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공존지대 이스탄불, 유럽문화 해바라기 왜?

 

 

세계는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 간의 갈등이 그칠 날이 없고, 이를 치유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것은 인류의 화두가 되고 있다. 본지는 새해 기획으로 부산대 민병욱 교수의 이슬람 문화 기행기 '이슬람에게 공존과 공유를 묻다'를 연재한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문화기행을 통해 이슬람 문화현장에 대한 소개뿐 아니라 현대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공존의 지혜를 모색하는 비평적 시각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도시가 근대 자본주의의 산물이듯이, 대도시 이스탄불은 도시민에게는 자본주의적 욕망과 생존의 현장일 뿐이다. 이들은 바삐 살아가듯 걸어가다가 설령 몸을 부딪친다 하더라도 타인에게 무관심하며 자신의 이해관계 속에만 몰두하는 행인일 뿐이다. 도시민들은 이스탄불의 화려한 과거와 역사적 흔적들을 찾아다니는 관광객들을 보면서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몰락 사이에서 비애를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런 목적도 없이 어슬렁거리는 여행자들은 군중들과 함께 걸으며 자신도 모르게 그냥 휩쓸려 가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으면서 폐허가 된 유적지를 돌아보다가 그 뒷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잊혀진 역사의 기억들과 흔적들을, 과거의 영광을 만들어냈던 문화적 전통과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더구나 이스탄불과 같이 동양과 서양,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뒤섞여 있는 대도시에서는 더욱 그렇다.

 

작가 오르한 파묵도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독서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서도 이스탄불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서양으로 여행을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오스만 제국 시대 이래 오스만인과 비잔틴인들은 이웃으로 살았다고 하면서 그 후손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손자들의 손자들의 손자들의 손자들은 베이울루에서 잡화상, 신발가게, 제과점을 하고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즐거움 중 하나는 어머니와 베이울루로 쇼핑을 나가는 것, 그리스 사람이 경영하는 상점에 출입하는 것이었다. 어떤 포목집에서는 아버지, 어머니, 딸 일가족이 모두 일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커튼용 천을 사거나 베개 커버로 쓸 벨벳을 고르기 위해 이곳에 가면 그 가족들이 자기들끼리 빠르게 그리스어로 말하는 것이 들렸다. 나중에 집에 와서 계산대에 있는 딸과 아버지의 활발한 몸짓을 흉내내곤 했다."(이난아 역).

 

다문화 사회 이스탄불에서 오스만인과 비잔틴인, 이에 뿌리를 둔 터키인과 그리스인은 공존하고 있는 하나가 아니라 서로 분리되어 있는, 흉내내는 타인이다. 터키인과 그리스인의 공존은 '몽상'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이스탄불 유럽지역의 역사적 유적들은 물리적으로 공존하고 있지만, 국토의 97%가 아시아 대륙에 걸쳐 있음에도 유럽을 지향하면서 종족 갈등과 종교 갈등을 같이 겪는 터키의 다양한 인종들은 공존할 수 있을까? 그 해결방안을 터키계 독일 감독 아킨의 영화 '미치고 싶을 때'(2004)는 암시한다. 그 영화는 함부르크와 이스탄불을 배경을 하여 독일인 의사에게는 위협적인 존재로 비치지만 이슬람적 가치를 고수하고 있는 터키 남성들에게는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비치는 인물이 그 양 사회의 혼종이 되어서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 혼종이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그 영화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갈등을 겪으면서 혼종화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문화 사회로 이미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그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으려 이스탄불의 구석으로 가봐야겠다.

 

이스탄불은 유럽지역과 아시아지역으로, 유럽지역은 다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유럽지역의 구시가지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지역이고 그 중심가인 술탄 아흐메트 여행자지역은 이스탄불의 역사 여행지역이다. 그 역사는 1453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는 기원 전 8세기 말 무렵에 건설된 그리스 식민지에서 페르시아 제국, 알렉산드로스 제국, 로마 제국을 거쳐서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었다가 그 이후에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의 역사이다.

 

이스탄불은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수도가 앙카라로 정해지자 1930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이름이 바뀐 것이다. 기원 전에서 현재까지 이스탄불 유럽지역의 구시가지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에 있었다. 그 접점에 있었기 때문에 구시가지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혼종의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그 유적들은 히포드롬 광장 남쪽에 세워진 이집트 오벨리스크를 이정표로 하여 비잔틴 시대의 콘스탄티노플로, 오스만 제국시대의 이스탄불로 구별된다.

 

구시가지의 유적들 가운데 오스만 제국 시대 이전의 기독교 역사 유적들은 그 원형을 부분적으로 간직한 채 박물관으로 바뀐다. 아야소피아 박물관과 카리예 박물관에서, 기독교 양식과 이슬람교 양식이 공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구시가지에서 본 역사 유적은, 현대 건축물과 함께 신시가지에서도 공존하고 있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어져 있는 유럽지역과는 달리, 아시아지역에서는 비잔틴 제국시대에 세워진 크즈 쿨레시(처녀의 탑), 술탄의 여름 별궁 베일레르베이 궁전을, 아시아로 가는 기차역인 하이다르파샤 역 등 몇 가지 유적만을 둘러 볼 수 있다. 이스탄불 전역이 아니라 그 유럽 지역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지역임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면서 터키가 유럽으로 해바라기를 하고 있음도 느낀다. 유럽을 향한 터키의 구애는 여전히 진행형이며, 동서양의 갈등도 여전히 진행 중임을 이스탄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서양의 갈등과 종교 갈등이 혼재하고 있는 이스탄불에게 그 갈등의 치유를 통한 공존과 공유의 방법을 물어볼까, 아니 이스탄불을 출발하여 터키 전역을 돌면서 배낭에게 그 대답을 들어보자.

 

 

 

# 낚싯대 든 터키 노인, 한국전·한국제품 언급여행자에 먼저 마음 열어

 

 

이스탄불 아시아지역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배경으로 하여 어쩌다가 버스가 지나가기도 하고,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하염없이 앉아 있는 노인들과 그들이 타고 온 오토바이들, 해변을 따라 걷고 있는 연인들, 해변에 정박해 있는 요트들이 한가롭게 쉬고 있는 해변이다. 아시아지역에서는 낚시로 소일을 하는 노인들은 구경꾼들에게 생선을 구워 주거나 날 것으로 주면서 술을 권하기도 하고 낚시를 권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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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 이스탄불 아시아지역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한국전에 참가했다는 한 노인은 여행자가 한국인임을 알고는 낚싯대를 걸쳐 놓은 채 벤치로 가 앉았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 노인의 눈에는 자랑스러움과 친근함 그리고 뿌듯함이 넘쳐 흘렀다. 자신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와 호주머니에서 꺼낸 휴대전화는 메이드 인 코리아였다. 그는 이들 한국제품을 가리키면서 한국의 현재가 자기들이 흘린 피의 결과라는 느낌을 보내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터키인 특히 노인들에게 한국은 터키의 참전으로 일어선 나라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한국전을 다룬 터키 영화들 대부분은 터키 군인들의 영웅적 활약을 다루고 있다는 에세이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 그것도 터키 군사독재 정권이 끝나기 직전까지. 그 군사독재정권이 끝나자 터키 지식인들, 유엔군으로 직접 참전한 작가들은 색시촌 성매매 여성과 주둔 중인 유엔군을 다루면서 남녀 간의 성차별 의식과 반전 의식을 내세우기도 한다. 마치 안정효 원작 소설을 장길수 감독이 만든 동명의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처럼. 그 영화에서처럼 유엔군이든, 미군이든, 터키군, 국군이든 군인들이 떠나자 마을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공유의 출발은 마음의 문을 먼저 여는 것이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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