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프란 볼루로 가는 길은 현대에서 중세로 거슬러 가는 것이며, 다문화 다인종 사회의 메트로폴리탄에서 이슬람이라는 단일 종교와 단일 사회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사프란 볼루는 이스탄불의 유럽 지역이나 아시아 지역 그 어느 곳과 다른 중세 오스만 제국 시대의 시골이다. 현세에서 중세로 가는 시간은 6시간 정도이면 충분하다. 사프란 볼루 차르시 마을은 구시가지로 유네스코 문화유산도시로 지정된 곳이다. 그것은 차르시 마을이 오스만 제국시대 전통 가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차르시 마을에는 이슬람 전통 가옥이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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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전통 가옥이 잘 보존돼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프란 볼루 차르시 마을 전경.

사실 사프란 볼루는 실크로드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터키 대중목욕탕 하맘에서 불과 1, 2분도 되지 않는 거리에 진지 한(Cinci Han)이 있다. 현재 원형 그대로를 호텔로 사용하는 진지 한은 실크로드 교역을 담당했던 대상들의 숙소 케르반사라이였다. 케르반사라이처럼 오스만 제국시대 가옥은 진지 한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카이마캄라르 박물관에서, 그 당시 생활상은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생활사 박물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실크무역의 흥망에 따라서 사프란 볼루도 같은 길을 걸었지만 오히려 무역의 몰락이 전통 유산의 보존을 가능하게 한 것은 아이러니라고 할까? 

사프란 볼루에 있는 모든 숙소들은 오스만 시대 전통 가옥이다. 그 가옥은 정원과 거주공간으로 되어 있고, 정원은 돌담으로 길거리와 구별되고, 거주공간은 출입문으로 남성전용구역과 여성전용구역으로 구별된다. 모든 집마다 정원이 있고 그 정원들이 모여서 마을 전체가 정원의 숲 속에 들어 앉아 있는 것 같다. 숲 속의 집에서 백팩커(배낭여행객)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푸른 자연 속에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쉬는 일뿐이다. 백팩커들은 쉬면서 책이나 영화를 보다가 잠시 가벼운 차림으로 마을을 둘러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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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이스탄불 사프란 볼루에 산재해 있는 오스만 전통가옥.


오스만 시대 남녀 간의 분리문제는 현세에서 되돌아볼 수 있다. 2011년 제1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터키계 독일인 여성 감독 페오 알라닥의 '외국인- 우리가 떠날 때'는 현재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 터키 이슬람 여성들이 부닥치고 있는 생활 환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외국인'은 터키의 외국인이 아니라 터키의 자국인, 곧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여 아들을 데리고 가출한 여주인공을 말한다. 물론 친정에서도, 가족들도 그녀를 받아 주지 않고 터키 이슬람을 배반한 '수치와 굴욕'으로 받아들인다. 오빠와 남동생은 드디어 '수치와 굴욕'의 대가로 그녀와 그 아들을 살해하려고 한다. 남동생은 그녀를 살해하지 못하지만, 오빠는 그 아들을 살해한다. 그녀는 피 흘리는 아들을 보듬고 넓은 아스팔트길로 걸어간다. 남편의 폭력, 가출, 살해라는 영화의 등식은, 현실이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터키 이슬람 여성이 처한 생존 환경을 여실히 보여준다. 현재도 이스탄불에서 그렇다면 오스만 제국 시대에서는 어떤 지를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터키 이슬람의 삶의 방식은 이교도인 기독교도에게 더 하지 않았을까? 이슬람교도 어부가 라마단 축제에 나타난 기독교도를 보고 말하는 것을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 젊은 자우르!/나는 그대를 모른다. 나는 그대 종족을 싫어한다./그러나 그대의 혈통 속에서/언제나 강하고 약해지는 지 알 수 있다. 젊고 창백하지만 병색이 짙은 앞 이마는/불타는 열정에 타서 상처를 입었다./악마 같은 눈길로 아래를 향해 있지만/그대가 유성처럼 지나갈 때/똑똑히 보았다. 그대가 오스만의/아들들이 베거나 피할 인물이라는 것을'(김현생 역). 자우르는 이슬람에서 본 배교자와 이교도이다. 이슬람에서 본다면 남편의 폭력 때문에 가출한 여자는 배교자이며 이교도는 기독교도이다. 

오스만 시대 전통 가옥에서 중세 이슬람의 남녀문제와 종교문제를 봤다면 지나치게 과거만을 본 것일까? 더욱더 중세로 거슬러 가볼까? 사프란 볼루에서 더욱더 중세로 거슬러 가는 방법은 차르시 광장에 있는 관광정보센터에서 근교 투어를 하는 것이다. 사프란 볼루에서 투어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요뤽 마을이 나온다. 요뤽 마을은 중앙아시아에 있던 튀르크 유목민들이 아나톨리아 반도에 유입될 때 정착한 곳이다. 이곳의 집들은 거의 100년이 넘었으며, 가장 오래된 집은 450년쯤 된 온바쉬길 에위였다. 투어를 하는 동안은 여행자들은 나이, 피부색, 종교, 국적에 관계없이 친구가 된다. 그 친구들 가운데 터키의 젊은 연인 앙카라 대학생 요신과 데니즈가 있었다. 그 연인의 행동과 이야기들은 영화 '외국인'과는 사뭇 달랐다. 터키 독일인 이민 세대와 터키 자국인 젊은 세대 간의 차이일까? 그 차이의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지금 주어져 있는 것은 중세의 안과 현대의 밖 간에 있는, 있을 수 있는 간격뿐이다. 그 간격이 여행을 하는 동안 좁혀질까?

'산 위 저쪽에 불빛이 보이네/희미한 불빛 위로 매들이 날아 오르고/사랑을 잃은 모든 이들이/나처럼 미치는 걸까?/난 끝도 없이 슬퍼/내 원수들이 눈이라도 멀게 되었으면…/난 미쳐 버렸어/나 대신 산이라도 즐거워하길…'. 이 같은 가사의 노래로 끝맺는 영화를 그 촬영지 이스탄불의 게스트하우스 다인실에서 컴퓨터로 다시 본다는 정말 새삼스럽다. 터키계 독일인 파티 아킨 감독이 독일사회에서 살아가는 터키계 이민 2세의 삶을 보여 준 '미치고 싶을 때(원제: 벽을 향하여)'는 2004년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 시네마 부문에서 상영된 영화이다. 그 영화는 독일과 터키 어느 사회에도 적응하여 살아가지 못하는 이민 2세들의 삶과 사랑을 다뤘다. 사랑마저 이루어지지 않자 여자는 이스탄불에 남지만 남자는 자기 고향으로 떠난다. 그의 떠남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 인생의 시작이리라.

 

■ 터키서 만난 예술가 사킨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이슬람 국가 터키에서 한글을 사랑하는 화가를 만난다는 것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프란 볼루 광장에서 생활사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작은 화실의 입구에 세종대왕과 한글 자음을 새긴 나무판이 걸려 있다. 화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녕하세요'라는 사킨의 말이 가장 먼저 들린다. 이어 눈에 띄는 것은 우리나라 국기와 터키 국기를 함께 그린 유화이다. 그 유화의 옆에는 '사킨 오빠, 아저씨 아니예요, 오빠라고 해줘요'라고 스스로 새긴 나무판에서부터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글을 새긴 나무판이나 메모지들, '사킨 고마워요, 행복하세요', '사킨 오빠 좋아요, 꼭 니콜과 결혼하세요', '사킨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한국을 좋아해 주셔서 감사해요' 등이 많이 붙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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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에 한글을 새긴 나무판이나 메모지가 가득 한 화실에서 예술가 사킨과 포즈를 취한 필자.

 

그 화실의 주인은 사킨이다. 그는 화가이면서공예가이기도 하다. 그는 체 게바라와 같은 인물 유화를, 수피댄스(터키 콘야 지방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람교 일파인 수피즘의 종교의식에서 비롯된 춤)와 같은 전통 춤을 그린 유화들, 동식물을 그린 정물화, 그리고 다양한 도자기 공예 등을 창작한다. 그는 때로는 자기 작품에 '수피 댄스'와 같이 한글 제목을 달기도 한다. 한글에 그의 남다른 애정이 어디서 왔는지 묻자 그는 '그냥 좋다'는 '그냥'이라는 뜻의 어려움 훨씬 쉽게 말한다. 터키에서 그것도 중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프란 볼루에서 한글을 사랑하는 이방인을 만난다는 것을 무엇으로 표현할까? 표현보다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 더욱 좋을 것 같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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