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같이 서쪽에는 에게 해, 남쪽에는 지중해, 북쪽에는 흑해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고 에게 해와 흑해를 이어 주는 마르마라 해협, 마르마라 해와 흑해를 이어주는 보스포루스 해협, 지중해와 흑해를 이어주는 다르다넬스 해협으로 되어 있는 터키에서, 여행자들의 발길은 언제나 바다로 향한다. 파묵칼레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에게 해이다. 여행자들은, 생부를 확인하고자 엄마의 옛 애인들에게 보낸, 에게 해에서의 결혼식 초대장(영화 '맘마미아')이 없더라도, 마리오 프랑굴라스(팝 오페라 가수)의 노래 '푸른 에게 해의 초대장'을 들으면서 그 관문인 쿠샤다스로 간다. 쿠샤다스는, 터키 전역에서 가장 큰 고대 로마의 유적지 에페스로, 그리스의 도시국가 폴리스의 맹주 밀레투스로, 그 동맹의 상징 공간 '판이오니아'가 있는 프리에네로 가는 길목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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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해에서 바라 본 쿠샤다스 시의 전경.>

 

쿠샤다스는 에게 해의 역사 여행을 하기 위한 관문이나 휴양의 도시로서, '새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행자들은 고대로 날아가기 위하여 잠시 쉬는 '새'일지 모른다. 아니면 초기 기독교 유적을 순례하기 위하여 머무르거나, 순례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새'일지 모른다.

여행자들은 먼저 '백팩커 미팅포인트'(배낭 여행자들이 만나는 곳)에서 인증 샷을 하고 부근 시장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는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가 숙소를 정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아니면 언덕의 끝에 서서 에게 해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시 전체를 한 눈에 넣으면 쿠샤다스 해변과 귀베르진 섬이 양쪽 끝에 놓여 있다.

쿠샤다스 해변은 일광욕을 즐기는 유럽 관광객으로 가득 차 있다. 여행자들도 '내 하나의 목숨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 해 저문 노을을 바라본다/ 설익은 햇살이 따라오고/ 젖빛 젖은 파도는 눈물인들 씻기워 간다/ 일만(一萬)의 눈초리가 가라앉고/ 포물(抛物)의 흘러 움직이는 속에/ 뭇 별도 제각기 누워 잠잔다/ 마음은 시퍼렇게 흘러 간다/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가 될까/ 물살이 퍼져감은/ 만상(萬象)을 안고 가듯 아물거린다./ 마음도/ 바다에 누워/ 달을 보고 달을 안고/ 목숨의 맥(脈)이 실려간다/ 나는 무심(無心)한 바다에 누웠다/ 어쩌면 꽃처럼 흘러 가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외로이 바다에 누워/ 이승의 끝이랴 싶다.'(박해수의 시 '바다에 누워')를 읊조리면서 일광욕을 하기도 한다.

프레베자 해전의 승전자 바르바로사 하이렛딘 파샤의 본거지 귀베르진 섬의 야경.

쿠샤다스 해변에서 잠시 멈춘 여행자의 시선은 비둘기의 섬으로 번역되는 귀베르진 섬에 멈춘다. 그 섬에는 성채의 흔적만 남아 있다. 그 흔적에 숨겨져 있는 역사는 16세기까지 거슬러 간다. 16세기 지중해는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서로 패권을 차지하려는 해전의 현장이었다. 1538년 프레베자 해전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교황 바오로 3세가 조직한 로마 가톨릭 동맹에 승리하여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했다. 이 때 오스만 제국의 함대를 지휘하여 승전한 제독이 바르바로사 하이렛딘 파샤(1478~1546)였다. 그는 레스보스 섬 출신으로 '붉은 수염'이라고 불리는 지중해 해적이었지만 오스만 제국의 제독이 되어 지중해의 패권 전쟁에서 승자가 되기도 했다. 그가 거점으로 삼은 곳이 바로 귀베르진 섬이다. 이 섬은 해적에서 해군 제독으로의 신분 상승만 보여 주며, 그 이면이 16세기 해적에 있음을 은근히 암시한다. 16세기 해적은 종교국가가 후원하는 '국가 공인 해적'이었다.

북아프리카 이슬람 국가들은 자기 지역에 본거지를 두고 기독교 국가들을 약탈하는 지중해 해적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16세기 지중해 해적은 기독교 세력과의 전쟁에 참전하여 패권을 차지하려는 이슬람 세력의 적극적인 옹호자이면서 협력자이다. 특히 스페인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바르바로사 하이렛딘 파샤는 자기 본거지 알제리와 튀니지를 오스만 제국에 바치면서 신하가 된다. 프레베자 해전의 승전으로 그는 제독이 되었고,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의 패권자가 되었다. 그의 사후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교황 비오 5세와 지중해 가톨릭 해상 국가들로 조직된 신성 동맹에 패배하여 지중해의 패권을 상실한다. 이 섬은 로마제국 멸망 이후 지중해를 둘러싼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 분쟁의 역사를, 그 역사 속에 들어 있는 그리스와 터키 간 국경 분쟁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 국경 분쟁의 역사는 1453년 오스만 제국의 그리스 지배과 1830년 그리스의 독립에서 시작하여 1897년 크레타 섬을 둘러싼 그리스-투르크 제 1차 전쟁, 1922년과 1923년 이즈미를 둘러 싼 그리스-투르크 제 2차 전쟁, 1987년과 1996년 에게 해의 영역과 영유권을 둘러 싼 에게 분쟁으로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분쟁의 역사는 언제 끝날 것인가? 아니 분쟁의 역사는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여전히 진행 중이며, 중국과도 진행될 것이다. 사실 영토 분쟁을 겪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다. 그 분쟁은 언제 끝이 날 것인가? 평화는 언제 오는가?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1000년 전쟁을 다룬 '로마 멸망 이후 지중해 세계(하)'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평화는 간절히 바라는 것만으로는 실현되지 않는다. 평화를 확립하는 것은 군사가 아니라 정치의지였다.'(김석희 역)라고 말하듯, 정치가가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인가? 과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대만, 러시아, 일본과의 국경 분쟁도 그 나라의 정치가들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선거철만 되면 열심히 영토 분쟁을 부추겨서 애국심 마케팅으로 표를 끌어 모으려는 정치가들이 해결할 수 있을까?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영토문제가 국민 감정 영역으로 들어가면 출구 없는 위험한 상황을 일으킨다'(이종락 역)고 경고한다. 우리는 지금 그 상황을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 고추장 듬뿍 바른 케밥, 코레의 입엔 천하진미

쿠샤다스 구시가 칼레이치에 있는 음식점에서 만난 사람

귀베르진 섬을 본거지로 했던 바르바로사 하이렛딘 파샤는 지중해의 관문 도시 쿠샤다스에게서 특별하다. 그의 이름을 딴 바르바로사 하이렛딘 거리는 구시가인 칼레이치의 중심 길이다. 그 거리는 여행의 이정표가 되는 호텔 케르반 사라이(낙타를 타고 다니는 대상들의 숙소)에서 언제 지어졌는지 모르는 아치까지이다. 그 사이에는 자미(사원), 하맘(공중목욕탕), 여행사, 시장, 식당 등등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 있다.

그곳에서 여행자들이 가장 즐길 수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물론 음식이다. 음식은 터키 같은 이슬람 국가에서는 신이 허락한 음식 할랄과 허락하지 않는 음식 하람(돼지고기, 술)으로 정해져 있다. 육류 할랄은 가축에게 가장 최소한의 고통을 주는 방법으로 도축하면서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뜻을 전하는 코란 구절을 암송할 때 가능하다.

육류 할랄은 케밥으로 대표된다. 터키의 대표적인 요리로서 '꼬챙이에 끼워 불에 구운 고기'을 뜻하는 케밥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우리나라 여행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입맛에 맞는 것은 이스탄불의 고등어 케밥, 카파토키아의 항아리 케밥, 부루사의 이스켄데르 케밥 등이다.

그러나 칼레이치 재래식 시장에서 여행자들은 터키인에게 익숙한 케밥을 만날 뿐이다. 터키 속담에 '집을 사지 말고 이웃을 사귀라'라는 말처럼, 식당 주인을 사귀면 매운 맛이 일품이 아다나 케밥에 고추장을 듬뿍 발라서 그 맛에 익숙한 한국식으로 바꾸어 준다. 더구나 그 주인이 지나가는 여행자들에게 호객행위를 하지 않고 코레(코리아), 코레(코리아) 하고 외치고 서 있으면 그 외침 속에 바로 천하 일품의 맛이 스며 나온다.

부산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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