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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성에서 본 앙카라 시내 전경.

 

앙카라는 사프란 볼루와 마찬가지로 외국인 여행자들이 거의 들르지 않는 곳이다. 앙카라가 터키공화국의 성립 이후 수도가 되어서 역사적 유적이나 흔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프란 볼루에서 근교 투어를 같이 했던 젊은 연인도 대학을 졸업하면 앙카라를 떠나서 이스탄불로 가겠다고 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서울로 가는 것처럼, 수도 앙카라에 사는 터키인들도 이스탄불로 가는 것 같다. 

 

앙카라는 대부분 야간버스로 이동하는 여행자들이 잠시 거쳐 가는 곳이다. 그곳에는 그러나 뭐 때문인지 모르지만, 한국 여행객들이 꼭 가야 하는 한국공원이 있다. 한국공원에 세워진 '한국 참전 토이기 기념탑'에는 '이 탑은 토이기군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한국전에 참전, 위대한 전공을 세운 바를 영원히 기념하기 건립되었다'라고 적혀 있다. 터키인들이 한국인들에게 흔히 '칸가르데쉬(피로 맺어진 형제)'라는 말을 자주 한다. 때로는 터키인들은 '형제의 나라' 한국이 현재 이룬 발전을 6·25전쟁에 참전하여 터키인들이 피를 흘린 결과라고도 하고, 터키의 피 흘린 참전이 없었더라면 한국은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을 것이라고도 하고, 북한을 터키 최대의 적이라고도 한다. 얼마나 고마운가. 터키와 한국은 '형제의 나라'일까? '혈맹'일까? 터키는 왜 6·25전쟁에 참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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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울루스 광장 부근 상가에 있는 한반도 형상의 분수대

 

터키 건국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아타튀르크는 '튀르크 세계의 가장 커다란 적은 공산주의이며 무조건 무찔러야 한다'고 강력한 반공이데올로기를 천명했다. 6·25전쟁 발발 시기 터키는 자유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 간의 분열과 충돌로 혼란한 상황에서, 아타튀르크 집권세력은 6·25 전쟁의 참전과 나토 가입을 통하여 반공이데올로기로서 정치적 혼란을 제압한다. 그 세력들은 6·25 전쟁의 참전은 자유라는 이념을 가진 형제국을 돕는 것이며, 이슬람을 소련의 침공으로부터 수호하는 것이라고 내세운다. '전쟁은 정치의 한 도구이며 정치의 연속이다'. 혹은 '전쟁은 나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적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폭력행위'라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받아들인다면, 터키의 한국전 참전은 어떤 의미일까?

그러나 '형제의 나라'라는 의미는 6·25전쟁을 계기로 하여 이루어진 미국의 지원과 이를 통한 군부세력의 급성장, 군의 정치 개입 전통이 닮았다는 것이 아닐까? 터키가 1990년대 이전까지 군사독재, 2000년대까지도 이슬람 세속주의를 핑계로 한 군부의 영향에 의한 정치가 진행되었다면 우리는 1987년 6월 항쟁 직전까지의 군사 독재, 아직도 국가방위를 핑계로 반공을 내세우는 비민주화 세력들에 의한 정치가 진행되고 있다. 터키와 한국에서 반공이데올로기는 체제방어와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지 않을까? 반공이데올로기가 터키에서는 이슬람 세속주의와 결합하여 작동한다면, 한국에서는 종복주의 비판과 결합하여 작동하고 있지 않을까? 

이데올로기라는 신념, 이념의 믿음, 허위의식에 관하여, 동북부 국경도시 카르스를 배경으로 하여 이슬람 세속주의와 근본주의 간의 갈등을 그린 오르한 파묵의 '눈'을 읽으면서 이데올로기적 회의를 가져 볼 수 있을까? '내 말을 들어요. 인생은 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거요. 하지만 이상 없이 믿음 없이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맞아요.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인간에게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잔인한 나라에서는 믿음을 위해 자신을 파괴하는 짓은 바보짓이요. 높은 이상과 믿음은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요.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정반대지요.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믿음 이외엔 의지할 것이 없어요."(이난아 역) 그렇다면 부유한 나라이든 가난한 나라이든, 종교가 같은 다르든, 인종이 같든 다르든, 피부색이 같든 다르든 인간, 인류가 모두 똑같이 의지할 것은 없을까?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아나톨리아 지역은 소아시아라고 불리는 아시아의 서쪽 끝 지역, 흑해, 마르마라 해, 에게 해, 지중해에 둘러싸인 반도이다. 고원지대의 척박한 황무지였기 때문에, 아나톨리아는 동서양의 전쟁터로서 유목 부족들과 부족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 흥망성쇠의 역사적 여정이다. 박물관에서 그 여정의 출발은 신석기 시대 남부 아나톨리아 차탈 회윅 지역의 신전 가옥이 재현되어 있는 곳이다. 이를 지나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BC 20세기에서 BC 12세기에 이르는 히타이트 시대, BC 12세기에서 BC 9세기에 이르는 프리지아 시대, BC 9, 8세기에 이르는 우라르투 시대로 이어진다. 그 여정의 중심에 히타이트 왕국이 자리잡고 있다. 히타이트 왕국은 BC 20세기에서 BC 12세기까지 약 800년 동안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근동 지역(북동 아프리카, 서남 아시아, 발칸 반도를 포함하는 지중해 동쪽 연안지역)을 지배한 당시 최강국이었다. 그 수도는 앙카라에서 동쪽으로 200km 쯤 떨어진, 지금 작은 시골마을 보아즈칼레이며, 하투샤 유적지가 남아 있다. 

박물관에서 BC 20세기에서 BC 8세기에 이르는 약 1200년의 역사 유적 순례를 마치면,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간의 삶도 바뀌지만 그 이면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은 변화 그 자체이다. 그 변화를 진화론자 다윈은 '가장 끈질기게 살아 남는 종은 두뇌가 가장 뛰어난 종도 가장 강한 종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대처하는 종이다'라고 했듯이, 마르셀 프루스트도 '바뀐 것은 없다. 단지 내가 달라졌을 뿐이다. 내가 달라짐으로써 모든 것이 달라진다' 했듯이, 변화는 개인 나에게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의 변화가 모든 사람과 함께 공존과 공유의 길로 가는 첫 걸음일 것이다. 

 

# 공산 당원인 카자흐 대통령, '이슬람 뿌리'에 동상 세워져

- 공원서 만난 종교적 열성

울루스 광장은 앙카라 여행의 출발점이면 종착점이다. 하루 종일 걸어서 앙카라를 둘러 본 여행자들은 울루스 광장 주위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 오페라 공원, 겐츨릭 공원에서 휴식과 문화공연을 즐길 수 있다. 오페라 공원은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다. 그 이름이 붙어진 것은 앙카라 출신 공연예술가들의 동상들이 서 있기 때문이다. 영화, 드라마, 연극에 출연한 대표적인 배우 퀴니 퀵커, 오페라 아티스트로서 소프라노 레일라 겐서 등의 동상들이 나란히 있다. 그 공원 옆에는 작고 아담한 집을 배경으로 하여 의자에 앉아 있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의 동상이 있다. 그 동상의 주인이 현재 카자흐스탄 대통령인지 동명이인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열렬한 공산당원의 동상이 어찌 강력한 반공국가에 있을 수 있겠는가? 그 동상의 주인은 최소한 공산주의자는 아닐 것이다. 아니 그 동상의 주인공이 이슬람교도라면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카자흐스탄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터키어를 사용하며 수세기 동안 거주해온 카자흐족이며, 그 숫자만큼 이슬람교도들이라면 그 동상의 주인은 현재 카자흐스탄의 대통령일 것이다. 동남아시아 사회주의국가에서도 그 고유 종교인 불교를 버리지 못하듯이, 종교적 열광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우선하는 최고의 맹목적인 것이다. 그 맹목성은 종교국가의 것이 아닐까? '종교란 평민에게는 진실로 여겨지고 현자에게는 거짓으로 여겨지며 통치자에게는 유용한 것으로 여겨진다'라는 세네카의 말은 지나친 것일까?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불교든 톨스토이가 말했듯이 '내가 진정으로 따르는 신앙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서로 독립된 인격체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삶을 공유하는 가장 선한 방식이 아닐까?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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