 가장 큰 세계에 이르기까지, 만물은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막론하고 조금도 흠이 없는 아름다움과 완전한 기쁨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한다.[GC. 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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