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향신료의 촉감'(원제 : 어 터치 오브 스파이스)은 주인공 파니스가 이스탄불에서 보낸 유년 시절의 삶을 '에피타이저(전채)'로, 그가 그리스로 이주한 이후의 삶을 '메인 디쉬(주 요리)'로, 그가 35년 만에 이스탄불을 방문하여 지내는 궤적을 '디저트(후식)'로 지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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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줄거리는 '그리스인이라고 터키에서 추방됐는데 그리스에선 우리를 왜 터키인으로 여길까?'라는 어린 피니스의 대사가 요약하고 있다. '에피타이저는 여정의 신호탄이다. 오감을 자극하는 맛과 향기로 모험 가득한 앞길을 알린다'라고 요리사인 피니스의 할아버지가 말한 것을 빌린다면 안탈리아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 가는 여정의 신호탄이며, 현재 안탈리아 주에 해당하는 고대 팜필리아로 모험을 떠나는 길의 출발지이다.

안탈리아의 여행자 거리는 칼레이치이다. 칼레이치에서 여행의 이정표는 시계탑과 그 맞은 편에 있는 안탈리아를 상징하는 높이 38m의 붉은 탑 이블리 미나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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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를 바라보고 서 있는 터키 안탈리아의 붉은 탑 이블리 미나레는 이 도시의 상징이자 이정표이다.>

안탈리아의 과거모습을 한눈에 볼수 있는 곳으로는 페르게, 시데 등에서 발굴한 고대 유물들을 모아 놓은 안탈리아 박물관, 19세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안탈리아 지역의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한 칼레이치 박물관이 있다. 두 박물관은 로마가 지배하면서 이주민 그리스인들이 원주민 실리시아인들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준 시대에서 껑충 뛰어 안탈리아의 19세기와 20세기 모습을 동시에 보여 준다. 이후 안탈리아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서 현재로 되돌아오는 도시가 된다. 가장 먼 과거로의 여행은 BC 12세기나 13세기로 추측되는 트로이전쟁 이후에 건설된 페르게이다. 페르게는 사도 바울이 첫 번째 잔도 여행 중에 방문한 곳이고, BC 262경 헬레니즘 시대 위대한 수학자 아폴로니오스가 태어난 곳이며, BC 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을 거쳐서 로마 시대 번영을 이루다가 7세기 아랍의 공격으로 초토화된 곳이다.

페르게의 유적은 그리스문화와 동방문화가 결합된 헬레니즘 시대에서 로마 시대까지 있다. 유적지에는 원형극장, 아고라,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던 아크로폴리스가 남아 있다. 페르게와 같이 BC 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도시가 시데이다. 시데는 BC 7세기 그리스인이 세운 이오니아의 식민도시이다. 유적지에는 아폴론신전, 아테나신전, 원형극장 등이며 팜필리아 지역의 로마 유적을 전시해 놓은 시데 박물관이 있다. 역시 시데와 같이 BC 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도시가 아스펜도스이다. 유적지에는 원형극장, 아고라, 님파에움, 아크로폴리스 등이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하지 못했지만, BC 2세기에 로마의 식민지가 된 테르메소스 유적지에도 제우스 신전, 아르테미스 신전, 하드리아누스 신전, 네크로폴리스(묘지) 등이 남아 있다.

 

안탈리아와 근교에 있는 도시들은 고대 아나톨리아 남부의 해안지역으로서 원주민 실시리아인은 정복자들- 프리지아인 리디아인 페르시아인 마케도니아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마인의 폭정 밑에서 혹독하게 살았다. 그 원주민들도 대부분 그리스에 동화되었으며, 현재에는 로마의 유적들이 폐허로 남아 있는 유럽인들의 지중해 휴양지로 자리 잡고 있다. 안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팜필리아 지역은 셀주크 투르크(11세기경 부터 14세기까지 중앙아시아와 중동 일대를 다스린 수니파 무슬림 왕조)에서부터 터키 영토로 속하기 이전에는 이주민의 폭정과 원주민의 시련이 동시에 존재한 곳이다. 팜필리아 지역에 남아 있는 로마시대 유적들은 그리스와 터키 간 문화충돌의 역사, 이에 따른 민족 갈등과 국토 분쟁의 갈등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안탈리아 구시가지에 있는 칼레이치 박물관은 그리스 정교회의 사원과 바로 곁에 있는 오스만 전통가옥을 개조한 것이며, 안탈리아의 주 출입구 역할을 하는 하드리아누스 문 양쪽에는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세운 탑과 셀주크 술탄이 세운 탑이 함께 있기도 하다.

터키 유적들은 정복국가에 따라서 그 용도가 기독교 교회에서 이슬람 자미(사원)로 변하지만, 안탈리아의 유적은 양립하고 있다. 그 양립은 과거에서 미래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터키와 그리스의 갈등은 전쟁의 역사였다. 터키 지역에 있었던 그리스 도시 국가 트로이와 그리스 지역에 있던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군 간의 트로이 전쟁, 비잔틴 제국의 터키 지배, 오스만 제국의 그리스 지배, 1897년 크레타 섬을 둘러 싼 30일 전쟁, 1919년 이즈미르 3년 전쟁, 1974년 사이프러스 전쟁. 기원 전부터 현재에 이르는 터키와 그리스 간의 전쟁은 양국민 간의 적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영국이 사이프러스 섬에서 철수하고 그리스가 양도받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끔찍한 공포를 불러 일으킨 약탈자 폭도들(터키인들)은 어떤 곳에서는 룸(터키에 사는 그리스인)이 경영하는 구멍가게를 파괴하고 약탈하고 집을 습격해 그리스-아르메니아 여성들을 겁탈했는데 파티흐 술탄 메흐메트가 이스탄불을 정복한 후 일어난 군인들의 약탈만큼이나 무자비했다고 말 할 수 있다'고 오르한 파묵은 말한다.

영토 지배를 둘러 싼 국경지역 국가들의 분쟁과 국민들의 적대감은 그리스와 터키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 중국, 일본과 함께 동북아시아에 있는 우리의 경우는 현재진행 중이다. 우리는 북한과 일본과의 긴장이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북한과의 문제가 이데올로기이므로 우리는 이념을 정치적 이익의 계기로 해석하는 악순환을 겪을 것이다. 일본과의 문제가 과거사이므로 양국 정치꾼들은 애국이라는 포플리즘으로 정치 권력을 절대화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지를 정말 묻고 싶다.

 

# 결혼 앞둔 이슬람 남자들 이발하며 가장의 책임 다져

'그대는 아는가, 내가 왜 이국땅을/ 오랫동안 정처없이 돌아다녔는지/ 난 터키인들의 핍박을 피해 갔었지/ 세상이 흑인의 곱슬머리처럼 뒤얽혀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었다.'(김남택 역)라는 페르시아 시인 사디의 '장미의 낙원'을 읽는 동안, 여행자들은 '흑인의 곱슬머리처럼 뒤얽혀' 있는 세상의 거리를 '한 잔, 또 한 잔의 술'을 마시고는 '정처없이' 돌아다닌다.

혼자 걷는다는 것은 길을 잊을 염려도 없고 길을 잘못 들 염려도 없고 헤맬 염려도 없이 미로 속으로 들어가면서 그 길에 묻혀져 있는 역사적 흔적과 그 흔적 속에 묻어 있는 도시의 향취를 느낄 수 있으리라. 그 향취가 가장 친근하게 느껴지는 곳이 이발소이다. 이발을 한다는 것은 터키 공화국 성립 이전, 결혼하기 전 신랑은 반드시 신부가 될 사람이 보낸 면도칼과 이발도구에 의해서 이발을 하고, 신부는 그 기구들을 평생 지닌다. 이슬람에서 이발은 결혼이 삶의 새로운 전환이며, 부부로서 가족으로서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 같다. 시인 사디도 '나는 결합할 기회를 놓쳐 버렸으니/ 인간이란 재난이 닥칠 때까지는 환희에 찬 인생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구나'라고 결혼을 환희에 찬 인생의 가치라고 한다. 머리를 깎는다는 것은 유교에서는 조상 및 부모와의 이별을, 불교에서 세상사 번뇌에서 벗어나서 열반으로 가는 시작임을 뜻한다. 과연 어느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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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이치 박물관에 걸려있는 이발소 풍경.>

골목길을 걸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골목에서 벗어나서 바다와 산과 그리고 자연 앞에 서 있는 자신을 알고는 자연스러움을 만나는 것, 목적의 구속 없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삶. 안탈리아는 골목길이 골목길로 이어져 바다로 이어진다는 것을, 지중해로 이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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