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피스트'란?

2011.05.17 08:31

정근태 조회 수:10901 추천:29


살라피스트란 정확히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가  이들은 이들이 활동무대로 삼고 있는 나라의 정부와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나라의 정치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  어떤 이들은 살라피스트들이 독자적인 정당을 결성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최근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은 대중들의 그들에 대한 지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살라피스트라는 사람들에 대해 정확하게 꼬집어 “이런 사람들이다.”라고 단정지어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우선 살라피스트들의 확실한 지도자라고 불릴 만한 단일지도체제의 대표적인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무슬림형제단이나 알 감마 알 이슬라미야 같은 단체는 확실한 지도자가 눈에 띤다. 살라피스트들을 리드하는 사람들을 세이크라고 불리는데, 세이크들은 각각 자신의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고, 각자가 이끄는 이슬람단체들이 있다.

이집트의 경우 살라피스트의 역사는 1970년대 대학생들의 학생운동이 최고조를 기록하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때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알 감마 알 이슬라미야이다. 그러나 알 감마 알 이슬라미야를 따르던 사람들은 무슬림형제단에 가입했고, 결국 무슬림형제단으로 흡수되는 듯한 인상이 확연해 보인다. 또 다른 상당수는 알 감마 알 이슬라미야를 떠나 다른 단체로 소속을 옮기는 현상도 보여주었다. 이러한 현상은 알렉산드리아 대학교에서 심하게 나타났는데 이 대학은 살라피스트의 영향을 크게 받은 학교였다. 살라피즘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휩쓸다시피 한 와하비즘과 비슷하며 알 아자르 대학의 교수들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이집트로 들어온 사조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들이 들여온 사조를 알 감마 알 이슬라미야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무슬림형제단에 가입하는 대신 받아들이면서 이집트에서의 살라피스트 집단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특히 학생사회의 적극적인 호응과 지지를 받으면서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살라피스트 그룹과 무슬림형제단은 보다 많은 학생들을 자파의 추종자로 끌어들이고, 보다 많은 모스크들을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두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였고, 급기야 1980년에는 양측 간의 충돌까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살라피스트들은 보다 체계적으로 자파를 관리할 필요성을 느꼈고, 모함메드 아브델 파타가 이끄는 살라피스트 학교가 생겨났다. 그로부터 몇 년 간의 바닥다지기 기간을 거쳐서 이 학교는 명칭을 살라피스트 콜링(Salafist Calling)으로 바꾼다. 이 때 쯤해서 살라피즘 추종자의 규모는 전국적으로 수십 만 명의 규모로 늘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사람들의 뇌리에는 살라피즘을 알렉산드리아에 지역적 기반을 둔 사조로 보는 경향도 있다. 그 이유는 모함메드 이스마일 알 무콰담, 아흐메드 파리드, 사이드 아브델 아짐, 모하메드 아브델 파타, 야세르 브라히미, 아흐메드 하티바, 아브델 모네임 엘 샤하트 마흐무드 아브델 하미드, 아부 이드리스 등 저명한 살라피스트 지도자들이 대부분 알렉산드리아에 연고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살라피즘도 내부를 들여다 보면, 많은 갈래와 계열로 갈라진다. 그러나 크게 보면 두 가지 계열로 나눌 수 있다. 한 계열은 보다 이데올로기적인 것을 강조하는 계열이고, 또 한 계열은 조직화와 조직에 기반을 둔 행동을 강조하는 그룹이다. 알 아자르 대학교수이며, 이슬람운동과 학생운동전문가인 살라 엘 아들은 전자의 경우를 또 다시 세 그룹으로 나눈다. 첫째는 학구적 살라피스트이다. 여기에 속하는 인물과 그룹들이 1970년대를 지나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알렉산드리아에 살라피스트 콜링이라는 교육기관을 창립했으며, 현재는 10만 명을 넘는 규모를 자랑한다. 그리고 각기 개성과 성향이 다른 세이크들에 의해 몇 개의 다른 계열이 갈라졌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최근에 벌어진 이집트에서의 무바라크 퇴진 시위에 처음에는 부정적이었으나 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시간이 갈수록 사회와 정치 문제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고, 지금은 이집트 정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여지고 있다. 이들은 혁명 초기에는 추종자들에게 철저한 혁명 불간섭 방침을 내렸으나 지금은 가장 많은 목소리를 내는 집단으로 빠르게 변신했다. 지금 그들은 모스크나 거리 등에서 다양한 이벤트와 정치 집회를 통해 혁명 후 정치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들이 주도하여 누르모스크를 수에즈 지역의 대중적인 저항운동가들이 장악할 수 있도록 막전막후의 공작을 주도했다.

엘 아들 교수가 꼽는 두 번째 그룹은 이른바 활동적 살라피스트들이다. 이들의 기원 역시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지역적으로 보면 카이로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한 지역인 수브라 지역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 그룹에 속하는 가장 유명한 지도자로는 파우지 엘 사이드가 있고, 모함메드 아브델 마쿠소우드, 사이드 엘 아라비, 그리고 세이크 아샤트 이브라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알렉산드리아의 카운터파트너들처럼 이들은 지도자는 신의 뜻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며, 신이 세우지 않은 지도자를 리더로 추종하는 것은 이교도의 짓이라고 부르짖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설교 등을 통해 공공연히 설파하여 세속적 정권을 부정하는 듯한 언동을 했다.


살라피스트들은 처음에는 이른바 민주화시위에 동참하기를 거부했었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민주주의, 특히 의회민주주의라는 것은 결코 추구해야할 소중한 가치가 아니라 이단이고 이교도적인 가치관이었다. 그들은 늘 의회민주주의는 슈라에 위배된다고 주장해 왔다. 또 의회민주주의에 의해서 성립된 정권과 정치체제가 신의 법과 명령을 제대로 실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지 이들은 원래의 고집을 슬며시 철회하고 민주화시위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체로 부상했다. 개헌 논의에도 활발하게 참여했고, 이후의 선거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개혁비전과 같은 생각을 가진 무슬림형제단과 알 감마 알 이슬라미야 계열의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천명하기까지 했다. 더욱이 일부 살라피스트들은 정당을 결성하기로 결정한 상태이다.

세 번째 그룹은 사실상 지하드 주의자들이다. 지하드주의자들이란 자신들이 원하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폭력적인 방법도 서슴지 않고 동원하는 급진 이슬람주의 그룹을 말한다. 지하드주의 살라피스트들은 그 활동의 근거를 최초의 이슬람 지도자들이 벌였던 성전에서 찾는다. 그들은 지하드를 이슬람의 5대 기둥 못지 않은 중요한 반열에 놓는다. 그들은 이슬람의 원리와 신의 명령을 충실하게 적용하려고 하지 않는 세속권력이나 비이슬람 권력을 타도하기 위해서 전쟁도 불사해야 하며, 특히 이슬람 지역을 침범하고 지배하는 비이슬람 외세는 박멸과 타도의 대상으로 본다. 사예드 코트브는 현대 지하드 살라피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그는 그만큼 지하드 살라피스트 계열에서는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또 최근 피살되었으며, 수십억 달러의 재산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알카에다를 창설한 오사마 빈 라덴, 이집트의 물리학자 아이만 엘 자와히리, 아부 모하메드 알 마크디시 등도 이 그룹의 저명인사로 분류된다.

반면 조직을 중시하는 살라피즘의 계열에서도 몇몇 갈래가 존재한다. 가장 유명한 단체는 안사르 알 순나 알 모하메디야협회이다. 이 단체는 세이크 모하메드 하메드 엘 피키라는 알 아자르대학의 교수에 의해 창설되었다. 이 단체는 코란과 순나를 원형 그대로 엄격하게 계승하며 그 어떤 다른 해석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슬람사회의 경영과 예배 등 어떤 면에서도 타협과 예외를 인정하려 하지 않으며 신비스러운 방식의 신앙접근도 용납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그룹의 원형은 알 가미야 알 샤리아이다. 이 단체는 세이크 마흐무드 카타브 엘 소브키에 의해 1912년에 창설되었다. 원래 이 단체는 이슬람초등학교에서 일하는 성직자들의 협력체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존재하며 이슬람을 제대로 효과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단체로 남아 있다. 현재 이 단체를 이끌고 있는 마흐무드 엘 묵타르 모하메드 엘 마디 역시 알아자르 대학의 학자이다. 이 단체는 많은 모스크들과 이슬람 학술단체와 연계하여 이집트의 사회부에 등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슬람 급진단체로서는 드물게 정부로부터 합법성을 인정 받고 있다.

살라피즘의 세 번째 유형은 잘 알려진 와하비즘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기원하고 있는 이 사조는 원래 이집트에서 먼저 도입되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사실상 지배하고 통치하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대개 와하비즘 하면 사우디아라비아를 떠올린다. 그러나 1991년의 걸프전을 전후하여 사우디에서 공부한 이집트인 학자들을 통해서 이집트로 역수입되었다. 이러한 것들 말고도, 또 다른 살라피즘이 있다. 최근의 위성방송TV망을 통해서 전파되고 있는 독자적이고 새로운 살라피스트 계열의 신사조가 있다. 세이크 모하메드 핫산 같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IT시대 답게 오프라인보다는 위성방송망이나 인터넷망 등 온라인을 통해 그 생각을 전파하고 있기 때문에 오프라인상에서의 두드러진 활동은 없다. 세이크 모하메드 후세인 야쿠브, 세이크 아부 이샤크 알 호웨니, 알 아자르 대학의 법학교수인 오사마 아브델 아짐, 세이크 무스타파 엘 아다위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사조가 대중들 사이에 뿌리를 내려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일어나기를 유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위성방송 뿐 아니라 모스크에서의 오프라인 설교와 강의, 카세트 테입 등을 통한 강의 등의 방식도 활발하게 동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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