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년째 할랄고기 정육점 운영하는 김 철씨
도축땐 선교사 입회 후 이슬람 율법 따라 작업… 이슬람 대사관 등 고객
"종교적 사명감 갖고 하니 미더운 가게로 입소문… 한달 판매량 점점 증가"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사원 1층에 자리한 할랄고기 정육점 '할랄미트'. 국내 할랄고기 정육점 1호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낯선 양고기 향이 덮쳤다. 29㎡ 남짓한 가게에 냉장·냉동실, 기다란 도마, 몇 가지 곡류·향신료 등 갖가지 할랄푸드로 가득했다. 소가 목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벽에 걸린 사진 한장이 눈에 들어왔다. 인근 할랄 음식점으로 갈 양고기를 손질하던 '할랄미트'의 주인 김철(70)씨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를 도축할 당시의 사진"이라고 전했다.

김씨는 무슬림(이슬람교도)이다. 30년 전 출판사를 차렸다 망한 뒤 지인의 권유로 아랍어를 배우기 위해 이슬람사원을 드나들다 무슬림이 됐다. 코란을 교재로 삼아 선교사들에게 아랍어를 배우다 보니 자연스레 이슬람교에 마음이 갔다고 했다. '알리'라는 이슬람식 이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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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고기 정육점 운영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1984년, 가깝게 지내던 선교사의 권유로 한국이슬람교중앙회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던 '할랄미트'를 맡은 것이다. 벌써 29년이 됐다.

'할랄'은 아랍어로 '허용된'이란 의미. 할랄고기는 살아있는 가축의 다리를 묶어 성지 쪽으로 머리를 놓고 '비쓰밀라 히르라흐마 니르라히임(자비롭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알라후 아크바르(하나님은 위대하시다)'를 외친 뒤 단칼에 목을 쳐 도축한다.

워낙 생소한 작업이라 초창기엔 어려움도 많았다. 지금은 소고기와 양고기는 할랄고기 수출이 활발한 호주에서 주로 수입하고 있지만 당시엔 양고기를 조달하려 김씨 혼자 태백산, 밀양 등 전국 각지를 돌아 다녔다. 할랄 방식 도축이다 보니 시간당 생산량이 절반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도축을 할 경우 해당 도축장이나 가공공장 측엔 돼지고기와 술 유입 금지를 별도로 요청해야 했다. 할랄고기는 수요가 많지 않아 지금은 일반 정육점 고기보다 ㎏당 700~800원 정도 더 비싸지만 그 때는 2배나 더 값이 나갔다. 김씨는 그래도 할랄 방식 도축을 고수했다. "무슬림이라는 종교적 사명감 때문이지요. 지금도 도축이 있을 때면 선교사가 입회한 가운데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체크합니다."

그의 이유 있는 고집이 알려지면서 국내 무슬림들은 "알리네 고기는 믿을 수 있다"고 신뢰했다. 30여 년 전 한 달에 고작 60마리가 팔리던 닭이 지금은 한 달 평균 1,300~1,400마리 정도 나간다. '할랄미트'의 고기는 전남 목포와 경남 거제까지 공수된다. 국내 이슬람권 대사관과 전국의 할랄 음식점들이 주요 고객이다. 국제 행사로 이슬람권 인사가 방한이라도 하면 그의 손은 더욱 바빠진다. 최근엔 아랍에미리트 대사관에서 여수세계박람회 때 쓰겠다며 닭만 120㎏을 주문하기도 했다.

김씨는 "한류 때문인지 한국을 찾는 무슬림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며 "이들을 위해 더 많은 할랄고기 정육점과 할랄 음식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인터넷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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