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국가에서 폐허로 남아 있는 기독교 유적지를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되돌아오는 길에 종교영화 포스터를 본다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그러나 영화 제목이 '페티 1453'임은 예사롭지 않다. 그 제목은 오스만 제국 황제 술탄 메흐메트 2세의 별칭인 정복자 페티에서, 그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1453년에서 따온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는 전쟁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오스만과 로마를 선/악, 인간다움/짐승스러움 등으로, 결말에서는 학살과 약탈을 전혀 자행하지 않는 오스만 군대를 강조하고 있다. 언제나 유럽을 지향하고 있는 현재의 열등감을 로마에 대한 과거의 우월감으로 뒤바꾸자, 터키인들은 그 결말의 거짓말을 이슬람의 자애로움으로 환호하면서 열광했다. 심지어 수상은 물론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2012년 2월 4주차 글로벌 박스오피스 2위까지 올랐다. 40~ 50개국에서 개봉하는 할리우드 영화를 제치고, 단 3개 국에서만 상영한 결과라니 경이로울 수밖에 없다. 그 경이로움을 가져다주는 오스만 제국의 역사는 부르사에서 시작된다.

부르사는 오스만 제국의 첫 번째 수도로서 예쉴(푸른) 부르사라고도 한다. 첫 번째 수도인 만큼 에디르네로 천도하기 전까지 이곳은 오스만 제국의 초기 36년의 역사, 종교,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그 모습들을 찾아다닐 때가 마침 라마단 기간(모하메드가 코란을 계시 받은 이슬람 역 9월을 기념하기 위하여 금식을 하는 기간)이 겹치게 되면 여행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라마단 기간 이곳에서 가장 먼저 가야할 곳은 자미(이슬람 사원)이다. 울루 자미와 예쉴 자미는 1421년, 1424년 메흐메트 1세가 세운 것이다. 이 자미들은 오스만 제국 초기 자미의 특징들, 돔(둥근 천장) 양식으로 지어진 사원 건물, 그 중앙에는 성지 메카의 방향을 가리키는 미흐랍, 예배소, 건물 입구 양쪽에 세워져 있는 예배 시간을 알리는 두 기둥, 예배 전후에 남녀로 구별하여 몸을 씻는 우두실로 되어 있다. 울루 자미가 이슬람 문자로 코란을 새겨 놓은 내부 벽면과 기둥들이 예술적인 디자인으로 조각된 것 같다면, 예쉴 자미는 미흐랍과 좌우 기도소들 벽에 박혀 있는 푸른 색 6각형 타일들은 밝고 맑은 종교적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 같다.

이 자미들에 가까운 곳에 술탄들의 영묘가 있다. 울루 자미 곁에는 오스만 가지 영묘와 오르한 가지 영묘가 있다. 오스만 제국을 세운 제1대 오스만, 제2대 오르한은 죽어서도 '전사'라는 이름을 버릴 수 없었다. 부르사를 공격하던 도중 오스만이 죽으면서 이곳에 묻어달라고 하자, 오르한이 정복하여 그의 유언을 받들었기 때문이다. 이슬람 사원과 술탄의 영묘는 종교의 이름으로 통치하고 정복하고 거대한 국가들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제국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이다. 국가에서 제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종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되고, 교리는 그 이데올로기에 대한 수락만을 강요하는 정치적 가치의 기준이 된다. 이 때 사원과 영묘에 반드시 결합시켜야 하는 것은 신학교이다. 1424년 메호메트 1세와 그 가족들의 묘소들인 예쉴 튀르베, 1426년 무라디예 자미, 무라트 2세와 가족들의 묘소들, 무라디예 신학교 등이 무라디예 퀼리예(복합 건물군)가 세워진다.

제국의 수도로서 36년 간의 역사는 라마단 기간에 종교순례자들로 붐비게 한다. 제국 및 술탄과 그 역사는 사라지고 순례자들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신화화한 곳을 참배한다. 라마단 기간 순례자들은 마치 단체 관광객들처럼 전세 버스를 타고 여행하듯 사원들을 스치고 지나간다. 학생들은, 마치 일분일초라도 아껴서 참배해야하는 것처럼, 정규 수업시간에 사원을 순례하고 서로 인증 샷을 해주고는 재잘거리는 장난으로 혼란스럽게 뛰어다닌다.

라마단도 연례행사로 세속화 되면서 터키에서는 전통 그림자 인형극 곧 카라괴즈를 공연한다. 공연은 욕도 잘하고 직설적인 카라괴즈와 점잖고 논리적인 그의 친구 하지바트 간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 대화 과정에서 인형 조종자들은 즉흥적인 애드리브로, 관객들은 추임새로 재미를 북돋우면서 줄거리를 엮어간다. 이런 공연의 묘미를 단지 박물관, 부르사 시티 박물관과 터키 이슬람 미술 박물관에서 영상으로밖에 느낄 수 없다니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영상이 아니라 실제 공연을 볼 수 있다면, 그것도 터키에서 발생한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 메블라나의 세마 공연이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라마단 기간이든 아니든 세마 공연은 카라바쉬-이 벨리 문화센터에서 언제나 늦은 밤에 열린다. 직관, 성찰, 명상을 통하여 알라신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메블라나 교단에서 그 수행방법의 하나로 채택한 것이 세마라는 춤, 곧 수피댄스이다. 그 춤추는 사람은 세마젠이다. 세마의식은 신과 예언자 모하메드의 찬양 기도, 만물의 창조를 알리는 작은 북의 두드림, 만물에 생명을 불어 넣는 피리 연주, 영혼의 교감을 나누는 인사, 신의 축복과 베풂을 뜻하는 집단 원무, 코란의 암송과 신에게의 기도, 예언자 무하마드와 모든 신자들을 위한 영혼의 기도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집단 원무, 곧 셀람이 중심이 된다. 셀람은 세마젠들이 입고 있던 검은 망토, 곧 세속의 욕망을 벗어던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신과 하나가 되기 위하여 원을 그리면서 회전하면서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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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마 의식 때 추었던 수피댄스를 현대 시각으로 그린 그림. 이맘(성직자), 세마센(춤추는 사람), 일반 신도 등이 추는 수피댄스는 고통받는 인간을 구원한다는 내용이다. 부르사 시립박물관 실내벽에 그려져 있는 유화로 화가 미상.>

 


회전하면서 위로 든 오른 손으로 신의 축복을, 아래로 내린 왼손으로 신도들에게 축복을 전달한다. 신의 축복이 이교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베풀어지길 기대하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일일 것이다.

# '라마단땐 테러 조심' 경고 받았지만 이곳의 환대와 베풂에 걱정 사라져

오스만 제국의 첫 번째 수도를 여행할 때 라마단 기간을 맞이한다면, 더구나 '라마단 기간에는 테러를 특별히 주의하세요.'(외교통상부, 2012.7.25)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면 여행자들은 막연한 추측과 함께 두려움을 갖게될 지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여행자들은 이슬람 종교 의식을 보거나 체험할 수 있다는 막연한 설레임을 가질 수는 없을까? 라마단은 청소년세대에게는 정규 수업 대신의 현장 학습으로, 청년세대에게는 놀거리의 계기로, 중년세대에게는 사원 순례의 기회로, 노년세대에게는 과거사의 확인과 휴식의 계기로 세속화하고 있었다.

라마단의 세속화는 종교 의식과 일상생활 속의 놀이가 결합하여 축제화한 것이다. 종교 의식의 정신적 측면과 놀이의 물질적 측면 간의 결합을, 아랍계 미국인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서양의 우월한 시각에서 본 열등한 동양)과 옥시덴탈리즘(동양의 정신적 시각에서 본 물질적인 서양) 간의 바람직한 혼합'이라고까지 역설한다.

라마단 기간 동안 필자는 터키 이슬람들에게 '테러의 대상'이 결코 아니라 '베풂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울루 자미에서 만난 6·25전쟁 참전용사의 소개로 이맘(성직자)에게서 축복을 받기도 했고, 예쉴 자미의 내부 벽면 디자이너(사진 왼쪽)의 초대를 받기도 했다. 그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 내부 벽면 전체는 푸른 타일로 붙여져 있었다. 이란이 헌법에서 이슬람과 함께 국가 공식종교인 조로아스터교 교도에게 푸른 색의 옷을 강제로 입히고 있다고 하자, 그는 그 색이 말레이시아 국기에도 사용되고 있다고 응수한다. 그리고는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를 거론하면서 블루와 이슬람 창시자 모하메드가 쓴 터번의 색 그린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블루면 어떻고 그린이면 어때 하면서, 종교란 만남과 베풂이라고 말한다. 타일의 푸른 색이 그 계기가 되었으니, 우리의 만남은 푸른 만남이리라.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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