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 기간이 길수록 외국여행자들은 이슬람의 이방인이 된다. 그 기간, 여행자들은 이슬람 사원들과 술탄의 영묘들을 먼저 둘러보고는 쉴 곳을 찾아서 공원으로 가게 된다. 여행자들은 퀼튀르 공원에서는 고고학박물관에 전시된 로마 및 비잔틴 시대 유적들을, 톱하네 공원에서는 부르사 시 전경을 조망하기도 한다. 그 공원에서도 여전히 라마단 행사들이 성행한다면, 여행자들은 도시를 떠나서 근교 조용한 시골마을을 찾아서 간다.

마을 어귀에서 한가롭게 놀고 있는, 좌우 눈을 덮고 있는 털 색깔이 서로 다른 고양이.

부르사에서 버스로 1 시간쯤 걸리는 곳에 주말르크즉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오스만 시대 전통 가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이 마을은 울루 산(해발 2563m) 기슭에 있는 숨어 있는 작은 전원 마을이다. 마을의 입구에는 이슬람 사원과 그 옆에 이트노그라파야 박물관이 있고, 마을에 들어서면 여행자를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마을 비석이다. 그 비석에는 '여행은 마을의 수많은 아름다움을 찾아서 세 번째 밀레니엄(천 년)으로 향하는 것이다'라는 표현으로 여행자를 안내한다.

그 안내에 따라서 마을을 따라가면 오스만 시대의 낡은 가옥들, 그 가옥들을 뒤덮고 있는 포도넝쿨들, 담벼락을 따라서 올라가고 있는 장미 넝쿨들, 좁은 골목길, 울루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시냇물들이 어우러져 있다. 좁은 골목을 따라 가다가 여행자들은 예쁜 원색 페인트를 칠한 곧 무너질 것 같은 흙담들을, 창문에 걸어 둔 플라스틱 컵에 심겨진 야생화들을 만난다. 이것들이 작고 낡은 산골 마을에 묘하게 어울려서 여행자들을 더욱더 한가롭게 거닐게 한다. 마을 곳곳에서 여행자들은 작은 가게들을 만난다. 히잡을 쓴 할머니들이 괴즐레메(얇게 사각형으로 편 밀가루 반죽에 고기나 채소 등을 넣고 기름을 발라서 굽거나 기름을 바르지 않고 화덕에 그냥 구운 전형적인 시골 음식)를 구워서 여행자들의 입맛을 돋군다. 또는 마을 사람들은 청동 주전자와 찻잔, 청동 거울, 램프 등을 오스만 시대의 유물이라고 하면서 여행자들의 지갑을 열게 한다.

이리저리 거닐다 보면 여행자들은 가끔 골목길이나 좁은 마당이나 구석진 양달에 너무나 편하게 잠자고 있는 고양이를 보게 된다. 그 고양이의 한쪽 눈은 검은 털로, 다른 쪽 눈은 흰털로 덮여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반 고양이'냐고 물었더니 모르겠다는 대답을 들려준다. 반 고양이는 동부 호반의 도시 반에서 서식하는 고양이로서 좌우 눈의 색깔이 다르고 헤엄을 잘 친다. 좌우 눈을 덮고 있는 털 색깔이 다른 것과 눈의 색깔이 다른 것들은 분명히 다르다. 좌우 눈의 색깔이나 털 색깔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반 고양이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문제없이 잘 살아간다. 반 고양이처럼, 서로 다르거나 대립되더라도 하나가 될 수 없을까? 서로 종교가, 민족이, 인종이, 국적이 다르더라도 하나가 되어 살아갈 수 없을까?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천국이 아니더라도 '천국의 가장자리'에서 살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2008년 우리는 '천국의 가장자리'에 갈 수는 없었지만 볼 수는 있었다, 서울사랑국제영화제에서. 영화는 터키계 독일인 교수와 그 아버지, 독일의 불법 이주자 터키인 매춘부와 그녀의 딸, 독일 여성과 그녀의 어머니 간에 얽힌 관계를 다루고 있다. 그 관계는 독일인, 터키계 독일인, 터키인 간의 민족 및 인종 문제로, 독일 여성과 터키 여성 간의 동성애로, 터키계 독일인과 불법 체류 터키인 간의 이주 및 이민 문제로, 교수의 아버지와 매춘부 간의 성 문제로, 불법 체류자 매춘부와 반정부 활동가 딸 간의 혈연 및 정치 문제로 얽혀 있다. 그 과정에서 국경, 국적, 인종, 민족, 성, 계급, 혈연으로 단절된 개인이 사랑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받아들이고 하나가 된다. 영화에서 사랑은 서로 단절된 개인을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며, 대립과 모순의 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서로 그 차이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사랑은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랑은 이슬람 신비주의 메블라나 교파에서 가장 중심적인 개념이다. 이 교파에서 사랑은 알라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것이고, 그 수행 방법이 수피 댄스이다. 수피는 아랍어 수프 곧 양털로 짠 옷을 걸치고 금욕 생활을 하는 이슬람교도들이다. 수피들이 춤을 통하여 인간과 신이 하나가 되거나, 신의 은덕을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다는 사유 자체가 얼마나 혁명적인가? '오, 나의 신이시여/전생에서부터 나의 사랑은 이미 완성되었습니다./땅과 세계가 있기 전에, 태양과 인간이 존재하기 훨씬 전에/사랑을 위해 내가 선택되었을 때는 무(無)의 세계였을 뿐./나는 당신과 전생부터 하나였습니다./나는 당신의 친구였고 동반자였습니다/지금도 하나이고 당신이 내 안에 있거늘/어찌 자취를 감추십니까? 어찌 침묵하십니까?/바라보는 눈도 당신이며/말하는 입도 당신이며/듣는 귀도 당신입니다/진리의 휘장을 치는 이도 당신이며/휘장을 찢는 이도 오직 그대 하나입니다'(신은희 역)라고 수피들은 알라 신과의 사랑을 고백한다. 신과 인간의 합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서로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인간사는 하나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도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휴전' 중에서도 다시 보수와 진보의 이데올로기와 이것들이 언제나 감추어주고 있는 '썩은 보수'와 '싸우는 진보'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 모순으로, 영남과 호남의 지역 감정으로, 부자와 빈민의 양극화된 계층으로, 기독교와 불교의 종교 감정으로 나누어진 사회에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입니다'라는 문익환 목사의 절규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 소박한 예술, 주말르크즉 가옥들…터키 미니시리즈 이 마을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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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드라마 '크날리카' 촬영 장소가 된 주말르크즉 마을의 가옥.>

 

 

주말르크즉 마을은 작고 낡은 시골의 전원 마을이다. 그 마을은 도시에 사는 터키인들이 주말나들이로 가는 곳이라서 외국인여행자가 거의 없다. 필자가 그 마을로 간 것은 라마단 기간에 부르사에서 만난 터키인의 권유 때문이었다. 터키인과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6·25전쟁, 휴대폰, 자동차 그리고 축구이다. 한국과 터키가 3, 4위전을 치른 2002년 월드컵, 세놀 귀네슈 감독, 이을용 선수 등 축구 이야기를 하다가 그 터키인은 축구를 선수들이 만드는 예술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만들고 즐기는 예술이라고 하면서 주말르크즉 마을로 가기를 권유했다. 그리고는 축구 시합이 열리는 운동장이 텅 빌 때는 관중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선수들만, 꽉 찰 때는 관중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선수들이 있다고 했다.

 

관중이 없는 축구 시합, 관객이 없는 공연, 독자가 없는 문학예술. 예술은 일반 시민들이 만들고 즐기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 마을에서 가장 먼저 만난 예술작품은 터키 미니시리즈 드라마 '크날리 카'가 아니었다. 이 드라마는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대도시에서 전근 온 젊은 교사 및 네 자매들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의 많은 부분은 주말르크즉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촬영, 제작되었다. 그때 촬영지였던 가옥은 푸른 색으로 칠한 벽면에, 같은 색 글자로 쓴 '크날리 카'를 상단, 그 제작사 '체킴 에비 필름'을 하단, 붉은 색 글자로 쓴 'Mihriban'(친구 사랑)을 중간으로 한 간판을 달았다. 입구에는 흰 바탕에 푸른 색의 글자로 '친구사랑'을, 그 아래 붉은 색의 글자로 '맛있는 괴즐레메', 푸른 색의 바탕에 흰 글자로 메뉴들을 적은 간판을 걸어 놓았다. 벽면과 입구에 걸려 있는 작은 간판, 그 2층 벽면에 걸려 있는 간판, 그리고 허물어진 이층벽면과 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집 주인이 직접 제작한 이 묘한 어울림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 국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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